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되고 싶었던 왕, 안티오코스(Antiochos) 1세 고분

고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 우리 일행들
고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 우리 일행들

왜 굳이 2,150m 높이의 넴룻산 꼭대기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을까? 돌무덤이라고 하는데... 산꼭대기에 무덤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돌은 어떻게 옮겼을까? 얼마나 많은 노예나 국민이 저 돌을 이고 지고, 부수고, 나르다 죽고 다쳤을까? 넴룻산 고분을 올라가면서 들었던 삐딱한 생각이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Mt. Nemrut Tumulus’는 안티오코스(기원전 69-34) 1세의 고분이다. 그는 콤마게네의 가장 강력한 통치자였다. 그는 신이 되고 싶었다. 고대 사람들은 신은 산꼭대기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여 안티오코스는 토러스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인 넴룻산 꼭대기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다.

벽의 흔적 
벽의 흔적 

안티오코스는 먼저 정상을 가운데 두고 거대한 돌을 깎아 둥근 벽을 세웠다. 그 벽 안에 부순 돌들을 높게 쌓아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의 크기는 지름이 150m이고 높이는 50m다. 이 크기로 보아 약 60만 톤 무게의 약 29만㎥의 돌들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렇게 잘게 부순 돌로 무덤을 만드는 방식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다. 무덤을 파면 자잘한 돌들이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도굴도 어렵고 발굴 조사도 어렵다. 현재까지 조사에서 안티오코스 매장실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학자들은 이곳에 그의 매장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음으로 그는 무덤의 동·서쪽에  2개의 테라스를 만들었다. 테라스에는 8~10m 높이의 석상을 놓았다. 안티오코스는 생전에 자신을 ‘아폴론의 환생’이라고 했을 정도로 자신이 신들과 동등하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석상을 제우스, 아폴론, 헤라클레스 등과 나란히 놓았다. 북쪽에도 테라스가 있다. 이는 안티오코스 때 만든 것은 아니다. 제사 등의 의식을 위해 후대 왕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있다. 석상은 없으며 약 80m의 벽, 돌, 돌판 유적 등만 남아 있다. ,  

아나톨리아 반도가 그러하듯이 콤마게네 왕국도 트로이, 히타이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그리스, 로마 등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교차했다. 특히 콤마게네 왕국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문명을 융합한 독특한 문명을 가졌다. 이 석상에서도 융합 문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석상은 제우스와 오로마데스(페르시아의 신)가,  아폴론과 미트라스(페르시아의 신)가 결합하여 한 몸으로 서 있었다. 헤라클레스와 아르타그네스(페르시아의 신)와 아네스 세 신도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비문에도 안티오코스 1세의 아버지는 다리우스(페르시아 왕)의 후손이고, 어머니는 알렉산더(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왕)의 후손이라고 쓰여 있다.

동쪽 테라스
동쪽 테라스

동·서쪽 테라스의 석상은 지진과 폭설 등으로 머리가 굴러떨어지고 몸체가 해체되는 등 온전한 것이 없다. 동쪽 테라스는 서쪽 테라스보다 그래도 나은 편이다. 제단 아래로 몸체로부터 떨어진 두상들이 바닥에 놓여있다. 다행히 앉아있는 몸체는 남아 있다. 맨 왼쪽에 독수리 두상, 다음으로 안티오코스 1세, 콤마게네 여신 뒤케(Tyche)의 두상이다. 맨 오른쪽에 제우스-오로마데스 두상이 있다.  

왼쪽부터 아폴론-미트라스 두상, 헤라클레스- 아르타그네-아레스 두상, 수호신 독수리와 사자 두상이다. 자리에 앉아있던 순서대로 굴러 떨어진 두상도 그 앞에 놓았다.  

서쪽 테라스 

해넘이가 장관인 서쪽 테라스는 폭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한다. 쌓인 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면서 테라스를 덮쳐 두상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몸체도 해체되어 땅바닥에 뒹굴고 있다. 서쪽도 동쪽과 마찬가지로 어떤 복원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건지... 아니면 유적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복원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UNESCO는 이 고분이 헬레니즘 시대의 가장 야심 찬 건축물 중 하나라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는데....

가운데 안티오코스 1세 두상이 있다. 오른쪽 뒤에 콤마게네 여신 뒤케의 두상이 있다. 왼쪽에는 수호신인 독수리 두상이 있다. 

왼쪽부터 제우스-오로마데스 두상, 가운데 뒤쪽 아폴론-미트라스 두상, 오른쪽에 헤라클레스- 아르타그네-아레스 두상이다. 두상의 얼굴은 그리스 조각상의 모습이지만 모자나 머리 모양은 페르시아 스타일이다. 이상하게 코가 뭉개진 두상들이 많다. 굴러떨어지면서 코만 깨졌을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자연 현상 같지는 않다. 약탈과 파괴의 과정에서 코를 일부러 부순 것으로 보인다. 

