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방리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7) 삼방리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세상에 이렇게도 긴 장마는 처음이다. 비가 그쳤다 싶으면 얼른 나가 (장녹골)벽에 그림을 그렸다. 7월 16일 자봉단이 왔을 때 장녹골 왕언니들은 단단히 화가 났었다.

“아니, 학생들이 벌써 갔단 말여? 백숙은 이 동네(장녹골)서 먹고 그림은 가사목에서만 그리고 가?”

“아이고... 가사목은 우선 쉬운 그림부터 그릴 수 있어서 거기부터 갔던 거유. 거기는 벽이 널찍하고 요기는 벽이 좁잖어유. 사람 많을 때 넓은 바닥부터 그려야지 그럼 워뜨케유. 안 그래유? 좀 봐주시라니께.”

이렇게 조아리며 틈 나는 대로 장녹골 벽에 그림을 그리다가 며칠 만에 가사목에 갔더니 이번에는 가사목 왕언니가 '그걸 그림이라고 그리고 갔냐'고 그렇게 노기를 띠고 나무라시던 것이다.

▲ 문제의 초기 형제. 미완성인 이 그림이 할머님들 부아를 돋궜던 모양이다. ㅜ.ㅜ

누구는 벽에 그려진 사람 때문에 지나다가 깜짝 놀랐다며 역시 비호감을 드러냈다. 그림 내용을 설명하며 밤풍경이고 아직 미완성이라고 설명했지만 백약이 무효다. 빨리 왼쪽 절반에 환한 연꽃을 그리자.

조용하고 참한 이은옥 할머님. 어두운 밤 풍경에 대한 성토가 터질 때 묵묵하게 앉아 계시더니 내가 연꽃을 그리기 시작하니 도울 게 있겠냐며 붓을 들으셨다.

▲ 얌전하고 속이 깊으신 이은옥 할머니. 8년전 이사왔을 때 제일 먼저 환영한다고 전화 해 주셨던 분. 도와주겠다며 붓을 드셨다.

저게 그림이여 뭐시여? 밤풍경에 노했던 왕언니(늠름한 기상으로 평소에 내가 존경해 마지않던)도, 회관 앞집 왕언니도 옆에서 지켜보다가 붓을 들고 연꽃잎을 칠해주셨다. 이들의 노력을 후세의 사람들은 꼭 기억해주시라! 에헤라디여~ 그림 옆에 세 분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 옆에서 지켜보던 왕언니들이 하나 둘 붓을 드셨다. 에헤라디여~
▲ 짜잔~ 약간의 덧칠로 완성된 가사목 연꽃.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그렇게 잘 살아 가자고요~

왕언니들이 연꽃그리기 삼매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얼른 어두운 밤 풍경을 바꿔야 한닷! 형제 옆에 여인들을 그려 넣었다. 이은옥할머님 시집오시기 전에 홀어머니는 누에를 길러 실을 뽑아 염색을 하고 그렇게 만든 명주로 세 딸에게 다홍치마에 노랑저고리 만들어 입히셨단다. 그럼 벽의 여자 옷도 그렇게 입혀야지. 암만...

▲ 달밤에 만난 네 사람. 형제와 배우자, 남매와 배우자, 자매와 배우자, 그냥 이웃일 수도 있는 관계다. 깊은 산에서 내려다 보는 건 누구?

분홍 꽃잎을 다 칠하고 형제 그림 앞으로 오신 왕언니들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했다. “남자들만 착하고 의리 있으란 법 있나유? 여기 있는 사람들은 형제 마누라일 수도 있고 자매들 남편일 수도 있고 남매 배우자일 수도 있고 그냥 이웃일 수도 있어유!” “그라지. 그라믄 그거를 옆팅이에다 글로 적어놔. 지나가는 사람들도 알아차리게.” “네압!”

▲ 왕언니들은 이런 저런 관계일 수 있다는 걸 글로 분명하게 적으라 분부하시었다.

"가을이니 코스모스도 있으면 좋을텐데..." “네압!” 씨앗 장부장님 조언대로 꼭대기 환기구멍 옆에는 무얼 그릴까 하다가 깊은 산 웃는 호랑이를 그려 넣었다. “너희들의 마음씀씀이가 아름답구나. 어하하하하흥~!”

▲ "사이좋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어하하하하흥~"

“포도낭구만 있으니께 싱거워. 따 먹는 사람도 이씨야지. 그 옆팅이에 한 사람쯤  더 그려도 좋을껴.”

“네압!”

▲ 왕언니들은 포도나무만 있으니 허전하다고 두 명쯤 더 넣으라 분부하시었다.

양기훈씨가 지나가다가 저 아이가 누구냐고 묻는다. 양쌤 어렸을 적 아녀유?

왕언니들이 팔각정에 앉아 저 그림 속 꼬부랑할머니가 누구겠냐고 실갱이를 하다가 가위바위보를 했다. 아이구 좋아~ 박할머니가 웃음보를 터트리셨다. 저 분홍 옷을 입은 할머니는 박영화님이다!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는?
7) 삼방리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8)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9) 삼방리의 딸 천사도 달라졌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생뚱맞은 파도타기?
12)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3)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고은광순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