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년 전 화산 등 지각 활동으로 이루어진 지대
히타이트 제국의 통치를 받던 카파도키아에서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열기구 타기 도전하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카파도키아 지형
하늘에서 내려다 본 카파도키아 지형(괴레메 계곡 일명 러브 밸리 혹은 연인들의 계곡)

 

카파도키아 지형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 유명한 카파도키아에 왔다. 세상에 이런 모습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이 빚어내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자연이 초정밀하게 설계한 신비하고, 다양하고, 특이한 기암괴석으로 뒤덮인 땅 카파도키아!!!

카파도키아는 화산지대였다. 약 300만 년 전 에르지에스 화산과 하산 화산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먼저, 터져 나온 화산재가 두껍게 덮여 굳어갔다. 그 위로 마그마가 뿜어져 나와 용암이 흘렀다. 화산재는 압축되어 응회암이 되었고 용암은 굳어 현무암이 되었다. 수백 미터 높이 바위가 질이 다른 층을 갖게 된 것이다. 그 후 작은 규모의 화산 폭발과 지진을 겪으면서 지형은 지속해서 변해 갔다.

질이 다른 바위는 오랜 기간 풍화작용을 거쳤다. 바람에 스치면 스치는 대로, 서로 다르게 깎이고... 물살에 쓸리면 쓸리는 대로, 서로 다르게 파여... 온갖 기이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용암 온도 차로 흰색, 회색, 적색, 옅은 녹색, 갈색, 분홍색 등의 색을 가지게 된 응회암으로 인해, 기이한 모습에 신비한 색까지 입은 형형색색의 바위와 계곡이 카파도키아에 넘쳐나게 되었다.

응회암은 부드러워 풍화도 쉽고 파기도 쉽다. 카파도키아의 바위 속 동굴이나 지하 동굴은 주로 응회암을 파서 만든 것이다. 이 부드러움 때문에 오랜 기간이 지나면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지구인을 반겨주기도 할 것이고 혹은 사라지기도 하겠지....

판잘리크 킬리세 교회 옆 계곡
판잘리크 킬리세 교회 옆 계곡

카파도키아에선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아나톨리아 중부에 있는 카파도키아 역시 콤마게네 왕국처럼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가운데 있는 요지라 상인들이 교역을 위해 지나다니면서 도시가 세워졌다. 또한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숱하게 많은 전쟁터가 되어 여러 종족이 거쳐 가거나 거주한 지역이다. 카파도키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때는 기원전 5,000년 무렵 선사시대다. 이후 기원전 3,000년 무렵 아시리아 상인들이 식민지를 건설했다. 기원전 2,000년 초반 코카서스를 거쳐 들어온 히타이트족이 대거 이주하면서 히타이트 왕국을 건설했다. 이후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셀주크 튀르크, 오스만 제국 등이 이곳을 지배했다. 이곳이 유명하게 된 시점은 로마 시대 박해를 피해서 온 기독교인들이 암굴이나 동굴을 파고 살기 시작하면서다. 응회암 덕분에 이곳에는 유난히 암굴교회가 많다. 동로마 시대인 4세기부터 11세기까지 수도자와 기독교인들이 대거 옮겨와 살았기 때문이다.

녹색 영역이 히타이트 제국의 통치를 받던 최대 영역 / 녹색 라인 지역은 기원전 1350~1300경 히타이트 통치 영역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9/Map_Hittite_rule_en.svg.) 
녹색 영역이 히타이트 제국의 통치를 받던 최대 영역 / 녹색 라인 지역은 기원전 1350~1300경 히타이트 통치 영역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9/Map_Hittite_rule_en.svg.) 

