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송년 미사 

지난 해 11월 백남기씨가 물대포를 직격으로 맞고 혼수상태로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지 벌써 50일이 넘어 간다. 백남기씨가 쓰러진 후 천주교에서는 가톨릭농민회회원인 백남기 임마누엘의 쾌유를 비는 미사를 매일 진행하고 있다. 12월 초순까지는 응급실 앞에서 진행했으나 요즘은 병원 입구 농성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2015년 마지막 날 송년미사, 2016년 1월 1일 신년미사, 그리고 3일 미사에 참석해서 다섯 신부님의 말씀과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가운데 정만영 꼴베신부

12월 31일 송년미사를 집전한 정만영 꼴베(예수회)신부는 이런 말씀을 했다.

백남기님은 평생 빛을 증언한 분이다. 성모님처럼 주님의 종으로 겸손한 삶을 산 사람이다. 요셉 성인처럼 묵묵히 성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보여준 분이다. 그런데 왜 이런 분이 이런 고통을 받는지 생각하면 당혹감이 올라오고 기가 막힌다. 이 당혹스러움에 침묵 안에서 한 참을 머물렀다. 그 침묵을 통해 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것이 임마누엘이다. 여기저기서 찾지 마라, 분통 터트리지 마라, 성서의 인물들이 다 이런 사람이다. 완벽하게 완전하게 살아오지 않았다. 흔들리며 흐트러지며 살아가는 것이다."

성서는 이를 고백한 것이다. 백남기씨도 그러하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나는 백남기씨처럼 그런 삶을 사는가? 살 수 있는가? 외로운 내적투쟁의 삶을 살 수 있는가? 도망치지 말라. 그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삶이다.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것은 임마누엘을 믿지 않는 삶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 왔는가? 임마누엘을 믿고 살아온 삶인가?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으로 살겠는가? 아니면 적그리스도의 삶인가? 이를 묵상하며 2016년의 삶을 살자.

▲ 박상훈 알렉산더 신부

송년미사를 함께 집전한 박상훈 알렉산더(예수회) 신부는 "시민들의 삶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 그런데 위에서는 꿈쩍 않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러므로 존엄을 지니고 있은 시민들이 미사, 모임, 집회 등을 통해서 우리의 의견을 표현해서 좀 더 나는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이 시대에서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행복의 복원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박종인 요한 신부

송년미사에 참석한 박종인 요한(예수회) 신부는 "빨리 일어나셔야 할 분이 일어나고 있지 못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다. 하느님의 때가 언제 올지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한 해의 마지막과 새로운 한해를 앞두고, 어려운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진실과 진심이 드러날 것이라는 것을 믿고, 또한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것이 우리의 진실한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우리가 십자가를 움켜질 용기와 포기하지 않은 힘을 주시기를 간청한다."고 했다.

▲ 조욱종 요한 부산교구 신부

지난 1일 신년미사를 집전한 조욱종 요한(부산교구 로사리오의 집) 신부는 가톨릭농민회 농민들의 영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 가톨릭농민회(가농)가 유기농법을 시작한 이유는 이렇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농약을 치고 제초제를 뿌리고 화학첨가물을 넣은 농산물을 넘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이들을 나와 같이 사랑하는데 그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농약이나 제초제 같은 것들이 우리 몸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일반 농업은 일반 농민들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생명농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유기농법을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영성이다. 가톨릭농민들을 힘들지만 꿋꿋이 자기 길을 하게 한 것이 바로 이웃을 내몸 같이 사랑하는 영성의 힘이다. 이런 영성을 가진 백남기 형제가 당하는 일을 옆에서 구경만 할 수 없다. 방송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

▲ 최영민 예수회 신부

3일 미사에서 만난 최영민(예수회) 신부는 이런 말씀을 했다. 헤로데는 동방박사에게 이런 말을 한다. '아이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오, 나도 경배하러 가겠소.' 이 말은 권력자들이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대통령도 아닌데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는 박근혜는 이 헤로데와 똑같이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첫째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세월호 참사에도 내탓이요, 책임을 철저히 밝히겠다고 한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유족을 나 몰라라 하고, 왜 아이들을 구하려 하지 않았는지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고 있다. 백남기씨 사고도 마찬가지다. 모두 다 오리발만 내밀면서 거짓말만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계심을 마음에 품고, 희망을 갖고,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뚜벅뚜벅 가야한다. 누구의 방해도 간섭도 이겨내면서 함께 연대하며 가야한다.

▲ 정마리아

정마리아(78세 도봉구 거주)는 "백남기씨가 불쌍해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가끔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 백남기씨를 비롯한 우리 농민들을 이로운 존재인 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정부는 벌을 해충으로 여겼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벌에게 살충제를 뿌려서 반 죽게 만들었다. 백남기씨가 이렇게 생사를 헤매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고, 경찰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주지만 한계가 있다. 결국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 최요한

최요한(80세, 당산동 거주)은 "시간 날 때마다 자주 미사에 참석한다. 현 정부에 불만이 많다. FTA로 농촌이 못살게 되서 농민이 항의하고 하소연하러 왔는데 물대포를 직사로 쏴서 뇌사 상태에 이르게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책임져야하고 앞으로 농민의 애원을 들어줘야 한다. 먹거리는 식량안보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인데 이 정부는 이도 포기하라고 한다. 백남기씨가 빨리 쾌유 되어 나와서 먹거리를 지키는 투쟁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 유사도요한

유사도요한(60대 양평거주)은 가톨릭농민회(가농) 동지회 회원으로 "가농 동지회에서는 성탄과 연말연시에 농성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와 있다. 차가운 농성장에서 이런 뜻깊은 미사를 드리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번에 성탄미사를 참여한 어떤 분은 내생애에 가장 뜻 깊은 성탄미사를 드렸다고 했다. 우리도 모두 그런 심정이다. 백남기씨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과 백남기씨가 얼른 낫도록 기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병상에 있는 백남기씨가 전달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 이연희 마리아 신자

1일 미사에서 만난 이연희마리아(56세, 구리거주)는 "일주일에 6일 일하고 있어 쉬는 날마다 온다. 이 미사가 진행되는 건 민중 총궐기에서 들었고 한겨레신문에서도 보았다.

