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3

뭔가가 분명 잘못되었다. 반환점이 코앞인데 손목의 카시오 시계는 아직 한 시간 반도 넘지 않았고 평소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서너 걸음 앞에서 뛰고 있는 페이스메이커의 등에는 분명 '4시간'이라고 검은 글씨로 선명히 쓰여 있었고 그 활자의 위엄은 선뜻 무엇을 물어보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반환점을 돌면서 도저히 물어보지 않고는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2006년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섬진강 마라톤 대회, 나는 강을 따라 피기 시작한 벚꽃에는 신경도 쓰지 못하고 숨이 턱에 차서 곧 쓰러질 것만 같이 위태롭게 뛰고 있었다.

"저기…. 선생님 페이스가 4시간이 맞나요?"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따라잡아서는, 다른 사람이 혹시 들을까 창피해서 바싹 다가가서 물었다.

"네 ? " 그는 속도를 줄이며 자신이 입고 있는 조끼를 굽어보더니 낯빛이 핼쑥해졌다. 어…. 내 시간이 아니네……. 그의 뒤를 따라 뛰던 사람들이 순간 모두 멈추어 섰다. 어쩐지 너무 빠르더라…. 일부는 그냥 다시 뛰고 일부는 길옆에 주저앉았다.

나는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탁탁하며 탄력을 유지하던 다리가 갑자기 힘이 풀리며 천근만근 무거워지기 시작하더니 그로부터 몇 킬로도 못가서 숨은 턱에 차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갔다. 다리는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체의 리듬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제멋대로 바닥을 끌며 움직였다. 같이 뛰던, 페이스메이커 잘못 만난 불행한 초보들 대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4시간짜리 초보들이, 반환점을 한 시간 반 이전에 턴 하는 준 프로를 따라 왔으니 그때까지 따라온 것만도 장할 터였다. 동호회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 2006년 섬진강 마라톤 대회가 열렸던 전남 곡성군 석곡 초등학교

"그러게 누가 앞에 나서서 잘난 척하고 그러래? 다들 같이 행동할 거와 같이하더니 재계약 안 해준다니까 다 도망갔잖아! 이제 가게 망했으니 어떡할 거야? "

아내는 재계약이 불가하다는 본사의 내용증명서를 들고 절망에 찬 목소리로 울다시피 하고 있었다. 며칠 전 본사까지 찾아가서 명의를 바꾸고 회장을 사퇴할 뿐 아니라 가맹점 협의회 일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며 비굴하게 사정을 해 보았지만 허사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몇 달은 참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빚으로 시작한 가게는 매일 독촉에 시달렸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본사와 싸움으로 인한 계약해지로 가게는 초토화되었고 같이 행동하자고 맹세했던 동지(?)들은 모두 항복하고 말았다. 시범 케이스로 걸린 내게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없었고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었다.

급수대를 지나며 보니 30km 라고 쓰여 있었다. 42.195 . . .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르지 . . . 하기야 당신이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었어? 왜 내 탓만 하고 그래? . . . 니르바나라고 했던가 . . . 열반 . . . 멈추느니 죽겠다 . . .

급수대도, 중간 중간에 세워 놓은 거리 표지판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별 느낌도 없고 그저 멈출 수는 없다는 무의식만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끝없이 뻗은 길을 보기가 너무 힘들어 바닥만 보며 뛰었다. 아니 몸을 질질 끌며 갔다. 사람이 죽을 때 순간적으로 평생 지나온 과거가 스치듯이 보인다고 했던가 . . . 하얗게 비워진 머릿속으로 지나온 과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부분은 슬픈 일들이었다. 즐거웠던 추억 따위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몸이 앞으로 나아갔는데 다리가 안 따라온다고 느낀 순간, 나는 마치 느린 화면이 움직이듯이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땅에 닿은 육신의 모든 부분들이 이제 편하다고, 살 것 같다며 일어서지 말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니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 . . 평생 뭐 하나 제대로 해본 게 있냐 . . .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초보 마라토너들을 박살낸 그가 몇 시간대의 페이스메이커 이었는지 지금도 기억에 없다. 하여튼 그로 인해 그의 시간표를 믿고 뒤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낙오했으며 낙오까지 하지는 않았던 나 같은 사람들도 초반의 오버페이스로 인해 뛰다 걷다 혹은 기다시피하며 거의 초죽음이 되어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렇게 나의 버킷리스트의 한 목록이었던 마라톤은 5시간이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기고 지워졌다.

서울에서부터 원정 응원을 왔던 친구는 내가 거의 초죽음이 돼서, 아무도 박수 쳐 주지 않는 결승선을 통과하자 박수 대신 쓰러지는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왜 내가 그 토록이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라톤을 하였나를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여기에서 하기에는 너무 길지만 하여튼 섬진강가에서, 그 하얗게 비어가던 고통을 기억하며 죽자 사자 본사와 싸웠고 재계약에 성공했다.

광화문에 있던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내게 재계약을 해 줄 테니 싸움을 멈추자고, 비공식임을 강조하며 오히려 사정하던 본부장은 내게 '유사장님 정말 지독한 사람이다' 라며 칭찬인지 비난인지를 해댔다. 허세를 부리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지나가는 말을 하듯 그에게 물었는데, 그의 어리둥절했던 표정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본부장님 혹시 마라톤 완주해 보셨어요?"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유원진 주주통신원  4thme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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