히타이트 제국(기원전 18세기~기원전 8세기)

우리는 중동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하고 지나갔다. 하여 잠깐 아나톨리아 최초 제국인 히타이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히타이트가 철기시대(기원전 1200년경~586년경)를 열었다'만 알았다. 하지만 그 이전인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아나톨리아에 철기가 등장했고, 기원전 1200년경에는 철기가 중동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음이 최근에야 알려졌다. 학자들은 히타이트가 최초로 철제무기를 사용하여 전쟁에서 이겨 아나톨리아 제국이 되었다고 한다. 히타이트는 철기 제련법을 혼자만 갖고 있지 않고 여러 나라에 알려줬다. 유럽에는 기원전 1000년 전에 도입되었고, 한국은 기원전 2세기경에 제련법이 들어와 서기 1세기경이 되어서야 농민들이 철기구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철기는 청동기보다 용광로 온도가 높아야 한다. 용광로 온도를 조절하는 기술, 그것도 고대시대에 바람이라는 자연으로 산소를 공급하여 용광로 온도를 높이고 유지하는 기술을 개발한 히타이트가 대단해 보인다. 히타이트가 대단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의 함무라비 법전을 적용하는 대다수 메소포타미아 문명 국가들과는 달리 히타이트는 상당히 관대한 법률을 제정했다. 법률도 민법과 형법을 나누어 민사는 주로 벌금으로 해결했고, 형사는 고의냐 과실이냐를 먼저 따졌다. 여자의 권리도 어느 정도 인정하여 여성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었다. 중요한 국가의 결정 사항에서도 삼두체제(왕, 왕비, 귀족들의 집합체)를 적용했다. 하타이트는 왕국에서 제국이라 불릴 만큼 영토를 확장했는데 점령지의 종교와 언어도 허용했다. 이집트와의 전쟁에서는 승부를 내지 못하자 평화조약(카데시 조약)을 맺었다. 기원전 1270년 무렵 맺은 세계 최초 국제조약이다. 

괴레메에서 하투샤까지
괴레메에서 하투샤까지

카파도키아 여행의 중심지인 괴레메에서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였던 하투샤(Hattusas/ 현재 이름은 보아즈칼레)까지는  200km 되는 거리다. 400년 간 번영했던 하투샤에는 히타이트 성이 있었다. 동서 1km, 남북 2km 규모의 성곽 안에는 상당히 정돈된 도시가 있였다. 현재 왕궁터, 사원, 요새 등의 건축 형태가 잘 보존되고 있다. 이 유적은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괴레메 협곡을 내려다보는 열기구 투어 

튀르키예 여행을 간다고 할 때 아들이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열기구는 타지 말라는 거다. 목숨 담보로 구경할 게 뭐 있냐는 거다. 그러마~ 했다. 하지만 튀르키예를 다녀온 모든 사람이 열기구는 꼭 타보라고 했다. 나중에 아들이 용서해주겠지... 하고 아들을 배신했다. 1인당 320유로를 별도로 내고 열기구 투어를 신청했다. 우리 둘 비용이 거의 90만 원이 된다. 여행 가서 돈 따지면 안된다고 하지만... 1시간 구경에 비용이 좀 세다 싶다. 예전엔 열기구가 500대까지도 떠 1인당 2~30만원 했지만, 엉키는 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한 후 150대만 띄우게 되었고, 사고 이후 보험이 세게 적용되어 비용이 올랐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큰 동그리미가 괴레메 중심 지역이고, 작은 동그라미가 열기구 타는 기지다.  
큰 동그리미가 괴레메 중심 지역이고, 작은 동그라미가 열기구 타는 기지다.  

열기구는 새벽(4시~6시)에만 뜬다. 새벽에 땅이 차갑기 때문에 기류가 안정되어서다. 비가 와도 못 뜨고, 바람이 불어도 못 뜬다. 그날그날 튀르키예 관광청(?)의 허가가 나야 열기구를 띄울 수 있다. 관광청은 열기구를 띄우는 장소도 지정해준다. 운이 없는 경우 며칠씩 열기구가 못 뜨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운이 좋아 도착 다음날 아침에 바로 탈 수 있었다.

