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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이야기 14. 이지산 주주통신원l승인2019.05.23l수정2019.05.2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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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수업시간에 만난 Larissa는 카메룬에서 온 흑인 여학생이다. 눈은 사슴같이 맑고 하얀 치아를 들어내고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순수함이 느껴진다. 말도 차분히 하는 편이라 대화가 편안하다. 팀별 작업에서 우연히 Larissa와 같은 팀이 되어 연구계획서를 작성했다. 수업시간 외에도 모여 계획서를 작성하면서 Larissa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Larissa는 현재 석사과정 중이다. 석사과정 마치고 의대에 지원할 계획이다. 캐나다는 학사과정 3~4년 후 의대 지원이 가능하다. 학부성적 외에도 다양한 경력 및 활동이 의대 합격에 영향을 준다. Larissa는 대학 졸업 후 의대에 지원했지만 안타깝게도 경쟁에 밀려 합격하지 못했다. 석사과정으로 이력을 좀 더 강화한 후 다시 의대에 도전해 볼 거라고 했다.

어느 금요일 저녁, Larissa와 같이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주말 계획을 물었다. Lasrissa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 주말엔 오타와에서 공부하고 있는 언니가 몬트리올에 놀러와. 그래서 몬트리올 시내도 구경하고 식사도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 라고 이야기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내 동생도 토론토에서 공부하고 있기에 Larissa의 기쁨이 마치 나의 기쁨처럼 전달되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아, 언니도 카메룬에서 와서 여기서 살고 있는 거야?”

“응, 언니도 오타와에서 공대 석사과정을 하고 있어.”

“그렇구나, 너도 언니도 공부파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둘 다 멋지다! 부모님이 너무나 뿌듯하시겠어!” 라고 말하자 Larissa는 멋쩍은 듯,

“응, 우리 부모님도 두 분 다 공부를 많이 하셨어. 아버지는 카메룬에서 의사고 어머니는 교수야. 그래서 우리에게 항상 ‘배움’을 강조하시지. 안타깝게도 카메룬은 대학교육이 그렇게 좋지 못해. 부모님은 나와 언니가 조금 더 큰 곳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캐나다 최첨단 기술과 앞서 나가는 학문을 배우라고 유학 보내주셨어.”

“아, 그렇구나. 사실 난 카메룬에 대해 잘 몰라. 교육 환경이 그렇게 어려운 줄도 몰랐어. 이렇게 들으니 놀랍고 안타깝네.”

“응, 카메룬은 캐나다에 비해 교육, 건강, 경제 등 많은 것들이 뒤처져 있어. 특히 카메룬에는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해서 일반 시민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려워. 의료기술도 캐나다에 비해 뒤처지고. 이런 현실을 알기에 캐나다에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어. 캐나다의 의료기술을 배우고 몸에 익힌 다음 카메룬에 돌아가 병들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언니도 나와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 석사를 끝내고 카메룬에 돌아가 수도 및 도로 시설 설계증진을 위해 일할 계획이야”

Larissa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날카롭고 단호한 눈빛으로 다짐하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순하게만 보였던 Larissa의 당차고 매서운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고 '어떻게 하면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까~~' 궁리하고 있는 나의 이기적인 면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왜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캐나다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나서 캐나다 연구시설이나 연구기술·방법이 한국과 비교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한 달 지나고 가만히 보니 다른 특이한 점이 있었다. 석·박사과정 학생들, 교수들 다들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고, 주말에도 각자 필요시에만 일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연구업적은 한국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

어떻게 일을 덜하고 업적이 좋을 수 있을까? 처음엔 보이지 않던 캐나다 연구시스템이 1년 정도 지나니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중요한 4가지를 꼽아보자면...

첫째, 캐나다는 협력연구를 정말 쉽게 한다. 협력연구는 다른 실험실과 공동 연구를 말한다. 생물이란 학문은 분야도 다양하고 실험범위도 광범위하기 때문에 각 실험실마다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실험이 있다. 연구를 하다 보면 내가 모르는 분야의 실험을 해야 할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럴 경우 캐나다에선 연구원 혼자 해결하기 보단 그 분야에 있어 전문가인 실험실에 연락을 취해 공동연구를 요청한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협력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너무나 조심스럽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경우만 협력연구를 진행한다. 본인의 연구 결과를 다른 연구자에게 노출하는 것을 극히 두려워한다. 내 연구를 다른 연구자가 베껴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는 서로 모르는 과학자끼리도 신뢰가 탄탄하게 쌓여있다. 본인의 연구결과나 전문지식을 공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연구를 진행하다 막히는 것이 생기면 곧 바로 주위 전문가를 찾아 물어보거나 협력연구를 요청한다.

▲ 기관에서 연구원 간 소통을 위해 연 행사에서. 5명이 한팀이 되어 경쟁 실험에 참여한다. 진짜 경쟁이 아니고 재미로 하는 거다. 우승팀 상품은 커피 등을 사먹을 수 있는 기프트콘.

