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술래잡기 게임

후배에 따르면 그날 찬반 투표는 인터넷 밴드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익명으로 투표해서 누가 찬성이나 반대를 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운영위원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그들 중에 나의 글을 삭제하는 데 찬성한 자가 누군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글 삭제에 반대했을 거라고 여겨지는 대학 후배인 간사를 제외한다면, 찬성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3명, 반대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3명이다.

우선 글 삭제에 찬성할 사람이 누구일까 살펴보니, 세 명은 확실해 보였다. 그들의 면면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문학 평론가인 정일섭 작가, 한재숙 교수, 김원희 논술 학원 강사.

문학 평론가이자 수필가인 정일섭 작가는 매사에 원리원칙주의자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사람들의 글에 대해 혹평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니 나의 글에 대해서도 그러했을 것이다. 또한 유명 사립대학 불문학과장으로 있는 한재숙 교수는 까탈스러운 데가 있고, 사람을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찬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학원 강사인 김원희 위원은 사람들과 대화도 뜸하고 좀 지나치게 엄격한 스타일이라서 찬성표를 던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끔 올리는 글에도 그리 따뜻한 인간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상의 요인 외에도 이들이 찬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이 들게 하는 일이 한가 지 더 있다. 이 세 명은 전에도 어떤 글을 문제 삼아 글을 내리기로 주동한 사람들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러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나는 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그들은 자기 소신대로 했을 것이고, 자기 소신대로 한 것을 두고 배신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그들은 나와 교류가 많지 않은 편이다. 나도 그들에게 관심이 없지만, 그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행위에 대해 배신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배신이란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고,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기대와 신의를 저버릴 때 쓰는 표현이다. 나는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나의 글에도 긍정적이었던 3명중의 한 명이 나를 배신했다는 것에 대해 궁금해 할 뿐이다. 그것은 술래잡기에서 술래를 찾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내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술래를 찾느라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월요일 오후에 내 연재를 다시 게재하자고 어떤 운영위원이 제안했고 운영위원회에서 게재하기로 결의한 일에 대해 주목한다면, 술래가 누군지는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제안한 운영위원은 분명 나와 가까웠던 위원이었을 것이고, 그 제안이 통과되었다는 것은 그것을 제안한 위원이 나의 글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처음 글을 삭제할 때 나와 가까운 사이면서도 나를 배신했던 위원은 바로 그 위원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물론 그것을 생각했다면 추적은 없었겠지만, 그 사건이 갖는 더 깊은 의미는 두고두고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추적이 아주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다.

대학 후배인 간사를 제외하면, 나를 배신한 자는 나와 잘 알고 지내는 그룹에 속한 3명 중에 한명이 될 것이다. 이들 3명은 다들 나와 친분이 두텁다면 두터운 사람들이다. 그들 세 명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전자 대리점 사장을 하는 박형두 위원, 시나리오 작가인 배철성 위원, 스포츠댄스 강사 윤영란 위원.

전자 대리점 사장을 하는 박형두 위원은 나와 술친구다. 이 친구는 카페 활동을 한 지 제일 오래되어 운영위원이 된 케이스로 현재 카페의 최고참 운영위원이다. 나와는 연배도 비슷하고 술을 좋아하여 친구하기로 했다. 나이도 비슷하지만 대화가 잘 통하기도 하여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그런 그가 날 배신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친구는 아닐 것이다.

다음에,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배철성 위원으로 말하자면 모임에서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 회원이다. 그는 다소 성격이 까칠하기는 하나 사람이 순수하고 뒤끝이 깨끗한 사람이다. 가끔 독서토론회에서 책을 안 읽고 오는 회원을 보면 잔소리를 하기도 하여 회원들이 가까이 하기를 꺼리기도 하지만, 정면에서 사람을 비판하면 했지 뒤에서 일을 꾸밀 사람은 아니다. 이 사람도 혐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다. 다름 아닌 스포츠 댄스 강사로 있는 사십대 윤영란 위원이다. 외모가 정갈하고 미모가 출중한 여인으로 관심사가 나와 비슷하여 모임 후에 갖는 뒤풀이에서 대화를 많이 나눈 회원이다. 매사에 사리분별력이 있고 인생의 가치관이 뚜렷한 위원이다.

그리고 윤 위원으로 말하자면 카페에서 스포츠 댄스 강사를 하면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글로 올리고 있는데, 인기가 많아 글 조회 수가 우리 모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편이다. 스포츠 댄스 강사이면서도 카페운영위원이 된 이유이다. 헷갈린다. 이 여인이 배신했다고 볼만한 근거는 없다. 평상시에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여겨지는 위원을 의심하려면 보다 확실한 정황이 있어야 한다.

이 세 사람 중 누구도 배신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중에 배신자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술래잡기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술래가 꼭꼭 숨어 보이지 않는다.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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