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막내 여동생인 계순 고모가 돌아가셨다. 한 달 전 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고 남은 시간이 한 달 정도라고 했는데 그 한 달을 다 채우지 못하셨다. 노인들의 내일은 예측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동안 이곳저곳 아픈 데가 있었지만 노년이라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 나이 들면서 귀가 들리지 않아 힘든 것을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잘 견디셨는데 85세를 일기로 지상 여정을 마치셨다.이제 할아버지 최운산장군의 역사를 찾기 시작했는데!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의 역사가 진실을 찾아가는 첫 걸음을 시작했고, 대한민국의
[편집자주] 최운산 장군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숨은 영웅이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승전의 주역이지만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에 비해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월 4일 최운산장군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기념사업회는 “무장독립전쟁의 승리는 몇몇 부대장의 영웅 신화가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일”이라며 최장군을 비롯하여 형님 최진동, 동생 최치흥 등의 활약을 발굴하고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글은 최운산 장군 손녀 최성주 주주통신원이 쓰는 글이다.손자들이 모여 할아버지 최
[편집자주] 최운산 장군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숨은 영웅이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승전의 주역이지만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에 비해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월 4일 최운산장군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기념사업회는 “무장독립전쟁의 승리는 몇몇 부대장의 영웅 신화가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일”이라며 최장군을 비롯하여 형님 최진동, 동생 최치흥 등의 활약을 발굴하고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글은 최운산 장군 손녀 최성주 주주통신원이 쓰는 글이다.2015년 9월 봉오동 첫
[편집자주] 최운산 장군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숨은 영웅이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승전의 주역이지만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에 비해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월 4일 최운산장군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기념사업회는 “무장독립전쟁의 승리는 몇몇 부대장의 영웅 신화가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일”이라며 최장군을 비롯하여 형님 최진동, 동생 최치흥 등의 활약을 발굴하고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글은 최운산 장군 손녀 최성주 주주통신원이 쓰는 글이다. 큰할아버지 최진동 장군의
[편집자주] 최운산 장군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숨은 영웅이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승전의 주역이지만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에 비해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월 4일 최운산장군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기념사업회는 “무장독립전쟁의 승리는 몇몇 부대장의 영웅 신화가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일”이라며 최장군을 비롯하여 형님 최진동, 동생 최치흥 등의 활약을 발굴하고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글은 최운산 장군 손녀 최성주 주주통신원이 쓰는 글이다.할아버지, 저는 당신께서
최운산 장군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숨은 영웅이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승전의 주역이지만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에 비해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월 4일 최운산장군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기념사업회는 “무장독립전쟁의 승리는 몇몇 부대장의 영웅 신화가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일”이라며 최장군을 비롯하여 형님 최진동, 동생 최치흥 등의 활약을 발굴하고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주주이며 '문화공간:온'의 월요영상팀인 최운산장군의 손녀, 최성
올해 85세의 막내고모 계순은 귀가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도 대화가 어렵다. 우리가 종이에 글을 써서 질문하면 고모는 귀찮아하지 않고 지난 기억을 더듬어 정확하게 답을 하려고 애쓰신다. 이야기를 듣다가 중간에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고모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망설이게 된다.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내용이 훨씬 풍부해질 텐데 필담의 한계가 고모의 아름다운 삶을 다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열두 살에 부모를 잃고 갑자기 어른이 되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최운산 장군의 막내딸 계순은 그 모진 세월을 다 견뎌내고 70대
1983년에 방송한 KBS 프로그램을 통해 연변에 살고 있던 고모들과 막내삼촌을 만났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하기 전이었지만 “중공에서 찾습니다”란 코너가 있었다. 그 방송에서 아버지의 최봉우를 찾는 형제들을 확인한 것이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사실 아버지는 이산가족 신청을 포기했었다. 피난 내려와 최치영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던 아버지는 공산 치하에서 출신 성분을 숨기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북한과 중국의 형제들이 당신으로 인해 지주의 가족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더 큰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음을 더 걱정하신
