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인가 딸이 이 영화는 꼭 봐야한다며 추천한 영화가 있다. 일본 만화가 유우(優)의 만화 ‘늑대아이’를 2012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영화다.

영화 줄거리는 이러하다.

'하나'는 대학 강의실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학생에게 반한다. 그는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 트럭기사로 일하며 학교를 다니는 고학생이었다. 그와 그녀는 서로 사랑하지만 그는 그녀를 가까이 하려하지 않는다. 그는 100년 전 멸종한 일본늑대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마지막 늑대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인간으로 살지만 밤이나, 본성에 충실할 때는 늑대로 돌아간다.

그의 고백에도 '하나'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둘은 결혼을 하고 첫째 딸 ‘유키’를 낳고 문명사회에 나름 적응하며 산다. 하지만 둘째 아들 ‘아메’를 낳았을 때 그는 늑대로 돌아간 상태에서 사고로 죽고 만다.

두 아이는 아빠와 같은 늑대아이였다. '하나'는 두 아이가 본성을 감추고 살기에 도시가 적합지 않다고 판단한다. 주변에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 산속 농가로 이사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아이 둘을 기른다.

아이들은 인간과 늑대사이를 오가며 성장한다. 누나인 '유키'는 천방지축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였고 동생 '아메'는 눈물 많고 겁 많은 소심한 아이였지만 둘 다 화가 나거나 흥분하게 되면 귀가 쫑긋 나오고 꼬리가 뾰쭉 나오는 늑대로 변하여 날뛰었기 때문에 이웃과도 거리를 두며 산다.

취학연령이 되자 '유키'는 학교에 보내달라고 요구한다. ‘하나’는 문명사회에 늑대아이를 내보내는데 많은 고민을 하지만 '유키'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유키는 학교에 잘 적응했다. 몇번 위기도 있었지만 늑대본성을 잘 감추면서 인간과 친구 되는 법과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도 배워나간다.

누나를 따라 원치 않는 학교생활을 시작한 '아메'는 적응하지 못한다. 수업 내용도 관심이 없고 친구도 만들지 못한다. 방과 후 숲에 자주 가면서 늑대로 지내는 것이 더 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춘기가 오면서 '아메'는 학교를 자퇴하고 숲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대장늑대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인정받으면서 '아메'는 강한 늑대로 변해간다. 문명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더라도 인간으로 살자는 엄마의 애원에도 '아메'는 늑대를 선택하고 숲으로 들어간다. 멀리서 엄마를 지켜보며 대장늑대가 되어 점점 인간세상과 거리를 두고 산다. '유키'는 인간을 선택하고 문명사회에서 잘 살아간다.

딸은 이 영화에서 '유키'는 어린 시절 야생 망아지같이 방방 뛰던 자신과 닮았고, 눈물 많고 마음 약한 '아메'는 겁 많던 동생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웃었다. 두 아이 대조적 모습이 우리 두 아이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유키'와 '아메'는 아주 달랐다. 그 다름만큼 각자 본성이 부르는 아주 다른 삶을 선택한다. 우리 아이들도 어려서 너무나 달랐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각자 본성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시대는 어려서 ‘이래야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 자랐다. 특히 나 같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선머슴 같이 고집 센 여자아이들은 어른 잔소리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덜하셨지만 조신함을 강조하는 할머니는 늘 나를 골치 아픈 아이로 생각하셨다. 큰 키에 마른 체구를 지닌 학같은 할머니가 말없이 이마에 손을 얹으시고 나를 엄한 눈으로 보시면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렸다. 그런 할머니에 맞서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내편은 할머니에 절절매는 내가 보기에도 힘없는 엄마 밖에 없었다.

