한국 특산식물 구상나무가 고사 위기에 빠졌다

한반도 식물을 서구에 알린 서양 학자들과 신부

식물분류학에 대한 지식이 아주 없던 조선후기에 한반도 식물은 주로 외국 학자들에 의해서 서구에 소개된다. 일본을 통해 한반도에 들어온 1860년 영국인 Wilford, Oldham, Carles, 1880년 독일인 Sontag, 1897년 러시아의 Komarov 등 서양 학자들이 한반도 식물을 채집하고 그 표본을 서구의 식물원이나 표본관에 보내 한반도의 식물을 부분적으로 소개한다. 이후 한반도 식물을 대대적으로 서양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분으로 프랑스 파리외방선교회에서 파견한 두 신부 Urbain Faurie(1847~1915)와 Emile Joseph Taquet(1873 ~1952)가 유명하다. 당시 서구에서는 생물종 하나하나를 단순히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원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의식주는 물론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자원으로 생각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전 세계에 분포하는 생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대대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하여 정리한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과 당시 우리나라에 파견된 선교사 신부들이 전교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한 방편으로 식물채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프랑스 선교사 두 신부 Faurie와 Taquet의 공적

프랑스 신부 Urbain Faurie(1847~1915)는 1874년에 일본 니가타 현에 선교사로 들어와 선교활동을 하면서 일본 식물을 광범위하게 채집하여 일본 교토대학과 유럽의 프랑스, 영국 등의 표본관에 보낸다. 이후 그는 한반도에 부임한 각지의 서양 신부들의 협조를 받아 1901~1907년 3차례에 걸쳐 한반도 전역을 아우르는 식물을 대대적으로 채집하여 구미 여러 나라 표본관에 보낸다. 이때 우리나라 한국특산이며 멸종위기종인 백부자도 그가 강원도에서 채집해 프랑스 식물학자 레빌레(H. Léveillé, 1864-1918)에게 보내 신종으로 처음 기재되기도 한다. 한편 한국명 엄택기(嚴宅基)라고도 부른 Taquet는 1898년 선교사로 한국 대구교구에 부임한 이래 경남, 전남, 제주 등 주로 남부지역에서 전교활동을 하면서 식물에 관심을 갖고 수많은 식물을 채집하여 구미 여러 나라의 대학이나 박물관에 보낸다. 그 유명한 왕벚나무를 비롯하여 수십 종의 제주도 특산식물이 그가 채집한 표본에 의해 서구에 알려졌다. 학명에 채집자 Taquet가 들어 있는 제주도 특산종만도 13가지가 된다고 한다.

▲ 프랑스 외방선교회의 Emile Joseph Taquet 선교사 신부(제주위클리 사진)

구상나무가 서구에 알려지기까지

한반도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Faurie 신부는 일본에서 건너와 1902년 제주도 서귀포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선교활동을 하던 Taquet 신부를 만난다. 그는 1907년 5월부터 10월까지 함께 한라산 식물을 채집하며 그에게 표본 제작법도 가르쳐 준다. 이때 Faurie는 한라산에서 채집한 구상나무를 분비나무로 생각하고 당시 미국 하버드대학교 아널드식물원의 분류학자 Ernest Henry Wilson(1876~1930)에게 그 표본을 보낸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버밍엄식물원에서 정원사로 일하면서 식물학을 공부한 후 Kew 왕립수목원의 직원이 된다. 2017년부터 영국 및 미국 식물원의 후원을 받아 수차례 중국, 일본, 대만 등의 동아시아 지역의 식물을 대대적으로 채집하고 표본과 함께 사진을 찍어 유럽과 미국의 표본관에 보낸다. 1927년 이후에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아널드식물원(Arnold Arboretum)의 관리자가 되어 식물 연구를 계속한다.