독일 건축학자이자 고고학자인 'Karl Humann'이 그림으로 복원한 서쪽 테라스(출처 : Commagene Nemrut(Akel Yayincilik))
독일 건축학자이자 고고학자인 'Karl Humann'이 그림으로 복원한 서쪽 테라스(출처 : Commagene Nemrut(Akel Yayincilik))

독일 건축학자이자 고고학자인 'Karl Humann'이 복원한 서쪽 테라스다. 가운데 제우스(9)를 중심으로 왼쪽에 뒤케(8)와 안티오코스(7), 오른쪽에  아폴론(10)과 헤라클레스(11)가 있다. 양쪽 끝에 독수리와 사자 수호상이 각각 있다. 2번과 5번까지 부조에는 안티오코스 1세가 그리스-페르시아 신들과 악수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6번은 Zodiac Lion(=사자궁 /사자자리 성좌에서 유래한 다섯 번째 점성술 별자리)이다. 아직 왜 Zodiac Lion이 석상들 사이에 있는지 풀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넴룻산 꼭대기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매혹적인 해돋이, 해넘이 장소다. 자... 이제 드디어 서쪽 테라스에 만난 해넘이 장관을 구경하자. 

 

 

 

한 사람이 해가 지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사람의 탄성이 들리지 않는 제일 조용한 곳에서 한참을 정지한 자세로 영상을 찍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의 뒤에서 숨죽이며 노을을 감상했다. 해가 떨어지자, 그는 나를 돌아보았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자신이 느낀 감동을 나도 느꼈을 거로 생각했을까? 감동으로 벅차오르는 얼굴에 흥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은 튀르키예인인데 현재는 영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25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고.... 어려서 찾았던 이곳을 잊을 수 없었다고....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한국에 와본 적이 있다면서 너무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불고기냐 하니 아니라고 하면서 손으로 고기 뒤집는 시늉을 했다. 삼겹살 구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코리언  바베큐라고 물으니 맞는다고 하면서 다시 한국 가서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쪽 테라스엔 가봤냐고 했다. 안 가봤다고 하니 꼭 가보라고 하면서 거기는 해돋이가 너무 멋지다고 자신은 내일 아침에 다시 올 거라고 했다. 그렇게 둘 다 감동에 겨워 말을 주고 나눴다. 가끔 이런 소통을 하다 보면 인류가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해넘이를 봤으니, 해돋이까지는 보러 오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 급하게 동쪽 테라스로 갔다가 내려왔다. 해는 졌지만, 노을의 잔영이 온 하늘을 메우고 있는 하산 길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장엄했다. 그날 자연이 내게 보내준 선물 같았다.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도 여한이 없을 듯 싶었다.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노을의 잔영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노을의 잔영 

일행 대부분은 서쪽 테라스만 보고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갔다. 동쪽 테라스까지 갔다가 달님을 벗 삼아 내려온 팀은 4팀 정도? 내려오면서 노을보다 더 아름다운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쌍으로 오신 어머님과 아드님이다. 두 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다정하게 내려왔다.

어머니와 아드님 
어머니와 아드님 

아드님은 일등 항해사다. 예전에 홀로 튀르키예 배낭 여행을 왔다. 잊지 못할 인상적인 여행이었기에 이번엔 어머님을 모시고 왔다. 아버님도 모시고 싶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함께 하지 못했다. 어머님을 귀한 보물 대하듯 애지중지하는 아드님을 보면서 부러웠다. 나도 아들이 있는데.... 나도 아들과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욕심내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부러운 눈길이 자꾸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아드님이 찍어준 사진이다. 달님의 맵시가 어쩜 저리도 고울까? 꼭 대청마루에 모시 적삼을 입고 선 새색시가 하얀 버선 발을 위로 톡~ 차올린 모습 같다.


먼 이국 하늘 아래 넴룻산 달빛은 은은히 흐르고 
황혼빛 노을이 포근히 감싸 안아 시간도 멈추었네 
멀리서 들려오는 갈까마귀 울음소리 발길을 재촉하니
타박타박 한걸음씩 꼭잡은 두 손이 정겹기 그지없네


달빛과 노을 향기에 물들어 자연과 하나 된 우리 둘의 모습도 자연스럽다. 이럴 땐 인간도 자연의 일부같다. 다시 한번 작품 사진을 보내준 아드님께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 뱀발 : 넴룻산 근처에는 콤마게네 궁전이 있던 근처의 예니 케일(Yeni Kale) 요새와 콤마게네 주요 도시 중 하나였던 님파이오스(Nymphaios)의 아르사메이아(Arsameia) 유적이 있다. 둘 다 가볼 만한 곳이라고 한다. 카파도키아 열기구 탐험은 다음 편에.... 

참고 사이트 : 다음 백과, 위키백과 
참고 서적 : Commagene Nemrut(Akel Yayincilik)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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