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7월 중순 벽화 그리기 자봉을 왔던 학생들이 2주일 뒤에 다시 청산을 찾았다. 역사기행을 위해 1894 갑오년 동학혁명 본부가 있었던 청산을 선택한 것. 아무렴.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귀한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코 1894년 전후해서 한반도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졌던 동학과 동학농민 봉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1893년 봄 수만 명이 보은에서 총 궐기하여 고종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동학도들의 최고 지도자 해월은 넉 달간 경상도 지역을 돌고 8월에 청산 한곡리로 거처를 옮겼다.

병을 얻어 이승을 떠난 아들을 그곳 골짜기에 묻었다. 다음 해(1894) 봄, 전남에서 전봉준이 학정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여름에는 경상도에서 전선을 놓으며 한양으로 올라가는 일본과 저항하는 농민들 때문에 계속 마찰이 생겼다. 일본은 노골적으로 조선을 치고 들어왔다. 가을걷이가 끝나자 해월은 청산에 주요 지도자들을 불러 의논 끝에 총기포를 결정했다. 천 년 전부터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고장. 한 반도 뿐 아니라 19세기 아시아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지목되는 동학혁명이 첫 삽을 뜬 곳. 청산!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한곡리 동학혁명기념공원을 찾았다. 해월이 살던 집 근처에서 혁명군들은 함께 밥을 지어먹으며 전투연습을 하기도 했단다. 바위에 새겨져 있는 이름 김영규, 김정섭, 김재섭, 박희근, 박창근, 박맹호, 신필우... 후세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뇌와 자기들의 도전을 알아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 벽화를 그리러왔던 학생들이 2주 후에 다시 역사공부를 위해 1894 갑오년에 동학본부가 있었던 청산을 찾았다.

 

그들 삶을 잠시 생각하고 교평리에 있는 해월의 손자 정순철 생가를 찾았다. 남자들이 혁명을 위해 집을 떠났을 때 해월의 딸 최윤의 나이는 17세. 새어머니 손씨(손병희 누이동생)와 청산현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옥졸 정주현은 그녀를 그냥 두지 않았다. 아버지 해월을 비롯해 많은 동학도들이 관군과 일본군에게 희생되고 난 후 윤은 1901년 아들 정순철을 낳았다. 짝짝궁과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를 작곡한 바로 그 사람. 5촌 아재 되는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 운동을 통해 일제에 저항했던 사람. (생가터는 복원되지 못하고 생가임을 알리는 비석만 세워져있다.) 뜻밖에도 학생들은 짝짝궁 노래를 잘 알지 못했고 오히려 교사들이 새로 알게 된 사연들에 놀라움을 표했다. 학생들은 자기들이 그렸던 벽화그림을 다시 보기 위해 가사목을 찾았다.

▲ 유적지를 둘러보고 삼방리 중 가사목을 먼저 들렀다. 유적지 문바위에 새겨진 동학도 이름에 대한 설명 때문이었을까. S가 자기들 이름도 벽에 새겨달란다. 암만~

 

해바라기 그림, 포도그림과 주변의 추가된 그림들을 보던 S가 문득 자기들 이름도 벽에 써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아무렴. 그게 역사가 되는 거지. 나중에 삶 속에서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친정집 찾아오듯 찾아오렴. 벽에서 너의 젊은 날의 역사(기록)을 보며 행복에너지를 충전하면 좋을 거야.

장녹골에 도착한 학생들이 좌우의 벽화를 살펴보았다. “엇 찌찌다! 저 여자는 창피하게 찌찌를 내놓고 있네. 선생님 저게 왜 저래요.” 호들갑을 떤다. 아까 정순철 생가 앞에서 짝짝궁을 함께 불러보자고 했더니 창피하다, 쪽팔린다 하면서 뒤로 물러섰던 친구다.

▲ 장녹골 골목에 들어서자 마자 Y가 소리 질렀다. "아~ 찌찌다~ 아구구 챙피해~~" 옳거니, 아까 정순철 생가 앞에서 짝짝꿍을 불러보자 했더니 창피하다 쪽 팔리다 했던 놈이로구나, 너!

“우리 몸 중에 창피한 건 없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귀하고 소중한 것이지요. 젖가슴은 아기 도시락 아닌가요? 새 생명을 키우기 위해 분비되는 젖은 정말 대단히 정교한 과정들을 통해 몸이 애써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평민 엄마들은 저렇게 젖을 내놓고 다녔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젖가슴을 부끄러워하는 이 시대가 오히려 잘못된 건 아닐까요?

▲ 조선시대 엄마들은 젖가슴을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젖의 제일 큰 기능은 아기 먹이를 생산하는 것!

보은취회 때에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함께 모여있었고 마지막까지 저항을 했던 연산 대둔산 꼭대기 동학도들 중에도 여성이 있었다. (일본군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안고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음을 택했고 임신을 하고 있던 여성을 비롯해 함께 모여있던 동학도들은 모두 일본군의 총칼에 희생을 당했다. 일본군은 천황만세를 세 번 외치며 마지막 승리를 자축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100년이 지나 발견된 참전 일본군의 일기에서 밝혀졌다.)  

바로 그 옆에 동학노래 가사를 적어 놓았으니 노래를 안 부를 수가 없다. 깊은 산 속 승려들에게 구전으로 전해진다는 고구려 곡조에 동학의 주문을 한글로(1절) 한문으로(2절) 맞춰 넣은 것으로 힘 있고 따라 부르기 쉽다. 내가 선창을 한 뒤 손을 잡고 돌며 함께 불렀다.

“... 때가 왔어요. 개벽~ 손에 손 잡고 함께 나눠요 인내천~ ♬♪♩” 여기가 동학 마을이로고.

▲ 동학노래를 소개하면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선창을 한 뒤 손을 잡고 빙글게 돌면서 함께 불렀다.  "내 안에 하늘 있어요. 당신께도 있지요. 때가 왔어요. 개벽~ ♩♪♬"

 

학생하나가 물었다. “개벽이 뭐에요?”

“어 개벽은...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동학도들이 희망하던 새로운 세상을 말합니다. 빼앗기지 않고, 차별당하지 않고,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고, 함께 귀하게 여기며 행복하게 사는 세상... ”

학생들이 돌아간 뒤 생각했다. 옆의 해바라기를 조금 지우고 개벽세상을 그림으로 그려 넣어야겠다고.

▲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묻고 떠난 학생들. 그래. 옆에 답을 그림으로 그려보자!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는?
7) 삼방리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8)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9) 삼방리의 '딸 천사'도 달라졌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2) 생뚱맞은 파도타기?
13) 남다르게 사는 최 씨네 이야기
14)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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