▲ 경기도 가평 화악산 정상 근처에서 만난 분비나무

구상나무를 채집하러 몸소 한라산에 오른 Wilson

Wilson은 Faurie가 제공해 준 표본이 아무리 보아도 전나무와는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자생지에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서 1917년 10월에 제주도에 찾아온다. 그는 Taquet 신부와 당시 제주도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인 식물학자 Nakai Takenosin을 만나 함께 한라산에 올라간다. Faurie가 채집했던 한라산 표고 1100~1900m 수림 같은 장소에서 구상나무를 직접 채집해 미국에 가져간다. 그 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구상나무는 형태적으로 전나무나 분비나무와는 전혀 다른 특징이 있음을 발견한다.

 

▲ 한라산 윗세오름 근처의 구상나무

구상나무 학명의 명명자 Wilson

Wilson은 제주도 한라산에서 채집한 표본을 정기준표본으로 삼아서 1920년 아널드식물원 연구보고서 1호에 구상나무를 “Abies Koreana E. H. Wilson”이란 학명으로 신종 발표하게 되었다. 속명 ‘Abies’ 는 전나무를 뜻하는 라틴어로 구상나무가 전나무속으로 분류됨을 뜻하고, 종소명 ‘Koreana’는 ‘한국의’라는 뜻으로 원산지가 한국임을 밝힌 것이다. 구상나무를 영명으로는 ‘Korean fir’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도 한국이 원산지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Wilson이 이 나무를 한국명으로 ‘구상나무’라고 한 것도 ‘쿠살낭’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최초로 한반도의 식물을 대대적으로 채집하고, 집대성한 일본의 식물분류학자 Nakai Takenosin(中井猛之進, 1882~1952)까지도 그 당시에는 구상나무를 분비나무와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이름으로 처음 명명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구상나무 채집 때 제주도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Ernest Henry Wilson(구굴 저장 사진)

비싼 로열티를 주고 역수입되는 구상나무 품종

Wilson은 그때 한라산에서 채집한 구상나무 표본과 함께 종자도 가져가 하버드대학교 아놀드수목원에 심고 길러 여러 가지 품종을 육종하여 등록한다. 오늘날 구미에서 ‘Korean fir’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크리스마스트리용 구상나무는 바로 한라산 구상나무가 원조가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구상나무 '피콜로'(Abies koreana 'Piccolo')”라는 품종 등 5종류의 구상나무 재배품종이 비싼 로열티를 주고 역수입되어 시판되고 있다. 나무시장에서 키 5m 정도의 구상나무 묘목 한 그루가 100만원을 호가할 정도라고 한다. 수년 전 재건축한 우리 아파트 울타리엔 처음엔 구상나무가 식재되었다. 그러나 이 값비싼 나무가 도심의 극심한 열섬현상으로 견디지 못하고 지금은 태반이 고사하고 스트로브잣나무로 대체되었다. 살아남은 것조차 환경조건에 맞지 않아 잘 자라지 못하고 겨우 연명하고 있어 안타깝다.

▲ 우리 아파트에 조경수로 식재된 구상나무 품종

세계자연보호연맹 적색목록 위기종 구상나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야생생물의 멸종을 방지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멸종 위험이 높은 생물을 선정하고, 이들 종의 분포 및 서식 현황을 수록한 자료집을 발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 국가 차원의 적색자료집이 발간되지 않았지만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을 주축으로 적색자료집 발간사업을 착수하여 2012년도에 관속식물에 대한 적색목록이 발간되었다. 구상나무는 1980년대부터 기후변화 및 그에 따른 마름병으로 인해 고사한 개체들이 증가하고 있어 국가적색목록 평가 결과 및 IUCN 범주 위기종에 해당한다. 전라북도 덕유산 향적봉 주변의 구상나무는 무주스키장 슬로프 건설 이후 많이 훼손되었고, 한라산 구상나무 군락은 제주조릿대의 침입으로 개체들이 감소하고 있어 보호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한라산 윗세오름 근처 고사한 구상나무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부에디터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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