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안당 일기>

6월3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사)동악미술사학회 2023 상반기 학술대회가 열렸다.

나는 지난 6월 1일자 <한겨레> 신문에 소개된 '저 신라인의 미소는 불귀신 막는 왕생자 얼굴?'(노형석 기자)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주술'과 '도사'의 신통력은 한국미술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부귀영화를 좇고 흉한 기운은 내치려는 길상과 벽사의 갈망은 권력자든 민중이든 피해 갈 수 없다. 이를 반영한 불교와 무속계의 주술과 비기, 비책은 오래전부터 이 땅의 선조들이 미술품을 창작한 과정에서 유력한 막후 동력으로 작동했다.

최근 국내 미술사학계에서는 이런 주술의 미술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오늘 학술대회는 이런 근래의 성과를 모아 <미술과 초자연: 길상, 벽사, 주술, 영향>이란 제목으로 동악미술사학회가 주최하는 이색 심포지엄이다. 나는 학회 회원은 아니지만 '주술의 미술사'란 생소한 용어에 흥미를 갖고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으로 갔다. 허형욱 사회로 진행된 이날 학술발표는 예정시간보다 30분 늦은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됐다.

첫 발표자 명세라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사는 <빛을 담은 거울, 그 성속(聖俗)의 경계 –조선시대 일월경(日月鏡)을 중심으로->에서 "거울은 사전적 의미로 빛을 반사해서 형상을 비추는 기물이며, 금속 거울 이전에는 물에 형상을 비췄다."하며 거울의 사전적 의미를 짚고, 이어 "그러나 역사적으로 거울은 사전적 의미 외에도 나쁜 기운을 물리쳐 주는 주술적 기능과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되새겨 경계를 삼는 감계적 기능, 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효과를 주는 장식적 기능 등이 있다"고 했다.

이어 명 연구사는 "이렇게 다양한 기능을 갖은 거울 중에서 조선 시대 해와 달을 상징하는 거울에 주목한다." 하면서 "바로 '일월경'이라고 불린 거울로, 각종 문헌자료에서 보면 이 거울이 '오봉도'의 해와 달 부분에 부착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고 했다. 비록 실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형상을 추정할 수 있는 문헌기록과 시각자료, 동시기 중국과 일본의 일월경이나 금속으로 형상화된 해와 달 표현 등을 통해 조선시대 일월경의 형태와 특징을 추정하고, 성스러우면서도 장식적인 면모를 조명했다.

두 번째로 박정원(동아시아미술연구소) 연구원의 <수륙회도의 구원 이미지> 발표가 있었다. 발표자는 머리말에서 "'구원(救援)'의 사전적 의미는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줌', '인류를 죽음과 고통, 죄악에서 건져내는 일'이다"라 하고, 따라서 종교적 측면에서 볼 때 "구원은 인류가 모든 종교에서 얻고자 하는 최종 목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구원의 수단이나 방법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구원에 대해서, 그 구원의 수단 및 방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이미지화할 것인가의 문제는 종교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아미타여래와 금강대를 받쳐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구름을 타고 사자(死者)를 향해 내려오는 모습을 그린 <아미타래영도(阿彌陀來迎圖)>는 죽은 이를 극락세계로 데려간다는, 그러한 구원의 모습을 이미지화한 것이라 했다.

이러한 종교에서의 구원이란 측면에서 볼 때, 불교에서 설행하는 육지와 물의 고혼(孤魂)들을 구하기 위한 의식인 '수륙회'(水陸會)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의식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제작되어 현전하는 수륙회도(水陸會圖; 감로도/甘露圖, 감로왕도/甘露王圖, 감로회도/甘露會圖)는 이러한 수륙회와 관련이 있는 작품이다. 수륙회도의 화면은 중앙의 시식대를 중심으로 세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화면 중앙 시식대의 주변에는 수륙회를 설행하고 있는 승려들의 모습이, 그리고 시식대의 위에는 수륙회의 장소에 강림하고 있는 일곱 여래 및 인로왕보살 등의 불・보살이, 이어 시식대의 아래에는 배고픈 귀신인 기귀(飢鬼)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재난 및 환난에 의하여 죽는 이들이 배치되어 있다. 즉 수륙회도는 구원의 대상인 아귀와 여러 재난으로 죽는 이들 및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현실에서 설행되는 수륙회의 장면과 함께 이렇게 설행되는 수륙회에 의하여 그 장소에 강림하고 있는 불・보살들 까지 모두 한 폭에 표현하고 있다. 나는 이 발표를 통해 발표자의 수륙회도에 표현된 구원에 관련된 이미지들에 대한 선행 연구를 기반으로 조선시대 수륙회도에 '구원'이라는 모습이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 그리고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다음은 세 번째로 중앙승가대학 정각 스님(본명 문상련)의 <불인(佛印)과 탑인(塔印)의 한국 수용과 전개 - 부처님 현존과 감응의 희구->란 제목의 발표가 있었다. 정각 스님은 고려 내지 조선시대에 간행된 다라니에는 부처님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불인(佛印) 내지 탑인(塔印)이 실려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하면서 이 중 다라니에 실린 불교 부적에 대한 연구가 최근 진행되고 있지만, 다라니에 실린 불인과 탑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진행되지 않은 상태라 하였다.

