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추적이 시작되다

그러나 추적을 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글을 내리거나 삭제함에 있어 필자에게 사전에 동의나 양해를 얻어야 하는데, 그 절차가 생략되었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사전에 나에게 글 내용을 수정해 달라거나 정정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야 하고, 내가 그에 응하지 않을 때 그때 가서 글을 내리던지 삭제해도 될 일이었다.

나는 운영위원회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난 월요일 오전에 운영위원회에서 공지한 내용은 이러했다.

"일부 회원의 이의제기로 인해 강모씨의 연재가 중단되었으니 회원 여러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내가 요구한 공개적인 사과와 더불어 향후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개적인 약속표명은 없었다. 다만 운영위원회 간사의 거듭된 사과와 운영위원회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정당한 절차를 밟도록 제도화하기로 했다는 구두 언급이 있을 뿐이었다.

사람은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 적당한 선이 어딘지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분별할 줄 모르면, 인생이 꼬이고 삶은 부대끼게 된다. 또한 지나치게 밀고 나가는 것은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운영위원회가 이 정도 사과를 했으면 나도 한 발짝 물러나야한다. 운영위원회도 체면이 있고, 나름의 권위라면 권위가 있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나의 연재 글이 삭제된데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일반 회원들의 궁금증을 어떻게 해소하는가이다. 공지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가 조금씩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동요가 일고 있었다. 카페의 일부 회원들로부터 1:1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느냐?”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연재를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혹시 다음 글 써놓은 게 있으면 보여줄 수 있느냐?”

문학은 대중의 공감을 먹고 산다. 나의 연재 글에 대한 회원들의 공감을 확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묘한 상황에서 나는 말을 아껴야 한다. '침묵이 금' 이라는 말은 이럴 때의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다가 더 이상 문제 제기해서 서로가 득 될 게 없다. 다 같이 취미삼아 글을 올리다가 발생한 해프닝으로 여기면 될 일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던 차에 그 날 오후, 간사인 후배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운영위원 중에 누군가의 긴급제안으로 다시 운영회의가 열렸는데, 나의 연재 글 중 <9편>을 제외한 나머지 십여 편의 글은 프로그램이 복구되는 대로 다시 카페에 싣기로 결의했다는 것이다. 이번 주 토요일이면 연재 글이 복구가 가능하다며, 다시 게재할 것인지에 대한 나의 의사를 물었다. 이건 '병주고 약주기'도 아니고 조금 씁쓸했지만, 나로서는 자존심을 내세울 일도 아니고 해서 후배에게 그렇게 하마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긴급 제안으로 나의 글들을 다시 게재하자고 제안한 운영위원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않았지만, 만약 누군지 알았다면 나의 추적은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후배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카페회원인 구영순 작가에게서 득달같이 전화가 왔다. 구영순 작가로 말하자면, 상냥하기도 하지만 눈치 빠르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회원이다. 그 여인의 입을 통해 많은 루머들이 퍼져나가기도 하고, 다른 많은 회원들도 궁금한 게 있으면 그녀를 통해 알아보는 마당발로 소문이 자자한 여인이다. 아마 이번에도 다들 궁금해서 그녀에게 물어봤을 것이고, 이에 그녀가 총대를 메고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한 것이 틀림없다.

"아니, 일부 회원이 이의제기를 했으면, 그 글만 내리면 됐지, 다른 글들은 왜 내렸다는 거예요? 운영위원회에서 뭔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 아니에요? "

나는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속 시원히 말해주었다.

"일부 회원이 문제를 제기한 건 맞고요. 그래서 제가 다른 글은 문제가 없나 살펴보는 과정에서 수정할게 있어 손 좀 보려다가 실수로 글이 날아간 거예요. 다른 글들 날아간 건, 운영위원들하고는 무관한 일이니 그리 아시고, 또 날아간 글들은 이번 주 토요일경에 복구된다고 하니 좀만 기다리시면 될 겁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나에게 뭔가를 탐문하려던 마당발 구영순 작가가 머쓱해하며 말한다.

"아! 그런 거지요? 저도 그러리라고 짐작은 했는데, 하도 사람들이 말이 많기에 .."

됐다. 이것으로 상황은 종료된 것이다. 더 이상 쑤군거림은 없을 것이다. 마당발 여인 덕에 사태는 조기 종결될 듯하다.

상황은 종료되었으나 나에게는 할 일이 하나 남아있었다. 운영위원 중에서 나의 글을 내리는데 찬성했던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했다. 그래야 나의 글이 전부 삭제되었던 정확한 이유를 알 게 아니겠는가. 그러기 전에는 나는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집착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일이 원만히 해결되었는데 지난 일을 문제 삼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궁금하다. 호기심을 못 참는 사람을 일명 '호기심 천국'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바로 그 '호기심 천국'인 것을 어쩌겠는가?

누가 어떤 이유로 나의 글 전체를 삭제하자고 했는지 궁금하고, 그 제안에 4명이나 찬성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기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을 추적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제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나의 추적을 막을 수 없다.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심창식 주주통신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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