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15일 천주교사제단 23번째 시국기도회

전태일 열사처럼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길이 되어주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 하면 버려져 발에 밟힐 뿐이다.

행동하는 양심이 세상을 바꾸고 나라와 시민을 살린다.

욕망을 자극하는 속임수에 속지 말고 끊임없이 외치자.

"윤석열 탄핵하라". "윤석열 파면하라"

사진 출처 : www.youtube.com/watch?v=7uAXwdT1ipo
사진 출처 : www.youtube.com/watch?v=7uAXwdT1ipo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11월13일 의정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23번째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사제단은 지난 3월 전주에서 '윤석열 정부 퇴진'을 촉구하는 기도회를 시작으로 11월6일 수원 주교좌성당까지 22번째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23번째 시국기도회에는 신부 50여 명과 수녀 50여 명, 신자와 시민 600여 명이 참석했다. 강론은 김현배 신부, 성명서 낭독은 최재영 신부가 맡았다. 다음 주 월요일은 사제단 월례 회의로 시국기도회는 건너뛴다. 24번째 시국기도회는 11월27일 오후 7시 마산교구 사파동 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성명서를 낭독하는 최재영 신부 (사진 출처 : www.youtube.com/watch?v=7uAXwdT1ipo)
성명서를 낭독하는 최재영 신부 (사진 출처 : www.youtube.com/watch?v=7uAXwdT1ipo)

 

우리의 사랑, 우리의 혁명

1. 나라는 있으나 돌봄은 사라지고, 입마다 예의를 떠들지만, 극악과 무도가 판을 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를 이어 억울하고 원통하던 나날에, 필요한 것은 사랑과 혁명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흔하지 않고  압도적인 사랑, 예측 가능하지 않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확신했던 이들은, 200년 전 바로 이땅의  천주교인들이었습니다. 임금과 조정은 하늘의 씨를 가진 이들을 비웃고 탄압하며 반역으로 몰았습니다. 뼈를 부러뜨리고 살을 찢어 피를 쏟게 만들었습니다.

2. 천주교 신앙은 이 땅이 어둡고 춥고 헐벗고 배고플 때, 바로 그때 싹 트고 꽃 피웠습니다. 때리면 맞고, 부수면 치우고, 가져가면 빼앗겨 울음이 강을 이루고, 절규가 천둥 번개가 되어 주검이 산처럼 쌓여 갈 때, 신앙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소리 없이 길을 냈습니다. 무수히 도끼날이 찍혔지만 꺾이지 않았고 우람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3. 지금이 어떤 세상이기에 무지몽매한 폭력이 다시 일어서고 있을까요? 많은 이들이  탐욕과 혐오, 적대와 환멸의 구렁텅이에서 괴로워합니다. 희망도 바라볼 사람도 없으니, 불안과 무력감의 포로가 됩니다. 덧없는 위안을 찾지만 잠시뿐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이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해주실까요?.

절제를 모르는 힘 있는 자들의 광기와 이리저리 헤매고 떠돌아다니는 시대의 가벼움에 탄식이 나옵니다. '우리 시대는 믿음이 없어 촐랑댄다'라는 김종철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강산을 마구 파헤치고, 바다를 더럽히고, 사회적 참사가 일상이 되는 것은 '세상에는 초월적 존재가 현존하며 인간이 전부가 아니라'라는 믿음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4. 빈대 한 마리가 공들여 이룬 우리의 보금자리를 다 태우고 있습니다. '해볼 테면 해보라'라며 오만방자한 모습입니다. 세상과 인간은 원래 그런 것 아니냐는 그에게서 악의 신비가 드리워진 어둠이 보입니다. 나라가 이 지경에 되었을 때 가장 복음적인 행동은 어떤 것일까요? 이 땅에 천주의 뜻을 펼쳐 천주의 이름을 빛내며 천주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우리의 사랑과 혁명은 어떻게 드러나야 할까요?

5. 날 때부터 알기도 하고[生而知之], 배워서 알기도 한다지만[學而知之], 사람은 시련을 겪으며 더 많이 깨닫는 것 같습니다[困而知之]. 민주주의라는 느티나무를 키울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오늘의 시행착오를 덧없고 뜻 없는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최고의 불행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시간을 저마다 강해지고 맑아지는 단련과 정화의 시간으로 삼읍시다. 53년 전 오늘 19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암흑 속에서 횃불이 되신 전태일 열사의 소신공양을 기억하며 서로에게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길이 되어 줍시다. .

6. 천지 분간 못 하는 사람 ‘하나’를 쫓아낸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쉽게 살려고 하고, 편히 가지려고 하고, 자기만 바라보는 뿌리 깊은 이기적 관성을 끊어내지 못하면 더 악독한 코로나를 마주하는 불행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인간의 삶을 갉아먹는 야만적 자본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인간을 위하는 혁명, 사람을 위하는 사랑의 결단만이 우리에게 이 겨울을 견디고 새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2023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며
의정부 주교좌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천주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참고 동영상 : [의정부 주교좌성당] 오염된 바다,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우려하는 월요시국기도회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