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시작

1. 사건의 시작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인생이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예상치 못한 일이 간혹 일어나는 법이고, 나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당시에 은퇴를 앞두고 있었는데 은퇴자가 준비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경제 활동인데, 아직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대책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는 은퇴자에게 그 기회가 많지 않다. 대부분 이런 저런 자격증을 준비하지만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않다. 게다가 창업은 패망의 지름길이라는 게 정설이라서 안하는 게 상책이다. 다음은 사회 활동이다. 경제적 수입이 없어도 사회활동은 해야 한다. 각종 시민 사회 단체에 가입하거나 동호회 활동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은 조금만 주위를 살피면 할 곳이 널려있다. 그 다음이 봉사활동이다. 자신의 역량과 경험을 살려 재능기부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 재능기부이지 그런 활동을 하려면 전문가적 소양과 자격증이 구비되어야 한다. 마음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러나 재능기부가 아니어도 봉사할 곳은 있다. 이것도 조금만 노력하면 활동할 곳을 찾을 수 있다.

나는 나름대로 세 가지를 어느 정도 준비해 나가고 있었고 성과도 있었다. 그런 활동을 찾다가 가입하게 된 곳이 바로 <강산아카데미> 라는 인문학 모임이었다. 일종의 독서 토론회였는데 서울시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몇 개 안되는 토론회 중의 하나였다. 동서양 고전과 현대 서적에 이르기까지 프로그램에 따라 책을 읽고,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는데 나름대로 수준 있는 독서토론회였다.

<강산아카데미>에 가입한지 얼마 안되어 나는 그 모임의 리딩 그룹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정도가 되었다. 프로이트와 융 심리학 토론을 할 때 내가 두세 번에 걸쳐 발제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고, 그 이후 나는 심리학 부문에서 그들로부터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곧 리딩그룹의 핵심 회원으로부터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강산아카데미>에서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회원들이 자신들의 글과 음악을 자유롭게 올리는 사이트였다. 독서토론 시의 발제문과 더불어 소설이나 시,수필을 올리는 창작 공간도 있었고, 장르별로 음악과 음악 감상문도 올릴 수 있는, 한 마디로 문학과 음악 동호인들의 카페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카페는 인기가 있는 편이어서 하루 방문객이 만여 명에 육박할 정도로 인터넷에서는 꽤나 알려진 사이트다. 나는 이런 저런 글을 올리다가 우연한 계기로 콩트를 쓰게 되었는데 처음 올리는 글치고는 반응이 괜찮았다. 나는 용기를 얻어 시리즈로 콩트를 연재하게 되었는데 호응도가 높았다. "다음 글은 언제 올라오느냐, 얼른 올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다보니 몇 개월에 걸쳐 11편까지 연재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건이 터졌다. 내 연재 글이 전부 삭제가 된 것이었다. 그것도 나에게는 사전에 아무 양해나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누군가 삭제를 한 것이다.

그 카페에는 운영위원회가 있었는데 글을 심사하고 카페에 실어도 별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여 게재여부를 결정한다. 나는 그동안 운영위원회로부터 연재와 관련하여 아무 연락이나 통지를 받은 적도 없었고, 오히려 그들 중 일부로부터 글이 재미있어 잘 읽고 있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었는데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사건이 터진 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는데 운영위원회 간사로 있는 대학 후배로부터 카톡으로 다급한 연락이 왔다. 카톡창에는 내가 싫어하는 ㅠᆞᆢ가 잔뜩 들어가 있었고, 후배는 얼마나 다급하게 자판을 두들겼던지 맞춤법도 엉망진창인 말을 시작하였다. 내 글은 전부 삭제되었고 이 모든 게 다 자기 탓이니 용서해달라면서 사죄를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전후 사정을 알아야 용서를 하든 말든 할 게 아닌가?

<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심창식 주주통신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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