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저수지 신령님을 만나다

15) 드디어 저수지 신령님을 만나다

그놈의 칡덩굴이 봄에 심은 어린 나무들을 끈질기게도 성가시게 했다. 감사하게도 장녹골 노인회에서 수 차 풀베기를 했지만 16일 현장심사도 온다 하니 겸사겸사 아침 7시에 모여 풀을 깎기로 했다. 어제 늦게 귀가 하느라 준비해 놓은 것도 없어 아침 일찍 일어나 주먹밥을 만들었다. 집에 있는 검은깨를 들들 볶아 갈고 호박과 가지를 새콤달콤 짭짤하게 볶아 속에 넣었다. 칡잎으로 감싸서 낱개 포장 스물다섯 봉지를 만들었다.

가끔 와서 마당의 풀을 깎는 남편은 줄을 세게 당겨 부릉부릉 시동을 걸어야 하는 예초기를 버거워했다. 고장도 자주 나는 바람에 수리 심부름도 가끔 다녀야했다. 그런데 이곳 삼방리 남자들은 예초기를 둘러매고 거침없이 풀을 깎는 게... 오매 전사들처럼 멋있다. 여자들은 쓰러진 코스모스들 뽑아내고 그곳에 마을회관에서 먹을 배추를 심기로 했다. 한 시간 쯤 집중적으로 일하고 마을 복판에 주먹밥 소쿠리를 놓고 아침을 함께 먹었다. 주먹밥 완판.

▲ 현장심사에 앞서 풀을 깎고 꽃밭을 정리했다. 일 하기로 약속한 시간에 그친 비가 얼마나 감사한지...
▲ 작업을 마치고 마을 복판에 앉아 주먹밥 한 덩이씩. 아침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 처음이다.

 

대전에서 출발한 요가강사 박샘은 대전은 비가 많이 온다며 오늘 야외수업을 할 수 있겠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했다. 분명히 삼방리 예보에도 비가 계속 온다고 했는데 풀을 깎기로 한 시간에 비가 그치더니 점심 이후에는 땡볕이 내리쪼였다. 긴 비가 오고 나서 해가 쨍하고 나는 걸 ‘새볕’이라고 한다는 걸 오늘 왕언니들에게 배웠다. 참 고운 말이다.

신령님 옷을 입은 박쌤이 가드레일 뒤에 숨었다. 앞치마 단복을 입은 우리들이 시끌벅적 서성거리면 신령님이 가드레일 뒤에서 나타난다.

“왜 이리 웅성거리는 것이냐?”

-우리가 뭘 빠뜨렸어유.

▲ 삼방리 사람들이 저수지 가장자리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도대체 왜?

(가드레일 뒤로 숨었던 신령이 ‘불행’이라고 쓰인 팻말 하나를 들고 나타난다. 이 때 왕언니 한 분이 바가지로 신령님 머리 위에 물을 뿌린다. 암만. 신령님이 물에서 올라오는데 옷이 뽀송뽀송하다면 그건 너무 이상하지.)

▲ 물에서 올라오는 신령님 옷이 뽀송거리면 그거 참 이상하지 않은가? 자... 그러니...

(푸우 푸우 머리를 가다듬으며 올라오는 신령) “이것이 너희들 것이냐?”

-아녀유, 아녀유!

(신령, 다시 가드레일 밑으로 들어갔다가 ‘슬픔’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올라온다. 또 물 한 바가지) “이것이 너희들 것이냐?”

-아녀유, 아녀유!

(신령, 다시 내려갔다가 ‘행복’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올라온다. 다시 또 물 한 바가지) “그럼 이 ‘행복’이 삼방리 거냐?”

▲ 불행도 아니 아니, 슬픔도 아니 아니, 행복을 찾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 에헤라디여~

-맞아유, 맞아유! 에헤라디여~

(신령, 마을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춤춘다.)

▲ 행복을 찾아주신 신령님 감사합니다. 함께 춤을 추어요~~~
▲ 삼방리 행복마을 좋아요~ 사랑해요오~

눈치 빠른 분들은 위의 사진들이 폰으로 찍은 사진과 좀 다르다는 걸 알아채셨으리라. 한참 드론 배우는 재미에 빠진 남편을 삼방리로 소환했다. 야외촬영은 드론이 제격 아닌가. 드론 촬영을 위해 어제 저녁 삼방리로 내려온 남편은 드론을 안 가져왔다고 새벽에 마누라 몰래 다시 집에 가서 가져올 생각을 했단다. 자동차 트렁크에 잘 넣어두고서 그렇게 애 간장을 태웠다니... 여보야. 우리가 이제 그런 나이여.

작목반 정샘이 지난 번 감자 고로케에 이어 오늘은 찹쌀경단을 간식으로 준비해 오셨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함께 둘러앉아 익반죽한 찹쌀에 단팥 소를 넣고 삶아 건진 뒤 호박, 콩, 코코아 가루를 묻혔다. 찹쌀가루 입혀 튀겨온 버섯, 두부 위에 양파, 가지, 천경채, 당근, 홍매실청, 마늘 드음뿍 넣은 버섯두부 탕수를 곁들여 먹었다.

▲ 작목반 정쌤이 찹쌀경단과 두부버섯 탕수를 준비해왔다. 함께 뚝딱 만들어 먹는 맛이라니..
정샘은 풍물 1급 강사다.  내년부터 우리 모두를 재주꾼으로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남자가 만들어 주는 음식. 왕언니들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한 살 더 먹으면 90인데 이렇게 맛 있는 것도 처음이라고 하셨다. 왕언니들이시여. 부디 함께 이렇게 웃고 떠들며 삽시다.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 만들어가며,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면 절대로 따라가지 마시공...

▲ "내가 한 살 더 먹으면 90인데... 이렇게 맛 있는 거 처음 먹어봐요."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는?
7) 삼방리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8)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9) 삼방리의 '딸 천사'도 달라졌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2) 생뚱맞은 파도타기?
13) 마을입구 최씨네
14) 여신의 방문
▶ 15) 드디어 저수지 신령님을 만나다.
16) 계속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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