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 명상 6: 결 리(理)

<2020. 06. 27.>

대개 글자 理(리)는 어떤 단어를 이루는 글자 중에서 맨 나중에 온다. 예컨대, 논리(論理), 물리(物理), 사리(事理), 생리(生理), 수리(數理), 수리(修理), 심리(心理), 심리(審理), 일리(一理), 주리(腠理), 지리(地理), 처리(處理), 추리(推理), 국무총리(國務總理), 사표수리(辭表受理),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등에서 확인된다. 반면 理를 맨 앞에 배치한 단어는 이공(理工), 이과(理科), 이궁(理窮), 이론(理論), 이상(理想), 이유(理由) 등으로 그리 많지 않다.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보면, 理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뜻은 각각 ‘다스리다’와 ‘다스려지다’이다. 문자대로 하면, 물리는 ‘만물이 다스려지다’, 사리는 ‘일이 다스려지다’, 심리는 ‘마음이 다스려지다’, 지리는 ‘땅이 다스려지다’ 등으로 풀이된다. 의문이 생긴다. 마음을 다스린다면, 마음의 무엇을 다스리는가? 땅을 다스리려면, 땅의 무엇을 다스려야 하는가?

파자하면, 理 = {玉, 里}. 구슬 옥(玉)은 뜻을, 마을 리(里)는 음을 각각 나타낸다. 즉 理는 형성문자이다. 理는 옥의 원석(原石) 속에 숨어 있는 고운 결을 갈아내는 일이다. 理자는 본래 옥에 새겨 넣은 무늬를 뜻했다. <네이버 한자사전>은 그렇게 설명한다. 조금 확장하여 마을 리(里)가 뜻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면, 理는 결 하나만을 뜻하지 않고 고운 결의 집합으로 풀이된다. 마을은 여러 사람의 집합으로 이뤄지니까.

옥을 높이 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그 고운 결이다. 玉은 거의 ‘고운 결’의 대명사에 가깝다.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옥내석지미자’(玉乃石之美者 有五德; 옥은 이에 아름다운 돌이다. 인의지용결(仁, 義, 智, 勇, 洁)이라는 다섯 가지 덕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했다. 둘째, 玉의 덕스러운 성질은 다양하다. 공자는 <예기, 빙의 제48>(禮記, 聘義第四十八)에서 ‘부석자군자비덕어옥언’(夫昔者君子比德於玉焉; 무릇 옛날에 군자는 덕을 옥에서 본뜨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11가지의 옥덕(玉德)을 들었다. 바로 인지의예악충신천지덕도(仁, 知, 義, 禮, 樂, 忠, 信, 天, 地, 德, 道)이다.

파자 명상의 실마리를 잡으려면, 그 글자의 맨 처음 뜻이 무엇인지를 탐색해야 한다. 理의 애초 뜻은 그 글자의 뜻을 담은 玉에서 찾아야 한다. 理는 그 맨 처음 뜻을 ‘결’로 봐야 理로 시작하거나 끝나는 단어의 뜻이 머릿속을 재빨리 스쳐 간다.

우선 理로 끝나는 단어의 뜻이 쉽게 풀린다. 논리는 ‘진술한 말의 결’, 물리는 ‘만물의 결’, 사리는 ‘일의 결’, 생리는 ‘살아감의 결’, 수리는 ‘수와 숫자의 결’, 심리는 ‘마음의 결’, 주리는 ‘살결의 결’, 지리는 ‘땅의 결’, 추리는 ‘밀어 나아감의 결’, 국무총리는 ‘나라의 일을 묶어 모아가는 결’이다. 일사부재리는 ‘이미 다룬 사건의 결은 새삼 다시 따지지 않는다.’이다.

이렇게 풀이하면, 글자 理가 들어가는 여러 가지 학문은 쉽게 규정된다. 심리학은 ‘마음의 결에 관한 공부’이다. 마음의 결이 어떤 친구는 밝고 곱고, 다른 친구는 어둡고 진하고, 또 다른 친구는 거칠고 산만하다. 예컨대, ‘마음의 결’을, 즉 심리를 유형화한 예가 자기보고식 성격유형지표인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Myers-Briggs Type Indicator)이다. 선호하는 세계(외향, 내향), 인식형태(현실, 직관), 판단기준(사고, 감정), 생활양식(판단, 인식) 등을 기준으로 하여 MBTI는 ‘마음의 결’을 16가지로 구분한다.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창시한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 1837∼1900) 선생은 신체의 결을 반영하는 체질을 태양인, 소음인, 소양인, 태음인으로 분류했다. 체질에 따라 심리 유형이 다르다면, 이제마 선생은 우리나라 사람이 지니는 마음의 결을 4가지로 구분한 셈이다.

자기의 심층심리(深層心理), 즉 저 깊은 아래층에 똬리를 튼 마음의 결을 찾으려면 프로이트(Freud)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프로이트는 ‘의식의 상태’인 마음의 결을 의식, 전의식(前意識), 미의식(未意識) 등으로 나누었다. 이때 기준은 의식을 인지하는 수준이다. ‘의식’은 마음에서 나는 소리를 알아차리는 상태이다. ‘전의식’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는 들리나 그 뜻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이다. 어떤 상황이 끼어들어 작용하면 의식단계로 전환이 가능한 상황이다. ‘미의식’(unconsciousness)은 저 깊은 아래층에 존재하기에 의식하도록 각종 상황을 통해 자극해도 ‘마음의 소리’(意) 단계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이다. 또한 프로이트는 인격의 구조를 세 개의 결로 표현했다. 바로 이드(ID), 에고(EGO; 자아), 슈퍼에고(SUPER-EGO; 초자아)이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의식의 세 상태’와 ‘인격의 세 구조’>

출처: 2015-05-13.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2688.html

지리학은 땅의 결에 관한 공부이다. 땅의 대표적인 결은 큰 강과 큰 산이다. 그래선지, 초등생 시절에 강 이름과 산 이름을 외웠다. 사람이 많이 밀집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구획을 그으면, 사람이 만든 결은 도시와 농촌이다. 후자가 인문지리학이라면, 전자는 자연지리학이다.

<무등산 주상 절리대>

출처: :2010-08-02. http://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433193.html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하면, 이제 理로 시작하는 단어의 뜻도 쉽게 다가온다. 이과(理科)는 결에 관한 과목, 이궁(理窮)은 결이 얽히고설켜 어지러운 상황이다. 이궁의 처지에서 빠져나오려고 온 정성을 다해 해결의 결을 모색하는 과정이 바로 궁리(窮理)이다. 이론(理論)은 결에 관하여 잘 헤아려진 진술, 이상(理想)은 아름다운 결을 마음에서 그린 상태, 이유(理由)는 결로 인해 발생하는 말미암음 등이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라 대면접촉을 줄이면서 마음의 결에 난 상처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럴수록 인의지용결(仁, 義, 智, 勇, 洁)의 덕을 지닌 옥의 결을 생각하면서 서로 마음의 고운 결을 인정하고 격려하다 보면, 세상은 고운 결을 따라서 좋은 지점에 도달할 거다. 그게 바로 세상의 이치(理致)가 아닐까?

 

편집 : 객원편집위원 김혜성,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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