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16일 정의구현사제단 서울시국기도회 이강서 신부 강론

강론하는 이강서 신부 
강론하는 이강서 신부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루카 11,29)

지금 이 나라에는 독재의 망령이 배회하고 죽음의 냄새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곳곳에 국민의 한숨과 탄식이 넘쳐납니다. 불과 6년 전 2017년 촛불항쟁으로 되찾은 정상 국가는 윤석열 정권 출범 1년 반 만에 나라 꼴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는 탄식입니다. 그리고 36년 전 1987년 6월 항쟁으로 끝장난 독재체제가 변종으로 다시 출현하여 나라의 민주주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는 한숨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악한 세대’라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악한 세대’는 회개하지 않고 입으로만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을 찾는 위선적인 백성들과 세대를 질타하는 예수님의 준엄한 경고입니다. 어쩌면 이 악한 세대는 오늘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 폭정과 독재가 준동하고 핵 오염수를 바다에 무단 방류하는 데 찬동하며, 힘없는 국민을 죽음의 벼랑에 내몰고 인류 공동의 우물인 바다의 죽음을 방조하는 우리를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 묵상하게 됩니다.

지금 이 나라에는 세 가지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했습니다.

우선, 민주주의에 깃든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국민 주권의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헌법정신이 죽어갑니다. 검찰의 독재와 윤 정권의 폭정은 헌법을 가벼이 여기고 자신들이 지켜야 할 주권자의 생명과 안전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작년 2022년 8월 폭우 때 신림동 반지하 세 모녀의 침수 사망에서 시작해서 10월 이태원 참사, 또다시 올해 7월 14명이나 숨진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살리려는 정부나 국가는 없었습니다. 더욱이 꽃다운 청년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의 경우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정부는 어떤 반성이나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상식과 정상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습니다. 사회 각 분야를 각종 이권 카르텔로 매도하여 건설노동자 양회동 형제를 죽음으로 내몰고, 교육 현장의 선생님들의 교권을 추락시켜 학부모 갑질의 희생양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검찰의 변종 독재와 정부의 폭정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죽음의 올가미에 걸어 놓았습니다.

두 번째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역사에 덮인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군사적 힘 대결로 한반도는 전쟁 위기가 조장되고 남북한 평화 공존의 희망이 절명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1972년 7.4 남북 공동선언을 시작으로 민족의 평화 통일 공존을 위한 장구한 남북 정상들의 노력은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면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지경입니다. 이제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과 적대적 태도는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하겠다는 발상 역시 국민의 넋을 놓게 만듭니다. 나아가 100여 년 전 반민족 친일 매국노들이 발호하던 그때와 똑같이 친일 매국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일제 강제동원 징용자에 대한 제3자 변제안부터 최근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이완용의 매국 두둔 발언, 대한민국 건국일 논란 등 윤 정부의 내각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아닐까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 나라의 역사와 민족 정도는 없어도 좋다는 인식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이 아닐까 여기게 합니다.

세 번째로, 해양 생태계 바다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전 세계가 위중한 기후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시대에 일본은 삼중수소를 포함한 죽음의 핵 오염수를 무단으로 바다에 투기함으로써 해양 생태계와 우리의 바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 우리를 둘러싼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곧 우리에게 닥칠 일입니다. 핵 오염수를 바다에 폐기 방류하려는 악행과 죄를 저지하기는커녕 찬동과 홍보를 자처하는 윤 정부는 이 나라뿐 아니라 주변국, 나아가 전 인류와 미래세대에게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짓고 있습니다.