둘째, 캐나다 연구기관에선 학생들 성장이 곧 연구기관의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기관에선 학생들 안목을 넓혀주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면 기관에서는 매주 저명한 과학자를 초대해 1시간동안 강의를 진행한다. 초대된 과학자는 캐나다, 미국,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 국적과 연구 분야도 다양하다. 강의 내용은 과학자가 진행한 연구, 접근 방법 그리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이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초대 과학자와 학생들은 같이 점심식사를 하며 좀 더 편안한 느낌으로 질문을 주고받는다. 나도 점심식사에 몇 번 참여하였고 연구 외에도 과학자로서 삶은 어떤지 그리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등 자연스레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이런 대화는 사실 연구에 대한 안목을 넓히는 것 외에도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실험에선 가설과 반대되거나 해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는 일이 빈번하다. 90% 그런 결과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이런 부정적 결과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보면 결국 정신적으로 지치게 되고 연구 본연의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와중에 초대 과학자의 중요한 연구 결과 그리고 그 결과가 우리 삶에 일으킬 변화를 듣게 되면 다시금 연구에 대한 설렘과 열정이 생기게 된다. 우리 기관뿐만 아니라 캐나다 다른 연구기관에서도 초대 과학자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항상 연구원들이 다양한 연구에 노출되고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셋째, 우리기관에선 연구원 개개인이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어떤 재료를 갖고 있는지 서로가 잘 안다. 석·박사와 박사 후 과정 학생들이 연구를 시작한지 1년 정도 지나면, 그간 연구결과를 발표할 기회를 갖는다. 한 달에 4번 정도 학생들 발표가 진행되는데, 이 발표 때 가까운 동료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상세히 알게 된다. 이 덕분에 특정 연구를 진행하다 궁금한 점이 생길 때 다른 실험실 어떤 연구원을 찾아가야 되는지 다들 정확히 알고 있다.

▲ 기관에서 마련한 할로윈 파티에서 우리 실험실 연구원들. 모두 즐거워 보인다. 기관에서는 학생들 연구 안목을 넓히기 위한 행사 뿐만 아니라 친목 도모를 위한 행사도 가끔 열어준다.

넷째, 캐나다는 연구원 간 구조가 수평적이고 서로에 대한 존중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예를 들면 연구경력이 많은 연구원과 적은 연구원간에 수직적 상하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일을 시키거나 부탁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이 많은 연구원들이 자기 시간을 할애해 경험이 부족한 연구원에게 연구방법을 알려주거나 조언을 해준다. 이런 연구 환경 덕에 초짜 연구원들은 심리적 상처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음 편하게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각 실험실 보스들은 연구원들 사생활을 보장해준다. 1년에 4주 정도 휴가를 주고 출퇴근 시간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다들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생각인 것 같다. 주말에 불러내지도 않는다. 이는 우리 호랑이 보스 스테판도 마찬가지다.

이런 4가지는 캐나다 사람들이 갖는 기본 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아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이런 의식을 갖고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 존중, 열린 마음 그리고 이런 의식에 기초한 대화방법이 일상 삶뿐만 아니라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도 잘 깔려있다. 어찌 보면 인간관계에서 당연한 의식이지만 우리나라 연구기관에선 이런 의식이 너무도 부족하다.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할 때 나를 비롯한 석사과정 학생들에겐 사생활이란 거의 없었다. 실험실에서 존중의 가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석·박사 과정을 시작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노예’로 살아야한다고 학생들끼리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렇게 해야만 성공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지금도 한국 실험실에선 석·박사 학생들이 잠도 제대로 못자고 휴일도 반납한 채 오로지 실험만을 위해 살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노력과 시간 대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 발전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우리나라 또한 생명과학 분야 연구에 정부가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기관 그리고 연구원들 의식은 옛날 방식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무지막지한 시간 투자, 토 달면 안 되는 명령복종식 상하관계 그리고 경쟁을 강조하는 삭막한 실험실 분위기.

외국에서 한국 사람들은 성실하며 똑똑하고 빠릿빠릿한 민족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우리기관에서 학생들 이력과 장학금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한국 학생들은 정말 이력도 좋고 연구도 잘한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아 어깨가 으쓱했던 적이 있다. 이렇게 우수한 우리 인적자원이 한국에서는 효율적으로 관리되지 못하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다.

Larissa가 캐나다의 앞선 학문을 배워 고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나도 학업을 마친 후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만약 한국에 돌아가게 된다면 캐나다 같은 연구 환경은 꼭 전파하고 싶다. 한국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의 의식이 바뀐다면 연구자들은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며, 상호 평등하게 협력관계를 맺으며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좋은 결과도 얻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일할 수 있다면 왜 수많은 과학자들이 한국에 돌아가길 마다하겠는가?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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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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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원진 2019-05-28 13:18:32

    누군가 힘들어도 그 길을 걷기 시작한다면 뒤 따르는 사람이 있겠지요. 앞서 가는 사람의 희생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 .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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