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은 파도타기?

(12) 시골마을의 생뚱맞아 보이는 파도타기 / 맞춤벽 그려드려요~

시골살이 하며 많은 것을 알게 되지만 그 중의 하나는 우리 동네 어머니, 할머니들은 거의 여신급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보다 가족(특히 자녀) 돌보기를 그들 최고 역할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자식부터 먹이려는 마음, 끝내 제대로 입히고 먹이지 못한 것이 죄책감과 한으로 남은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다 키워내고 살림살이가 조금 넉넉해진 요즈음도 여전히 다른 이들부터 챙기시는 게 습이 되셨다.

이은옥 할머니. 청산 목동이 고향이다. 일찍이 홀로된 어머니는 누에를 키워 실을 뽑아 명주를 짜고 염색을 해서 세 딸들 치마저고리를 해 입혔단다. 등잔불도 어두웠을 그 시절에 대체 하루 24시간을 어찌 보내셨기에 그게 가능했을까? 6.25전쟁이 터지자 어머니는 큰 딸에 이어 부랴부랴 열아홉 살 둘째딸 은옥을 산 건너 물 건너 삼방리 가사목으로 시집 보냈다. 남편은 세 살 많은 22살. 8월에 시집을 왔는데 6월에 낳은 시동생이 있었다. 송곳 꽂을 땅도 없는 시집. 저녁에는 초도 없어 소나무 송진으로 호롱불을 켜고 이불로 창문을 가렸다. 남편이 3년 머슴을 살았어도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나물 뜯어 멀겋게 죽을 쒀 먹으니 늘 배가 고팠다. 아이가 7년 만에 들어섰지만 기쁘다는 생각도 못하고 뭘 먹여 키우고 가르치나 하는 걱정뿐이었다. 산에 가서 칡넝쿨을 베어 큰 솥에 삶아 몇 날 며칠을 주물럭거리면 실(섬유)이 나온다. 그걸 팔아 돈을 만들었다. 손발이 모두 부르터야 가능한 일이다. 시계가 없으니 새벽별 위치를 보고 시간을 가늠해 꽁보리밥 삶아 장아찌반찬으로 도시락을 싸 주었다. 달걀 하나 마음대로 먹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지금 시절은 좋아졌는데 이렇게 늙어버렸으니 억울하고 억울하다. 맛난 음식을 드시면서도 억울하다는 말이 입에 붙으셨다. 작년 어버이날, 젊은이들(60대)이 마이크를 안 넘겨준다고 “우리는 내년에 못 올지도 모르는데...” 풀이 죽어 말씀하시던 분. 돌아가는 순서는 아무도 모른다지만 왕언니들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남은 시간 동안 이들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 왼쪽의 연꽃밭과 오른쪽의 의좋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파도 타는 여인을 그렸다.

▲ 왼쪽의 연꽃밭과 오른쪽의 사이좋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틈을 내었다.

오가며 머릿속에 각인되도록 큼지막하게 글씨도 써 넣었다. 이 장면은 내가 강연을 나가면 주제가 어떤 것이든 참가자들에게 항상 마지막에 보여주는 것이다.

인생을 스포츠에 비유하면 파도타기와 같다. 과거의 파도는 가 버렸으니 아무 의미 없다. 미래의 파도 역시 오지 않았으니 아무 의미 없다. 현재의 파도를 감사하며 즐기다보면 기술이 늘어 미래의 집채만 한 파도도 즐길 수 있다. 부디 억울한 과거와 이별하시고 지금, 여기의 일상을 감사하며 즐기시라.

▲ 맞춤벽화 -오며 가며 마음 속에 새겨주세요. 과거의 슬픔, 억울함, 죄책감 모두 떨쳐버리시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세요오~ (아들 양기환님이 지나가며 바다라면 갈매기가 있어야 한단다. 네압!)

이용금 할머니. 대장부의 기상을 가지셨다. 호적나이 115세. 실제 나이 95세. 실제 이름 김홍분. 정신대 뽑는다고 동네가 어수선하던 19살 때, 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급한 호출이 있었다. 아는 아줌마 따라 삼방리 가사목으로 와서 22살 더 먹은 남자의 후취가 되었다. 20살 더 먹고 마음씨가 좋은 큰댁 이용금은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김홍분이 낳은 6남매를 예뻐하며 키워주었다. 큰댁이 사망하자 김홍분의 사망신고가 되었던지 이후 큰댁이름으로 살게 되었다. 굳이 예전이름을 찾고 싶은 생각도 없다. 최근에 다리골절로 두 번 수술을 받았다. 죽는 것이 두렵다고 하신다. 두려운 마음을 품고 가시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부터 눈에 거슬렸던 연꽃밭 안의 막힌 창문을 이용해 보자. 그래 천상병이다!

▲ 눈에 거슬렸던 막힌 창문. 옳지, 그곳에 이용금 할머니를 위한 맞춤 시를 적어넣자!
▲ 막힌 창문에는 시집을 그렸다. 천상병, 참으로 고마운 선물을 우리에게 남겼다.

 

歸天(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서울 상대를 나온 천상병은 박정희시절 조작된 간첩단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서 석 달간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고 잡혀간 지 여섯 달 만에 거의 폐인이 되어 출소했다. 이후 아내가 된 친구 동생 문순복의 보살핌을 받으며 욕심 없이 살다가 귀한 선물을 우리에게 남기고 63세에 이승을 떠났다. 삼방리 어르신들, 우리 시인 말대로 즐거운 소풍 온 것처럼 아름답게 잘 살다가 가자고요.

좀처럼 싹이 나지 않아 우리 애를 태웠던 적백일홍이 꽃을 피웠다.

▲ 저수지 주변에는 측백나무를 심고 사이사이에 냉해에 강하다는 적백일홍을 심었다. 오랫동안 싹이 나지 않아 애를 태우더니 어느결에 꽃도 피웠다. 에헤라디여~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는?
7) 삼방리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8)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9) 삼방리의 '딸 천사'도 달라졌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 12) 생뚱맞은 파도타기?
13) 마을입구 최씨네
14)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고은광순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