이러한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사회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모든 힘과 지혜를 모아서 이 죽음의 장막, 그림자를 걷어내야만 하겠습니다. 여기에 사제, 수도자들이 교우들과 함께 광장에 모여 기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윤석열 개인과 특정 정당에 대한 반감 때문이 아닙니다. 사제들이 광장에 나선 까닭은 가톨릭 사회교리에 따라서 검찰 독재와 폭정으로 무너져 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군사적 대치와 전쟁 불사 태도로 꺼져가는 한반도의 평화, 돌이킬 수 없는 해양생태계의 치명적인 오염 앞에 하느님 창조 질서 보존을 위한 저항과 함께 이 나라의 민주주의, 아울러 민족의 평화 공존을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4년 우리는 최악의 전염병, 코로나 바이러스를 경험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바이러스, 검찰 독재라는 변종 괴물 바이러스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검찰 독재라는 바이러스의 숙주는 무엇일까 묵상해 봅니다. 무능한 정치구조, 부패한 검찰조직과 진실을 조작하는 언론집단이 떠오릅니다. 검찰과 언론을 개혁하고 자정하지 못한 방심과 부족한 정치 개혁 의지도 한몫했습니다. 더 나아가 극단적 이기주의 사회가 된 이 세대, 이윤과 이익이 최고 가치가 된 광신적인 물신 숭배 사회가 이 변종 괴물 바이러스의 강고한 숙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역시 우리가 악한 세대라고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년이면 동학혁명 1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130년 역사를 잠깐만 되돌아보아도 우리 민족이 겪은 시련과 역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1894년 구한말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백성은 동학의 이름으로 정의와 공정을 요구하다가 외세의 총칼에 도륙이 되었습니다. 매국노들이 은사금에 팔아먹은 나라를 되찾겠다고 1919년 3.1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 역시 대량 학살로 이어졌습니다. 슬프게도 자칭 민족 지도자라는 이들이 반민족 친일 부역을 해나간 일제 36년의 세월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한국 천주교 신앙의 선조들은 1791년 진산사건으로 촉발된 신해박해로부터 1871년 병인박해가 끝나는 180년에 걸친 국가와 정권의 모진 박해와 고난을 겪은 역사가 있습니다.

1945년 꿈같은 해방과 남북의 분단, 그리고 1950년부터 3년간 동족상잔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1960년 이승만 독재에 맞섰던 4.19 시민 혁명과 이어진 박정희 소장의 군사반란, 1980년 신군부에 맞선 광주 민주항쟁과 광주를 피로 물들인 전두환의 군사반란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렸던 1997년 외환 위기, 국정을 영업이익의 수단으로 여겼던 이명박 정권, 대통령을 대신해서 측근 최순실이 국정을 농락한 박근혜 정권 시절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130년의 간고한 시절을 이겨낸 민족의 후손입니다. 조선과 대한제국, 일본 제국주의와 전쟁, 군부독재를 관통해온 국민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는 지난 1987년 군부독재의 고리를 끊고 직선제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6월 항쟁의 함성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교체도 맛보았고, 2017년 촛불항쟁으로 초유의 대통령 탄핵까지 관철시킨 불굴의 민주시민입니다.

아울러 우리 천주교인 역시 180년 조선의 박해기간 최소 1만 여명의 신앙 증거자를 배출하면서도 소멸하지 않고 굳건히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신앙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민족의 정기에 힘입고 역사에 교훈에 용기를 얻어 순교 정신으로 검찰 독재, 윤석열 정권의 폭정과 불의에 저항하고 고발해야 하겠습니다. 헌법의 내용과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활동을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하는 호전적 언동과 불가역적인 해양 생태 오염에 뇌동하는 윤석열 정권에 저항하고 고발하는 일이야말로 참된 신앙인의 사회적 책무이자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성경의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촉구하고 경고합니다.

‘그 폭정과 검찰 독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십시오. 지금까지의 어리석고 야만적인 언행에 회개하십시오. 그래야만 당신이 살 것입니다.’(에제 18,28 참조)

저는 우리 신앙인이 윤석열 정권의 검찰 독재와 폭정이 종식되는 날까지 저항과 기도를 이어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습니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준엄한 심판의 말씀, ‘악한 세대’에서 벗어나 참된 예수님의 제자, 참 신앙인의 자세로 되돌아오는 길임을 고백합니다. 아멘.

* 이 글은 지난 10월16일 서울시국기도회에서 강론한 서울대교구 이강서 신부가 보내주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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