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무더운 여름철 찌뿌둥한 날씨에다가 간밤에 딸 문제로 아내와 심하게 말다툼을 벌인 모리 국장은 아침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요즘 애들은 국가에 대한 개념이 없어도 너무 없단 말야.  K- 팝이니 한류니 언론에서 떠들어대도 그게 남의 자식들 이야기인 줄만 알았지 자신의 딸이 한류에 푹 빠져 있을 줄은 몰랐다.

"아카네! 딱 이번만이야. 다음부터는 어림반푼어치도 없어. 알겠나?"

아카네는 10대에는 소녀시대와 트와이스에 열광하더니 스무살을 넘긴 요즘에는 BTS와 블랙핑크라면 사죽을 못 쓸 정도이다.  한국이 좋다며 한국에 한 달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아카네의 성화에 못이겨 끝내 허락을 하고 말았지만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적어도 일본의 대외공작을 총괄하고 있는 내각정보조사실 소속의 모리 국장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때 아내가 겨울연가라는 한국 드라마에 빠져 정신 못차리더니 이제는 딸이 대를 이어 한류에 물들어갔다.  그나마 아내는 양반이다. 딸 아카네는 K-드라마는 물론이고  K팝과 K푸드, K뷰티 등 마치 K 종합선물세트처럼 한국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아무래도 자식 교육을 잘못 시킨 것같아 죄책감 마저 든다. 모리는 공직자로서 자괴감이 드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도쿄 한인타운이 있는 신오쿠보는 그렇다치더라도 젊음의 거리인 시부야 거리에도 한류는 넘쳐난다. 시부야 센터 거리는 도쿄의 분카무라와 이노카시라도리 사이에 있는 길거리로 시부야 역 교차로에서 도큐 백화점까지 약 350미터 길이의 거리이다. 수많은 식당과 패스트푸드점, 대형 레코드 매장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가 영업중에 있으며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층이 선호하는 거리이다. 이런 시부야 거리에 한국 아이돌의 음악이 흐르고, 음식점에는  한국 메뉴가 판을 치고 있다니.  모리가 보기에는 실로 역겹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한때는 일본 문화가 유럽과 동남아 지역을 휩쓸었는데 이제는 아련히 먼 과거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출처 : 한겨레 신문 /  그룹 소녀시대.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

 

오후가 되자 도쿄 빌딩 숲 사이로 내각정보조사실이 들어있는 중앙합동청사의 건물 창가에 강렬한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일본은 나라를 대표하는 대내외 종합 정보기관이 없다. 총리실 안에 있는 내각정보조사실과 공안경찰, 공안조사청의 세 정보기관이 국내외 정보 수집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3두 체제다.

 내각정보조사실(이하 내조)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되기 직전에 생긴 정보조직으로 일본이 국제무대에 복귀하면서 미군점령군사령부가 했던 국내 극좌세력과 소련 및 중국의 적대국에 대한 정보 수집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창설되었다.  전후 내각총리실의 권한이 커지면서 내조의 권한과 활동 영역도 덩달아  비대해졌다. 내조는 일본의 국익 수호와 관련한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정치에 관여하거나 공작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보수 집권당인 자명당 정권에 비판적인 전 문부성 사무차관의 명성에 흠집을 내려고 그가 마치 성풍속업소에 출입해 난잡한 행위을 한 것처럼 매스컴에 정보를 흘리기도 했다.

 내조가 일본 정치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매주 화, 목요일에는 내조의 수장인 내각정보관이 총리와 만나 대내외 정보 상황을 보고하는데, 동석했던 국가안전보장국(NSC) 국장, 공안조사청 장관이 이석한 뒤 단독 보고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 신문은 매일 총리의 동정을 분 단위로 정리해 보도하는데, 총리와 가장 빈번하게 만난 인물이 내각정보관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내조는 총리를 비롯한 내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관이다.​

오늘은 모리 국장이 오전 10시에 동북아재단으로부터  중요한 보고를 받는 날이다.  동북아 재단의 마쓰다 팀장이 긴장한 얼굴로 국장실에 들어왔다. 마쓰다가 올린 보고서를 훑어본 모리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이따위 밖에 보고를 못 하나?  대학 신입생도 이것보다는 낫겠군그래."

모리 국장이 동북아 재단에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왠지 화풀이할 데가 필요했다.  마쓰다 팀장은 별 동요를 하지 않고 담담하게 모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각정보조사실에서 동북아 재단을 지원하고 있는 건 맞지만 재단에서 작업한 결과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할 의무가 있는 것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입맛에 맞는 보고를 원하신다면 내일부터라도 당장 예산을 끊고 재단을 해체하면  될 일입니다."

마쓰다의 강경한 항의에 기세등등한 모리의 자세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동북아 재단은 말이 재단이지 사실상 내각정보국의 외곽비밀 단체이다. 공식적인 소속은 문부성 산하 기관이지만 내조에서 자금을 지원하며 업무 방향을 지휘하고 있다. 내조에서 직접 나서지 못하는 활동을 도맡아 처리하는 비공식적인 단체 중 하나이다. 

동북아 재단이 하는 일은 동북아지역 특히 일본과 한국, 중국의 미래에 대해 심층적인 조사와 평가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미래학을 연구한다거나 정치경제적 상황을 단순 보고하는 곳이 아니라 동북아 3국의  미래에 대한 전세계 예언가들의 예언을 탐문하여 평가하고  그 실현가능성 여부를 밀도 있게 조사하고 검증하는 곳이다.

<계속>

편집 : 안지애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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