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남산을 가면 충무로역과 가까운 서울남산청사에서 시작해서 북둘레길을 거쳐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온다. 시간이 넉넉하면 정상에서 남둘레길을 거쳐 야외식물원에 들렀다가 북둘레길로 돌아온다. 매번 같은 길을 가니 좀 재미가 없어졌다. 이번에는 숭례문 뒤쪽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 근처 남산공원 입구에서 산책을 시작했다.

남산 가장 서쪽에 있는 공원 입구
남산 가장 서쪽에 있는 공원 입구

빨간 동그라미 현 위치에서 백범광장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현 위치에서 바로 올라가면 계단이 있는 길이지만왼쪽으로 가면 김유신 동상 방향 무장애 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성곽 오른편으로 또 무장애 길이 나온다유모차나 실버카를 끌고 와도 문제없이 오를 수 있다.

왼쪽 무장애 길, 중앙 계단 길, 오른쪽 성곽 옆 무장애 길 
왼쪽 무장애 길, 중앙 계단 길, 오른쪽 성곽 옆 무장애 길 

여기서 백범광장으로 가는 길은 4개가 있다. 성곽을 따라 걷는 길, 성곽 왼편과 오른편의 곧바로 올라가는 직선 길 그리고 성곽 왼편 방향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다. 어느 길이나 직선 길은 재미없다. 우리는 이 구불구불 길이 너무 좋아 왔다 갔다 두 번이나 했다

구불구불길 
구불구불길 

성곽을 따라 오르는 짧은 길도 멋지다. 성곽 끝에는 백범광장공원 조망지점이 나온다. 밤에 오면 멋진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겠다.

백범광장에 도착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신궁이 지어졌다가, 이승만 동상이 들어섰다. 4.19 때 동상 목이 잘려 질질 끌려 나가는 수모를 겪은 후 백범 김구 동상이 들어섰다. 백범 김구 동상 옆에는 이시영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동상이 있다. 명문 독립운동가 가문인 경주 이씨 중 1인으로 유명한 이회영의 동생이다. 

백범광장에 있는 왼쪽은 이시영 동상이고 오른쪽은 김구 동상 
백범광장에 있는 왼쪽은 이시영 동상이고 오른쪽은 김구 동상 

백범광장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서 만난 야생화다. 먼저 '파리풀'이 귀여운 봉오리를 열었다. 파리풀은 파리를 닮아 파리풀이 아니고 파리를 잡는데 요긴한 풀이라서 파리풀이라 부른다. 뿌리를 짓이겨 종이에 바르면 종이가 이를 흡수하고 파리는 이 종이에 달라붙어 도망을 못 간다 해서 파리풀이다. 어찌 뿌리에 그런 효능이 있는 줄 우리 조상들은 알았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7-9월에 분홍 꽃이 피는데 아래 사진처럼 꽃이 피면 아래로 향한다. 

파리풀
파리풀

그 다음 만난 녀석은 '사위질빵'이다. 이름에서 사연이 느껴진다. 사위질빵은 덩굴식물이다. 하지만 질긴 덩굴식물답지 않게 힘을 주어 잡아당기면 쉽게 끊어진다.

옛날,  가을걷이 할 때 사위가 처갓집에 와서 도와주는 풍습이 있었다. 오랜만에 처갓집에 온 사위가 고생할 것을 염려한 장모가 꾀를 냈다. 사위가 무거운 짐을 지지 못하도록 지게 질빵(짐을 걸어서 메는 데 쓰는 줄)을 쉽게 끊어지는 이 식물로 만들어 주었다 해서 이름 붙었다 한다.

사위질빵
사위질빵

연분홍 꽃잎에 노란 술 4개를 달고 있는 '좀작살나무'도 나도 질세라 한껏 꽃망울을 열었다. 작살나무는 한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 모양이 작살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좀'은 작살나무보다 꽃이나 열매가 작아서 붙었다. 작살나무 열매의 지름은 4~5mm인 반면, 좀작살나무는 2~3mm다. 좀작살나무의 영문 이름이 Beauty berry다. 영문 이름처럼 보석같이 아름다운 열매는 10월에 자주색으로 달린다. 열매가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기른다.

열매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llicarpa_dichotoma3.jpg)
열매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llicarpa_dichotoma3.jpg)

남산 정상에 올랐다가 차 한 잔 마시고 성곽 아래 길로 내려가는데 비가 부슬부슬 흩뿌린다. 이 길 역시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비도 이 정도 내리면 분위기 있다

이 길 지나면 다시 성곽을 왼쪽에 두고 걷는 한가롭고 운치 있는 소나무길이 나온다. 건물 뒤쪽으로 길이 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른다. 8월 지금쯤이면 소나무 아래 꽃밭에 맥문동과 옥잠화가 마음껏 피어 있을 때다. 그런데 건물 공사를 한다고 길을 막아놓았다. 할 수 없이 반대편 끝으로 가서 옥잠화와 맥문동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옥잠화'는 백합과, 비비추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옥잠(玉簪)은 구슬 玉(옥)에 비녀 簪(잠)이다. 꽃봉오리가 옥비녀란 뜻으로 우리말로 ‘옥비녀꽃’이라고 부른다. 옥비녀꽃 이름이 더 예쁜데 중국이 원산지라 한자 이름을 우선하여 부르지 않았나 싶다. 7~8월에 꽃이 피는데 오후에 피었다가 아침이면 지고 마는 귀한 꽃이지만, 요새는 정원 어디에나 쉽게 옥잠화를 볼 수 있다. 꽃도 아름답지만 향기도 좋아서 향수를 만드는데 쓰인다고 한다.

'맥문동' 도 남산에 가면 자주 만나는 흔한 식물이다. 5~8월에 보라색 꽃이 피는 백합과, 맥문동속 여러해살이풀이다. 맥문동의 맥(麥)은 보리 맥, 문(門)은 문 문, 동(冬)은 겨울 동이다. 뿌리가 보리 뿌리 비슷한데 겨울에도 살아 있어 맥문동이라고 부른다. 우리말 이름은 '겨우살이풀'이다. '불사초'란 이름도 갖고 있다. 맥문동은 뿌리덩이가 한방에서 약용으로 귀하게 쓰이는 식물이었는데, 요새는 도로 공원 등 도시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큰나무 아래에도 많이 심는다. 사시사철 푸른 잎으로 우리 눈도 시원하게 해주고, 공기 정화에도 탁월한 기능을 하니 이런 기후 재앙 시대에 고맙고 또 고마운 식물이다. 지구가 볼 때는 어마어마한 음식물을 먹어치우는 지렁이나 환경 정화 식물이 인간보다 훨씬 고등생물이다. 

남산은 꽃구경뿐 아니라 서울의 대표 관광지인 만큼 재미있는 것들도  많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체험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요새는 남산타워 건물 4층에 안마의자도 생겼다. 유료이긴 한데 30분 안마를 받고 나면 몸이 시원해진다. 남산 올라가면 꼭 앉았다 오는 단골의자가 되었다. 9월에는 정상 바로 아래 성곽 길에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핀다. 그때 또 가야지...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미경 편집장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