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서울광장 이태원참사 1주기 추모미사 성명서 전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지난 3월  전주에서 '윤석열 정부 퇴진'을 촉구하는 미사를 시작으로 8월14일 서울시청 앞 숭례문대로에서 17번째 미사로 1차 시국기도회를 마쳤다.

2차 시국기도회는 지난 10월9일 부산에서, 10월16일 서울에서, 10월23일 전주 우전 성당에서 10월 30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21번째 기도회에는 신부 60여 명과 수녀 300여 명, 신자와 시민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주례는 송년홍 신부, 해설은 하춘수 신부, 강론은 안동교구 김영식 신부가 맡았다. 연대발언은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추모시는 김유철 시인이 <행복해야할 젊음이 사라졌다>를 낭독했다. 사제단 성명서도 나왔다. 사제단 성명서 전문이다. 

 

사람다움을 지켜주는 둑이 터졌으니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 2,18)

1. 생명보다 더 소중한 무엇이 있는가? 한 사람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우주이니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고 존귀하다. 성경은 사람을 두고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하느님의 사랑을 가진 존재라고 말한다. 젊은 목숨들이 참변을 당하고 저 세상으로 떠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일상에서 안팎으로 시달리고 억눌리던 청년들이 모처럼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여느 해처럼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 나갔다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2. 희생자들을 기리는 합동분향소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얼굴들이 없었다. 심지어 이름 석 자조차 밝히지 않아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명색 대통령이라는 자는 국화더미 그 앞에서 분향하도록 우리를 떠밀었다. 허무맹랑한 일탈로 종종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윤석열’이지만 영정과 위패가 없는 분향소라니 일찍이 그 누구도 상상해보지 못한 해괴망측한 일이었다. 별처럼 빛나던 일백오십구 명, 젊은이들이 지상에 아예 산 적이 없던 존재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당시 대통령의 조문은 가짜였다. “애도의 이름으로 애도를 막은” 그의 파렴치야말로 끔찍한 ‘2차 가해’였다.

3. 자식을 빼앗긴 유가족들의 가슴에 한이 쌓이고 있다. 합당한 애도의 기회를 빼앗긴 시민들도 여태껏 슬프고 답답하다. 억울하고 괴롭다. 세월호에서, 이태원에서 아니 우리는 매번 이 모양이어야 하는가? 국가권력이라는 것은 태생이 야만의 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말인가? 세월호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이태원 참사가 또 일어났다. 그러면 이것으로 끝일까?

4.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이들이 일백오십구 명이나 죽었는데 일 년이 되도록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없었다. 대통령은 지금도 그날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며 딴전을 부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무수히 반복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여름 토요일 아침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 <궁평2지하차도>에서 열네 분이 변을 당했다. 농민들이 허술한 임시 제방을 걱정했고, 홍수 통제소가 홍수 경보를 발령했으며, 사고 당시 신고가 빗발쳤으나 사시사철 세금과 공권력을 맘껏 부리는 자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진입금지’ 넉 자만 붙여 놨더라도 없었을 참사였다. 이태원 그날 저녁의 판박이였다. 천재가 아니라 인재人災, 구체적으로는 관재官災였다. 하지만 금년에도 대통령과 장관들은 모르쇠로 발뺌했다. 그리하여 지금 대한민국은 홍수로부터 마을을 지켜줄 둑이 터진 나라다.

5.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해 놓고 저 높은 자리에 올라 겨우 자신의 생명과 안전만 생각하는 자들에게 말한다. 먼저 가슴에 손을 얹으라. 멀고 깊은 바다도 아니고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젊은이들이 깔려 숨을 쉬지 못하던 그날 그 시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어디 한 번 말해 보라. 양심의 주인이신 하느님과 당신의 주인인 국민께 숨김없이 낱낱이 고하라. 엎드려 울고불고 용서를 청하라.

6. 이태원 10.29참사 유가족들이 오송참사 유가족들을 찾아와 위로하던 날이 있었다. 사람이야 잃었으나 사람다움마저 잃지 않으려는 피눈물 나는 행동이었다. 우리 모두 그들에게 배우자. 시인은 말한다. “우리의 분노는 쉽게 시들지 않아야 한다”고. “우리의 각오는 쉽게 불타 없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우리 삶이 달라져야 젊은이들의 죽음도 달라진다는 시인의 호소는 참으로 옳다. “우리가 더불어 함께 지금 여기와 다른 우리로 거듭나는 것 … 애도를 기도로, 분노를 창조적 실천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문재)이야말로 진정한 애도라고 하였으니, 너도나도 새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자.

7. 작년 오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희생자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였다. 경찰이 명단 공개를 범법으로, 언론과 정치계가 패륜으로 몰고 갔으나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딸들을 하느님 아버지께 손잡아 건네 드리고자 했을 따름이다. 이번만이라도 모든 시민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가눌 길 없는 슬픔 속에서 애통해 하는 부모와 형제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 주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대통령 윤석열과 여당 국민의힘에 당부한다. 어서 <10.29 참사 특별법>을 제정하라.

8. 사람의 사람다움, 곧 사랑은 모두의 천성이니 희망을 접지 말고 우리 서로 보살피자.

 

2023년 10월 30일
이태원 10.29 참사 1주기를 맞아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참고 사이트 : http://www.sajedan.org/sjd/bbs/board.php?bo_table=sjd07_01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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