할아버지 최운산 장군과 할머니 김성녀 여사는 모두 열한 명의 자식을 낳으셨다. 최운산 장군은 매번 충분히 산후조리를 할 수 있도록 아내를 보살폈고, 김성녀 여사에게 그 시간은 행복한 재충전의 기회였다고 한다. 그래선지 할머니는 유난히 자식 욕심이 많으셨다. 하지만 얼굴이 예뻐 고분네라고 불렀던 딸을 포함해 모두 넷을 어려서 잃었다. 그리고 위로 청옥부터, 영옥, 옥순, 옥순과 연년생으로 첫아들인 아버지 봉우(鳳羽)와 둘째아들 봉학(鳳鶴), 그리고 막내딸 계순과 많은 막내아들 호석까지 딸 넷과 아들 셋, 7남매가 남아 성장했다.그 중
봉오동 방문 후 본격적으로 할아버지 형제들의 독립운동과 관련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막내여동생과 함께 독립기념관, 역사편찬위원회,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등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비롯해 만주독립운동에 관한 자료가 보관 되어있는 곳은 모두 살펴보고 있다. 증조부 崔友三이 함경북도 온성에서 이주했던 조선 말기 간도의 역사, 한일합방부터 해방까지의 무장독립전쟁, 당시 연변의 경제와 사회상, 자연과 지리 등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은 가능한 모두 찾아보려고 애쓰고 있다.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항일 무장독립운동사에서 대규모 승전으
위로 누나만 넷, 다섯째였으나 딸 부잣집의 귀한 장남이었던 아버지 최봉우는 최운산장군의 수려한 용모를 물려받은, 요즘말로 엄친아의 전형이었다. 최운산장군의 큰아들이 태어나던 날 봉오동 초모정자산에 환한 서기가 감돌았다는 이야기가 오래도록 전해질 만큼 아버지는 그 마을의 신화적 인물이었다. 얼굴뿐 아니라 결단력까지 부친을 닮았던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부모 몰래 일본유학을 감행했다. 봉오동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후 할아버지가 일본행을 허락하지 않자 용돈을 모아 무작정 떠났고, 동경에서 보내온 소식을 전한 아들의 뜻을 꺾지 못한 최운산 장
딸 넷을 낳고 첫 아들을 낳기까지 마음고생이 심하셨던 할머니는 내가 딸이고 당신을 닮아 짱구라는 이유로 나를 구박하셨다. 셋째인 나는 위로 오빠가 둘, 바로 아래 남동생이었다. 7살 터울의 막내 여동생이 생기기 전까지 아들 셋 사이의 귀한 딸 하나였지만 할머니는 딸은 무조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셨는지 유난히 나를 구박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큰딸인 나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할머니로부터의 모든 차별이 상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손자들만 유별나게 챙기는 할머니를 구습의 대표적 표상으로 느끼곤 했다.그런데 할아버지의 독립운
[편집자주] 최운산 장군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숨은 영웅이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승전의 주역이지만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에 비해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월 4일 최운산장군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기념사업회는 “무장독립전쟁의 승리는 몇몇 부대장의 영웅 신화가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일”이라며 최장군을 비롯하여 형님 최진동, 동생 최치흥 등의 활약을 발굴하고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글은 최운산 장군 손녀 최성주 주주통신원이 쓰는 글이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보
[편집자주] 최운산 장군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숨은 영웅이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승전의 주역이지만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에 비해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월 4일 최운산장군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기념사업회는 “무장독립전쟁의 승리는 몇몇 부대장의 영웅 신화가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일”이라며 최장군을 비롯하여 형님 최진동, 동생 최치흥 등의 활약을 발굴하고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글은 최운산 장군 손녀 최성주 주주통신원이 쓰는 글이다. 2015년 가을 봉오동을
[편집자주] 최운산 장군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숨은 영웅이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승전의 주역이지만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에 비해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월 4일 최운산장군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기념사업회는 “무장독립전쟁의 승리는 몇몇 부대장의 영웅 신화가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일”이라며 최장군을 비롯하여 형님 최진동, 동생 최치흥 등의 활약을 발굴하고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글은 최운산 장군 손녀 최성주 주주통신원이 쓰는 글이다.나는 이제라도 봉오동전투에
[편집자주] 최운산 장군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숨은 영웅이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승전의 주역이지만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에 비해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월 4일 최운산장군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기념사업회는 “무장독립전쟁의 승리는 몇몇 부대장의 영웅 신화가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일”이라며 최장군을 비롯하여 형님 최진동, 동생 최치흥 등의 활약을 발굴하고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글은 최운산 장군 손녀 최성주 주주통신원이 쓰는 글이다.내 부모님의 고향은 두만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