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같은 대학을 다닌 친구 2명이 우리 집에 왔다. 한 명은 쉬운 우리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에리카다. 한국에서 영어학원 선생으로 3년 일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 잠시 우리집에 머물렀다. 다른 한 명은 한국말을 ‘아버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좋아요, 괜찮아요. 맛있어요.’ 등만 할 줄 아는 밴쿠버에서 사는 데이빗이다. 지난 2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일주일간 우리집에 머물렀는데, 한국이 엄청 좋았던지 또 휴가를 내고 두 달 만에 다시 왔다.

지난 2월, 데이빗이 왔을 때 휴가내기 어렵다는 딸을 대신해 내가 이틀을 데리고 다녔다. 영어안내 코스를 갖고 있는 창덕궁,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세월호 참사를 알고 있어서 세월호 천막도 방문했고, 인사동 구경도 하고, ‘문화공간온’에서 점심도 먹었다. 이번에도 딸이 하루만 맡아달라며 둘을 맡겼다. 궁리하다가 서울의 봄을 보여주기로 했다.

양성숙 팔진님이 4월 13일 벚꽃이 활짝 필 거라 알려주어 그 날로 잡았다. 남산을 주목적지로 정하고 충무로에 있는 '한국의 집'과 '남산 한옥골', 남산 북둘레길, 남산정상, 남산야외식물원, 남대문시장으로 일정을 정했다.

먼저 '한국의 집'에 갔다. 평일은 결혼식이 없어 식을 볼 수는 없지만 내가 결혼한 장소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 한국의 집 앞에서

32년 전 10월 나는 한국의 집에서 결혼했다. 그 당시 한국의 집 야외마당에서 결혼하는 사람은 드물었기에 많은 이들이 반대했다. 하지만 서양식으로 하기 싫어서 고집을 피우고 했는데... 하필 그날 비가 왔다. 그해 쌀농사를 쓸고 갔다는 우르릉 쾅쾅 엄청난 비였다. 비가림으로 하얀 대형천막은 쳤지만 하늘이 컴컴해져서 단체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빛이 펑 터지는 구식 카메라를 구해 와 사진을 찍고 나니, 3시 전에 끝날 결혼식이 4시 넘어 끝났다.

최명희 장편소설 ‘혼불’에서 보면 효원이 혼인하는 날, 날씨가 꾸물대면서 비가 왔다. 이를 두고 동네 아낙들은 신부 팔자 운운하며 수군댄다. 옛말에 혼인날 비가 오면 신부 팔자가 사납다고 했다. 두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니 캐나다는 혼인날 비 오면 운 좋은 부부가 될 거라고 한단다. 아마도 구징징한 날에 결혼하는 신랑신부가 속상할까.. 기죽을까.. 싶어 그리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긍정의 메시지라 좋다. 실제로 내가 팔자 사나우면 어쩌나~ 생각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집' 바로 옆에 있는 '남산 한옥골'도 구경했다.

▲ 남산 한옥골에서.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이 둘.

두달 전 국립중앙박물관에 간 적이 있는 데이빗이 사랑방, 병풍, 서탁, 가마, 아궁이 등 한국문화를 더 빨리 이해한다.

▲ 반들반들한 마루 넘어 뒷문으로 보이는 담과 꽃 핀 나무 그리고 처마. 그 모습이 정갈하다
▲ 남산 한옥골
▲ 한옥골
▲ 짚공예 장인. 진달래가 바구니에 담겨 있는 듯하다.

공연마당에서는 시작장애인들의 우리국악 공연이 펼쳐졌다. 사물놀이도 보고 창도 들었다. 운수 좋은 날 같다.

▲ 시각장애인 사물놀이패의 흥겨운 한마당
▲ 창을 하는 예술가들

남산은 벚꽃이 한창이다. 데이빗이 사는 밴쿠버와 에리카 집이 있는 할리팩스는 자연 친화적 도시라서 서울이 감히 비교하자 할 수 없겠지만... 아기자기 꽃들이 만발한 남산을 보고는 환호성 연발이다.

▲ 목멱산방 앞에서

 

 

▲ 목멱산방 앞에서

 

▲ 벚꽃 흩날리는 거리

점심은 목멱산방에서 먹었다. 그동안 남산은 휴일에만 와서 목멱산방 식사는 엄두도 못 냈다. 대기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평일에다가 점심 피크시간이 지나 그런지 6팀만 앞에 있었다. 일반 비빔밥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그저 그렇다.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 목멱산방의 비빔밥

천천히 식사를 하고 나니 3시부터 5시까지는 휴식시간이라 손님이 우리 밖에 없다. 아주 조용해서 좋지만 나가야 되나 했는데 차를 마시고 가도 된단다. 아이들이 의외로 커피 아니고 한방차를 마시겠단다. 데이빗은 십전대보탕을 시켰다. 쓰다고 안 먹으면 어쩌나 했는데 잘 마신다. 유자차를 시킨 에리카는 맛있다고 신이 났다. 아이 둘이 완전 한국 스타일이다.

▲ 식사를 기다리며 에리카 선글라스를 뺏어 쓴 데이빗.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를 닮았다고 하면 과할까?

남산 정상까지 걸어 올라갔다. 데이빗이 산성에 호기심을 보인다.