우리나라는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것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한 외신기자가 80년도 광주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나라를 민주주의의 꽃이 필 수 없는 쓰레기통이라 썼다. 87년도 6월 항쟁으로 쓰레기통에서도 꽃이 필 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 역시 대한민국은 쓰레기통에 불과하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민족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너무도 부끄럽지만 이 말이 맞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1960년부터 한국에서 생활한 시노트 신부님는 '2차 인혁당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다. 시노트 신부님은 이런 말씀을 했다.

“(박정희는) 국민을 귀먹고 눈 없는 동물처럼 업신여겼다.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런 생활 원하면 (그리워)하라. 박형규 목사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 왜 그런 고생을 했겠느냐. 박근혜(전 한나라당 대표) 물론 얼굴은 엄마(육영수)처럼 좋은데, 속이 아버지 같으면 안 된다. 아버지가 살인자다, 솔직히 말 안 하면 안 된다.”(<한겨레21>, 2007.02.06.)

인혁당을 생각해봐라. 박통에게 옳은 소리 했다고, 독재하지 말고 서로 상생하며 살자고 했던 지식인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선고 내린지 18시간 만에 사형집행을 했다. 그런 일을 저질러놓고 국민들을 먹고살게 해주었다고 큰소리 쳤다. 그렇게 국민들이 타인의 불행은 외면하고 먹고사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요새 애들을 ‘막가파’라고 욕할 필요도 없다. 경쟁에서 이기고 나만 잘살면 된다고 가르친 거다. 이러니 요즘 애들 중 용산참사도 외면하고, 쌍차해고자를 조롱하며, 세월호 유족을 모욕하는 애들도 있는 것이다. 해서 외신기자에게 쓰레기통 같은 사회라는 소리를 듣는 거다.

나는 자식에게 공부공부 하는 것보다 우선 도덕성이 우선이라 생각해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살라고 가르쳤다. 앞을 못 보면 눈이 되어주고, 팔다리가 없으면 팔다리가 되어 주고 돈을 쫓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공부, 경쟁, 성장만 강조하는 사회라서 사람들이 돈이나 권력만 쫓아가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백남기씨가 저렇게 누워있어도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

경쟁만을 강조하면서 농업은 경쟁력이 없다며 포기하는 정책을 쓴다. 농업의 포기는 국민 목숨을 포기하는 거다. 공산품을 아무리 수출해봐라. 농산물 파는 나라가 안 팔겠다고 하면 뭐 먹고 살 수 있나? 공산품 뜯어먹고 사나? 성서에도 나온다. 요셉은 창고지기였다. 기근이 들었을 때 요셉에게 와서 다 머리를 조아렸다. 아버지를 닮은 효녀가 대통령이 되니 역시 경쟁 밖에 몰라 농업이고 뭐고 다 내버리는 정책을 편다."고 말했다.

그날 만난 이들은 절박했다. 이 사회가 제 길을 심하게 벗어나서 굴러간다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정부는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국민의 목숨을 우습게 알고, 진실을 외면한 채 거짓말만 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 목숨과 직결되는 농업도 헌신짝처럼 버린다고 생각했다. 또한 국민은 돈이 최고라는 잘못된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 정부가 과연 이런 국민의 외침을 들어줄까? 불행히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본다. 지금의 정부는 국민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부동산정책, 복지정책, 노동정책, 농업정책, 규제완화, 국정교과서, 위안부협상 등 국민이 하지 말라는 것만 일부러 골라서 하는 정부 같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어떤 막장으로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굴러가는 브레이크 없는 열차라는 생각이 든다.

2016년 새해가 밝았다지만 이 사회 곳곳 어디에도 밝음은 보이지 않는다. 이 어둠이 어디에서 왔는지 국민들이 깨달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과연 우리 국민이 그것을 통찰할 수 있을까? 지금 보다 더 바닥으로 떨어져야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올해는 민주주의 추락에 이어 경제추락까지 더해져 더 어둡고 더 답답한 사회로 가는 한해가 될 것 같은데...

돼지는 하늘을 볼 수 없다. 고개를 15도 이상 들 수가 없어서 땅만 보고 살며 배만 부르면 된다. 그런 돼지에게도 하늘을 볼 때가 있다. 바로 넘어지고 쓰러져야 하늘을 볼 수 있다. 우리도 돼지같이 바닥에 넘어지고 쓰러져야만 새로운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우리 민족은 그동안 엄청난 시련을 겪은 민족이다. 그리고 그 시련을 누구보다 슬기롭게 이겨낸 민족이다. 총선이 다가온다는데 추락하는 이 나라를 조금이라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우리 민족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나의 귀중한 한 표를 선한 마음을 가진 이에게 행사한다면 새로운 하늘인 정의사회, 상식과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사회를 가질  가능성이 없진 않다고 본다. 물론 그 전에 집단적 성찰이 있어야 하겠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우리 민족은 현명한 선택을 하기도 하는 민족이니까.. 너무 절망에 빠지진 말자. 희망을 갖자.

도움 : 사진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녹음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편집 : 이동구 에디터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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