어려서 아주 충격적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고모 집에 산만한 장난꾸러기 나는 떼어놓고 언니만 데리고 가신 거다. 잘사는 고모 집에는 맛있는 것도 많고 재미있게 놀던 동갑내기 사촌도 있었기에 따라가겠다고 쫓아가다, 할머니의 차가운 눈빛 한방에 포기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결국 엄마의 권유대로 나와 다른 얌전한 언니처럼 할머니 마음에 드는 아이가 되어 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런 나 자신에 실망했고 그러지 못하는 내 성격이 싫어지기도 했다. 성인이 되서야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솔직발랄한 진짜 나는 잃어버리고, 어설프게 조신한 난지 아닌지 모를 나와 동거하게 된 것이다. 할머니가 주입시켰던 고정관념은 내 속에 자리잡아, 지금까지도 나의 태도와 행동 등 모든 것에 관여하고 있다. 심지어 옷 입는 취향까지...

내 아이들을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갖고 태어난 본성을 존중하며 키우고 싶었다. 고정관념에 갇혀 ‘주입과 강요’하는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딸은 '유키' 같이 자기주장이 강해 강요한다고 들을 아이가 아니라서 자율성을 맘껏 주었다. "엄마 맘만 있어? 내 맘도 있지."라는 식으로 쉽게 넘어가는 것 없이 매사에 따지고 들어 아주 피곤했지만 그 따지는 것에 단 한 번도 ‘어른에게 대든다', '말대꾸 한다’는 식으로 야단쳐본 적 없다. 충분히 들어주고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주었다. 다행히 제멋대로 아이는 되지 않았다.

딸의 선택은 되도록 존중해줬다. 그 선택으로 넘어지기도 했고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 말 들을 걸” 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또 자기 길을 갔다. 자신이 선택한 길은 열심히 살았다. 그게 힘들었는지 이런 말도 했다. “엄마, 나는 왜 어딜 가든 열심히 살게 되지? 사람들도 나에게 그런 기대를 하는 것 같아. 나도 대~충 살고 싶은데...”

아들은 '아메' 같이 자기주장을 거의 내세우지 않았다. 내 치마 뒤에 숨어 ‘몰라’와 ‘안 해’를 입에 달고 살았기에 정확히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배만 고프지 않으면 되는 아이였다. 학교생활은 그 이상이 요구되는 곳이라서 적응하지 못했다. 앞이 안보일 때면 어떤 길을 알려줘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부모가 길을 제시하고 따르게 할 순 없었다. 자발적 의욕이 없는 길은 허탕 치는 길이라는 것을 누차 경험했기에 답답해도 ‘언젠간 제 길을 찾겠지’하고 기다렸다. 

세상을 구경만 할 것 같던 아들도 우여곡절 끝에 자기 길을 찾아 현재까지는 잘 달리고 있다. 작년에 친척이 아들이 어릴 때와 너무 달라졌다고 어떻게 그렇게 달라졌냐고 물었다. 아들은 “부모님께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강요하지 않으시고, 제가 뭔가 해본다고 할 때 밀어주셨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니까 그렇게 하기 싫던 공부도 하게 되네요.” 답했다.

얼마 전 딸은 제 꿈을 찾아 또 먼 길을 떠났다. 거기서도 열심히 할 거라는 것을 안다. 뭐든지 호기심을 갖고 열심히 하는 것이 제 본성이니까... 자존심이 강해 자신이 아래로 처지는 것은 견디지 못하니까... 그렇게 4~5년 열심히 하면 평생 제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하며 살 수 있을 거다.

아들은? 아직 잘 모르겠다. 가끔 어린 시절 아들과 지금 아들을 생각하면 이게 꿈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정반대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심약한 인간 '아메'가 강인한 늑대 '아메'로 변모한 것처럼 겁보, 울보 아들도 당당하고 듬직한 아들로 변했다. '아메'는 본성이 부르는 곳으로 달려가면서 강인해졌다. 아들이 지금 서있는 곳도 그런 곳일까? 자신이 원한 곳이지만 진짜로 아들 본성이 부른 곳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해도, 현재까지는, 아들이 '아메'와 달리 인간세상(?)을 택해준 것이 무척 다행스럽고 고맙기도 하다.    

▲ 눈덮힌 산에서 늑대가 된 유키와 아메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71622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부에디터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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