자물쇠로 칭칭 감긴 유명한 곳에도 가보고, 봉수대도 설명해줬는데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 남산 봉수대에서
▲ 남산 정상의 성곽 ; 데이빗이 관심을 계속 보이며 묻는다.

아이 둘 다 남산타워에 올라가는 것은 별로라고 해서 바로 남산야외식물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산 정상에서 야외식물원으로 내려가는 소나무 군락 초입에 나무 침대가 있다. 누워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힐링타임

소나무 군락지가 끝나면서 야외식물원으로 내려가는 이 샛길은 짧지만 아름다워서 여러번 왔다갔다 하고 싶은 길이다.

▲ 소나무길

야외식물원은 늘 사람이 없다. 한적해서 좋다. 발마사지(자갈돌 걷기)도 하고 전국 지역에서 올라온 다양한 소나무도 보고 남대문시장으로 발을 돌렸다.

▲ 야외식물원에서 강원도 소나무 뒷산
▲ 야외식물원 습지길

남대문시장은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데이빗은 길거리 음식을 먹어보겠다며 문어꼬치를 골랐다. 목멱산방 점심이 좀 부족했지 싶다. 둘 다 법석한 시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 문어꼬치가 맛있다는...

저녁 먹으로 가는 길에 남대문에 들렀다. 6시 전에 갔으면 내부 구경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다시는 오기 어려울 텐데... 남대문 시장에 가지말 걸... 후회가 된다. 사대문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둘 다 동대문과 경복궁을 다녀와서 그런지 이해가 빠르다.

▲ 에리카가 찍은 남대문
▲ 데이빗이 찍은 남대문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만난 성곽을 용케 알아보고 데이빗이 또 묻는다. 이 성곽은 언제 축성된 거냐고...

▲ 데이빗은 성곽에 꽂혔다

저녁은 콩국수로 유명한 진주회관에서 먹기로 했다.

▲ 진주회관

서울시에서 인증한 콩국수집이고, 내가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콩국수집이라고 하니까 눈이 동그래진다. 그렇게 유명한 집을? 우리가? 하는 얼굴이다. 예전에 딸의 다른 캐나다 친구에게 진주회관 콩국수를 사준 적이 있다. 2시간 후부터 설사를 하는데 식은땀을 흘리고 얼굴이 새하얗게 되며 힘들어했다. 진주회관 콩국물은 거의 스프 수준으로 진하다. 걱정이 돼서 에리카에게 물어봤더니 콩국수를 너무 좋아해서 작년 여름내 콩국수를 사먹었다고 한다. 데이빗이 못 먹으면 에리카랑 나랑 둘이 먹자 하고 콩국수와 김치볶음밥을 시켰다. 에리카는 이렇게 맛있는 콩국수는 처음이라고 신이 나서 먹는다. 데이빗은? 에리카보다 더 잘 먹는다. 아래 사진에서처럼 김치 위에 콩국수를 턱 얹어놓고 먹는다. 젓가락질도 척척이다. 김치 두 접시에 콩국수 먹고 김치볶음밥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한참 지나 속도 문제 없다니 전생에 한국사람이었나보다.

▲ 진주회관 콩국수와 김치볶음밥

8시가 한참 넘었지만 한양도성길 중 낙산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데이빗이 남산의 한양도성길에 관심을 보이며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등등 자꾸 물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둘 다 좋단다.

▲ 낙산에서 남산타워가 보인다고 좋아한다

낙산에서 혜화문으로 가는 길에는 태조, 세종, 숙종, 순조 4왕이 축조한 모양이 다른 성곽을 설명하는 푯말이 있다. 부족한 내 영어로는 데이빗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없었는데... 단번에 해결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다.

▲ 태조에서부터 순조까지 축조 형태를 설명해주기 위해 낙산에 갔다.

역시나 데이빗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밴쿠버에서 건축 관련 일을 하기 때문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 돌에 새겨진 한문의 의미를 설명해주니 얼른 사진을 찍는다.
▲ 혜화문에서 낙산 방향으로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낙산 뒷 성곽 길에서 나와 혜화문을 보여주었다. 서울의 사대문 중 하나인 남대문과 사대문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작은 대문 중 하나인 혜화문을 보면서.. 그 문안에서 사는 사람들과 문밖에 사는 사람들이 아주 다른 삶을 살았다고 엉터리방터리 영어로 설명해주었는데... 이해를 했을라나 모르겠다.

▲ 낙산에서 혜화문 방향으로... 밤이라 더 멋있다

집에 오니 11시가 넘었다. 오전 11시에 나가 12시간 돌아다녔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서 강행군을 했다. 무척 고달팠지만 둘 다 좋아한 것 같아서... 점심도, 저녁도 맛있게 남김없이 먹어주어서... 흐뭇하다.

▲ 에리카는 카톡 프로필 사진을 남산공원 사진으로 바꿨다. 좋았다는 표현을 이리 해주어 고맙다.
▲ 데이빗도 카톡배경사진을 성곽사진으로 바꿨다. 이름도 박 데이빗이라고 바꿨다. 하하하. 웃기는 녀석이다.

사진 : 데이빗, 에리카, 김미경 편집위원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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