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3일(수), 오늘은 '동우회'(東友會) 역사 탐방 날이다. 오후 1시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3, 4번 출구 '만남의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12시 40분, "한송, 나야! 지금 어디 있어?" 도연(道然)의 전화다. "알았어! 내 내려갈게!" 도연은 지난 봄 창덕궁 매화탐방 때 나오고 이번이 두 번째다.

도연을 만나 함께 '만남의 장소'로 가니 향산이 부인과 함께 와있다. 향산은 최근 인지능력이 급격히 떨어져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바깥출입이 힘들다. "향산, 잘 찾아왔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조금 뒤 우영, 우빈이, 그리고 탄월, 우사가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경산이 나타나지 않는다.

"경산, 어디쯤 오고 있어?"
"응, 사당역에서 차 갈아타려고..."
"경산, 사당역이라는데 어떻게? 조금 더 기다릴까?" 모두 "4분 거리니 조금 더 기다리자"고 한다. 한데, 4분 아니 10분이 돼도 나타나지 않는다. 저혈당으로 허기를 참지 못하는 탄월이 "배고파 참지 못하겠네!"한다.

그래서 점심 식사 장소(관악산 가마솥)를 아는 한송이 먼저 탄월과 우영을 식당으로 인도하고, 후진은 경산을 기다리기로 했다. 한송이 4번 출구를 나와 얼마쯤 가다보니 뒤따라올 줄 안 탄월과 우영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탄월에게 전화했다.

"탄월, 왜 안 보여?" "약국이야! 우영이 넘어져 얼굴을 다쳤어" 한다.
"저런 저런 어쩌다?"

한송은 가던 길을 되돌아 황급히 약국으로 갔다. 우영은 입술 위 인중이 파열돼 피가 흐른다. 우선 약국에서 응급 치료로 지혈시키고 택시를 태워 병원으로 보냈다. 그만한 게 천만다행이다. 누구보다 놀라고 당황한 건 탄월이었다.

관악산 가마솥! 녹두삼계탕과 추어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이 식당은 우사의 추천을 받아 지난 일요일 한송이 미리 찾아와 시식을 한 곳이다. 우영의 불상사로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으나 우린 소주잔을 기울이며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한송의 인사말과 함께 오늘 관람할 '붓을 물들이다'에 대한 개요를 들은 뒤 우린 서울대입구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5511번, 차가 막 출발하려 한다. 우빈, 우사, 도연이 서둘러 탔다. 하지만 향산이 뒤따르지 못해 경산, 탄월, 향산, 한송은 버스를 보낸 뒤 택시를 잡아탔다.

붓을 물들이다-<근역화휘>와 조선의 화가들-

서울대박물관 앞에서 합류한 우리는 박물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기획특별전은 2층에서 했다.

조선시대 컬렉터 오세창

수집은 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장 열중하는 행위 중의 하나이다. 우리도 학생 때 우표나 동전, 성냥갑 등을 수집했던 경험이 있다. 이제는 그 대상이 문구류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형편과 취향이 닿는 대로 무엇이든 다양해졌다. 최근 미술품을 구입하고자 아트페어나 경매에 참여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면서, 미술 시장도 2000년대 이후 오랜만에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럼, 이런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애호일까? 투자일까?

물론 지금의 수집 유행은 애호보다는 투자에 목적이 있다. 당시 오세창은 그림의 수집이 투자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림을 되팔지 않고 모으는 족족 화첩에 넣어 이를 엮어 화첩을 만들었다.

이번 서울대박물관 기획특별전 '붓을 물들이다'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을 한 장씩 모아 만든 화첩 <근역화휘>(槿域畵彙)를 소개하는 전시다.

물론 이 화첩을 만든 사람은 근대서예가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다. 그는 최고의 감식안을 지닌 컬렉터이자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다.

오세창의 서화 수집과 감식 취미는 중국어 통역관이었던 그의 아버지 오경석(吳慶錫, 1831-1879)에게서 이어받은 것이다. 그가 방대한 양의 서화를 수집하고 정리하는데 몰두할 때는 이미 서화의 인기가 시들어버린 경술국치 이후였다.

당시 우리 지식인들은 서화를 낡은 유교문화의 잔재라 여겼고, 일본학자들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 미술을 깎아내리는 한국미술사를 저술했을 때다.

오세창은 그런 인식이 깎아내리는 것은 그저 한 시대의 그림이 아니라 우리 민족문화 자체임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화가들의 자료를 조사하고 작품을 수집해 책과 화첩을 편집했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조선은 결코 지배당해 마땅한 나라가 아니었음을 예술의 역사를 통해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먼저 '민족문화를 수집하다' 전시실로 들어갔다. 여기에서는 오세창 선생의 서화(書畵) 수집이 갖는 의미를 가업(家業) 계승과 서화 전통의 보존이라는 두 측면에서 조명하였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오세창의 임서(臨書) 서예작품과 화집 <근역화휘> 3권이었다.

작품 <嘉喜來福>은 추사 김정희의 서체를 임서한 것이고,

<근역화휘>(槿域畵彙)는 오세창 선생이 역대 화가들의 그림을 모아 편집한 화집으로, 조선시대 화가 67명의 그림 67점을 천(天). 지(地). 인(人) 모두 3권에 나누어 수록한 것이다.

이 화첩은 오세창 선생과 친분이 있었던 박영철이 가지고 있다가 1940년 경성제국대학에 기증한 것으로써 지금은 서울대학교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근역화휘>에는 조선시대 회화가 시대순으로 종합되어 있으며 정선, 심사정, 조희룡 등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오세창 선생이 평생 매진하였던 수집 활동은 시대적 요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독립운동가이자 수집가, 예술가였던 그의 삶을 만나 볼 수 있었다.

편집자 주 : 2편으로 이어집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  jwy-hanson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여안당일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