호텔에서 5시 출발... 도착해서 우리가 탈 열기구로 이동하니 새벽 6시경. 여기저기서 열기구는 기계 풀무질로 열과 바람을 받아 붕붕 소리를 내며 부풀대로 부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 몸무게를 눈짐작해서 8개 바구니에 3~4명씩 탄다. 바구니를 지정할 수도 없고 일행이라고 같은 열기구에 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행요원이 사람들을 쓱 훑어 보고 바구니를 지정해 주면 타라는 바구니에 얌전히 타야 한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다. 한 대 한 대씩 하늘을 향해 사이좋게 올라간다.

한 대씩 차례차례 올라간다. 
한 대씩 차례차례 올라간다. 

제법 올라왔다. 우리는 최대 500m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행동이 굼뜨고 기민하지 못한 우리는 늘 그렇듯 맨 꼴찌에 설렁설렁 섰는데... 운이 좋은 건지... 사진 찍기 가장 좋은 탁 트인 가장자리 바구니에 들어갔다. 가운데 바구니에 들어간 팀은 사진을 맘껏 찍는 우릴 부러워했다. 해돋이가 시작되었다. 

장미 계곡 너머에서 해가 솟는다.  

해가 다 솟았다. 이상하게도 열기구가 러브 밸리의 풍광을 해치지 않고 나름 잘 어울린다. 

러브 밸리에는 버섯 모양의 바위가 아주 많다. 이런 바위를 '요정의 굴뚝'이라고 부른다. 요정의 굴뚝은 카파도키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버섯 지붕 모양의 회색 바위는 현무암이고, 그 아래 담회색 버섯 몸통이 응회암이다. 이 계곡에서 청혼하면 받아들여진다 해서 혹은 바위가 남근 모양이라서 러브 밸리라고 이름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요정의 굴뚝 
요정의 굴뚝 
요정의 굴뚝 
요정의 굴뚝 

동영상도 찍었다. 조종사가 센스가 있어서 '대~한민국' 박자에 맞춰 풀무질을 한다.  

 

열기구가 아래로 내려와서 계곡을 가까이 찍어 보았다. 조종사 말로는 열기구가 계곡으로 내려가서 바위 사이를 가깝게 요리조리 이동할수록 조종기술 수준이 높은 거라고 한다.  자신이 그렇다며 자랑한다.

 

조종사가 파노라마 전경을 볼 수 있도록 열기구를 천천히 360도 회전하면서 운행한다.  동영상 찍기 편하다. 

 

하늘 위에서 보는 장미계곡 너머에서 해가 돋는 풍광은 장엄했다. 열기구가 러브 밸리 사이를 부드럽게 떠다니며 보여주는 풍경은 초현실적이었다. 여행 떠나기 전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수차례 보았지만, 기존에 접했던 모습은 다 사라졌다. 미지의 신비한 행성에 잠시 불시착한 감격이랄까? 신기한 제각각의 암석, 독특한 계곡과 구릉이 빚어내는 숨 막히는 전경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절경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들이 걱정했던 것과 달리 그리 무섭지도 위험하지도 않았다. 카메라에 갇혀있던 열기구들을 살포시 놓아주며 1시간이라는 시간이 짧아 아쉽기만 할 뿐.... 

열기구를 타고 내려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열기구가 내려갈 때 '랜딩 포지션'하고 조종사가 외치면 모두 가운데를 향해 쪼그리고 앉아 등을 바구니 뒤에 대고 밀면서 앞에 놓인 밧줄을 잡아당겨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걸 한국 사람들이 제일 잘한단다. 일사불란하게... 열심히... 어려서 좀 강압적 통치 아래 살던 사람들이라 지시에 일사불란한 단체 행동이 몸에 밴 걸까? 아니면 영리해서 잘 따라 하는 걸까? 여튼... 어디 가서 무얼 하든 잘하는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이라하니.. 기분은 좋다.

괴레메 마을의 암굴과 교회는 다음 편에...

참고 사이트 : 다음백과, 위키백과
참고 서적 : Cappadocia(저자 :Murat Gülyazz/ 출판사 :
Digital Dünyası)
참고 영상 : 
 [세계저널 그날] 중동본색 2강 - 바빌로니아와 히타이트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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