불인과 탑인이란 부처의 형상 내지 탑의 형상을 찍은 도장을 말하는 것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불인이 현존해 있다. 이중 불정심인(佛頂心印)은 암각에 부조되어 있거나 석조물 내지 와전 등에 새겨진 예가 있으나 불복장(佛腹藏)에서 수습된 다라니에 부적과 함께 실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라 했다. 이에 발표자는 먼저 불인 내지 탑인이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밝히고, 또한 중국에서 번역된 경전 및 현존 자료를 바탕으로 불인 내지 탑인의 연원을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불교에 전하는 각종 불인 내지 탑인의 의미와 시기에 따라 이들 불인과 탑인이 어떤 형식으로 변화되는지를 언급하였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법인 내지 종자(種字)가 부적화(符籍化) 내지 불인화(佛印化)되는 양상과 함께 이로 인해 불인이 다양화된 예를 설명했다. 한편 불인 내지 탑인은 부적과 함께 다라니에 실려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다라니 안에서 불인의 위상 내지 역할을 검토했다.

오후 발표는 오후 1시 20분, 동국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장계수 연구원의 <길상과 벽사 :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 구현된 세속적 욕망>을 시작으로 일본 奈良女子大學 佐藤有希子 교수의 <毘沙門天靈驗譚과 造像에 보이는 超現實-史實과 傳說의 사이->, 그리고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한정호 교수의 <화마(火魔)와 신라의 장식 기와> 등 3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한정호 동국대학교 교수가 발표한 <화마와 신라의 장식기와>이었다. 한 교수는 이 논고에서 신라 장식기와의 문양인 연꽃, 용, 치미, 날짐승, 사자 등을 화마(火魔; 불귀신)를 용납하지 않는 상극(相克)의 상징물이자 화재 위험에서 건물을 지키는 벽사적인 의미를 담은 것들로 해석했다. 경주 황룡사 터에서 발견된 지붕 장식물 치미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웃는 사람 얼굴 무늬는 불경 <관무량수경>의 칠보 연못에서 새롭게 태어나 화생하는 왕생자의 환희 어린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며, '신라인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영묘사 터 출토 얼굴 무늬 수막새 역시 구품연지 연꽃에서 화생한 왕생자 얼굴을 표현한 것이라는 파격적 해석을 했다.

또 오전에 첫 발표한 명세라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사는 궁궐 전각에 있던 금속제 거울 일월경이 지닌 주술, 권력 측면의 상징성을 분석했다. 일월경은 경복궁 근정전과 덕수궁 중화전 등에 있던 '일월오봉도'의 해와 달 부위에 철사로 이어져 붙어 있다가 해방 뒤 사라져 버린 기구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오봉도의 일월도에 대한 그림은 많이 듣고 보았지만 '일월경'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 매우 흥미로웠다. 

다음 중앙승가대학교 정각 스님의 <불인과 탑인의 한국 수용과 전개 -부처님의 현존과 감응의 희구->를 들으면서 현재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만월의 빛 정토의 빛>을 떠올렸다. 그것은 불인과 탑인의 현존 자료가 불복장(佛腹藏)에서 수습된 다라니에 부적과 함께 실려진 경우가 많다고 하였는데, 현재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 <만월의 빛 정토의 빛> 기획전이 바로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와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 좌상 및 복장에서 나온 유품을 전시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날 학회장인 신광희 중앙승가대 교수는 학술발표에 앞서 인사말에서 "미술은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때론 초월하려는 이중적인 속성을 지닌다"면서 "인간의 바람과 욕망이 미술에 어떻게 담겨 있는지 그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날 학술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 <만월의 빛 정토의 빛> 기획전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2023. 6. 6.

현충일에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 늙은이가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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