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의 독립군은 순대와 만두를 먹었어요.

  촬영이 모두 끝나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  은주 윤주 성주 3남매,  최불암 씨
  촬영이 모두 끝나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  은주 윤주 성주 3남매,  최불암 씨

 봉오동 출신이라 그런지 우리 가족은 모두 고기를 좋아한다.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하고, 돼지고기도 살코기만 있는 것보다 비계가 적당히 섞인 것을 더 좋아한다. 우리 집의 명절 음식은 떡국과 송편, 부침이 아니라 만두와 순대였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만두나 순대를 만들었다만두보다 순대 만들기가 훻씬 힘들다. 그래도 우리 형제들에게 만두나 순대 중 하나를 고르라면 아마 모두 순대를 택할 것이다.

순대는 집에서 만들기 쉽지 않은 음식이다. 우선 축산물시장에 가서 피와 창자를 사와야 하고, 냄새가 나지 않게 창자를 뒤집어 지저분한 것을 떼어내고 소금과 밀가루로 잘 문질러 씻어야 한다. 창자를 깨끗이 손질하는 일은 순대를 만드는 전 과정에서 제일 힘들고 중요한 작업이다. 창자는 대창이라고 하는 굵고 긴 창자를 주로 사용하지만 주머니처럼 생긴 크고 둥그런 부위도 그대로 사용했다. 입구가 커서 속을 넣기가 더 편하기도 하고 맛도 괜찮다.

순대 속은 돼지 피나 소 선지에 다진 고기, 찹쌀, 차조, 멥쌀, 그리고 파와 마늘이 듬뿍 들어간다. 잡내를 없애기 위해 생강과 방아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돼지고기 다진 것을 많이 넣는데 살코기만 넣으면 부드러운 맛이 부족해 식감을 위해 일부러 비계를 더 넣는다창자 속에  생쌀을 넣기 때문에 익으면서 많이 불어나 터질 위험이 있어 밥을 조금씩 넣어 농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이렇게 준비된 재료로 수분과 건더기의 농도를 잘 맞춰 창자의 속을 채우고 실로 묶어 삶는다. 속이 새지 않도록 꼭 묶어주는 일도 중요하고 순대가 터지지 않게 잘 삶는 요령도 필요하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30분 이상 끓이며 순대가 거의 다 익었을 때 바늘처럼 가는 대꼬챙이로 구멍을 내어 피가 나오는지 물이 나오는지 살펴가며 삶아내야 한다. 이 과정을 모두 거쳐 만들어진 순대는 불고기나 수육이 만들어낼 수 없는 깊은 풍미를 지닌 다른 차원의 음식이 된다.

순대를 만드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이 역할을 바꿔가며 돼지 창자에 속을 채우고 있다.
순대를 만드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이 역할을 바꿔가며 돼지 창자에 속을 채우고 있다.

 

우리 집 만두는 두부나 김치로 만두소를 만들지 않고 무를 삶아 넣는다. 배추를 같이 넣을 때도 있지만 주로 무를 많이 넣었다.. 무를 삶아 꼭 짜서 고기와 섞어 만두소를 만들었다. 무를 넣은 고기만두는 풍미가 좋고 식감이 부드럽다. 그래선지 두부로 속을 채운 다른 집 만두는 퍽퍽한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들곤 했다. 만두를 빚는 날은 대개 명절 전날 저녁 무렵이다. 어머니가 미리 무를 삶고 고기를 다지며 소를 만들기 시작하면 아버지와 큰오빠가 밀가루 반죽을 담당했다. 그렇게 만두소와 반죽이 준비가 되면 온 가족이 큰방에 빙 둘러 앉아서 만두를 빚기 시작한다.

큰오빠가 잘 치댄 반죽을 잘라내 아버지께 넘기면 아버지는 반죽을 방망이처럼 길게 만들어 왼손에 잡고 오른 손으로 반죽을 뚝뚝 잘라서 손바닥으로 꾹 눌러서 옆으로 보내면 그걸 얇게 펴서 동그란 만두피로 만드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왼손으로 반죽을 빠르게 돌리면서 오른손으로 방망이를 돌리면 순식간에 얇은 만두피가 만들어졌다. 그 옆에서 커다란 함지에 담긴 만두소를 덜어 만두를 빚어내는 일은 대개 할머니가 맡으셨다.

만두피가 조금 쌓이기 시작하면 나머지 식구들도 숟가락을 들고 합세했다. 물론 속도나 모양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해 쫓겨나기 일쑤였고 밀가루반죽을 갖고 놀다가 혼나기도 했지만 모두 즐거운 기억이다. 금방 삶은 만두를 맛보면서 만두소에 간을 더 하거나 재료를 더 넣기도 하면서 대형 채반이 서너 개 채워지고야 만두 만들기는 마무리되었다. 냉장고가 없을 때니 그리 오래 두고 먹지 못했지만 며칠 동안 계속 만두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 독립군의 밥상은 KBS1 (채널 9)에서 8월 12일  저녁 7시 40분에 방송된다.

최성주 객원편집위원  immacole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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