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 지하도시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놀란 두 가지 중 하나는 자연이 빚어낸 바위 계곡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만든 지하도시다. 어떻게 85m, 지하 20층까지 바위를 파서 도시를 만들었을까? 언제 누가 굴을 팠을까? 어떻게 햇볕도 없는 이곳에서 살 수 있었을까? 물은 어떻게 조달했을까? 용변 처리는 어떻게 했을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세계 9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이 지하도시는 처음에 누가 만들어졌는지 확실치 않다. 기원전 4~5,000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부드러운 응회암을 파서 방을 만들어 살기 시작했고, 기원 전 2,000년 고대 히타이트인들이 방어와 피난을 위한 터널을 만들어 지하도시의 기초를 쌓았다고 학자들은 짐작할 뿐이다. 기독교를 금지했던 로마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면서 본격적으로 지하도시가 확장되었다. 기독교가 공인되자 수도나 포교 장소로 사용했다. 또한 서아시아 요충지 카파도키아에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지하도시는 주민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

데린쿠유에서 카이막르, 와즈코낙, 탓라린까지 
데린쿠유에서 카이막르, 와즈코낙, 탓라린까지 

작은 지하마을이 터널로 연결되어 커진 것을 지하도시라고 하는데, 카파도키아에는 현재 괴레메를 중심으로 데린쿠유, 카이막르, 와즈코낙, 탓라린 등에서 지하도시 36개가 발굴되었다. 학자들은 카파도키아 전 지역 대부분 집들이 지하 통로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아직 발굴되지 못한 지하도시나 마을들이 약 150~200여개 더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지하도시란 농사짓고 살다가 숨어야 할 필요가 생기면 가축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별장과 같은 임시 피난처였다.

지하도시 위층들은 상대적으로 거칠고 정돈되지 않았으나 아래층으로 갈수록 더 정성스럽고 정돈된 모습을 보인다. 수백 년간 전수된 갈고닦은 솜씨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발휘하지 않았나 싶다. 갤러리(낮고 넓은 통로)를 중심으로 미로 같은 터널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잘못 들어가면 찾아 나올 수 없다. 실제로 함정처럼 나오는 곳이 없는 터널도 있다고 한다. 각 층 사이 일정 공간에는 무게가 200~500kg 나가는 미닫이 돌문이 미로 길을 차단하기도 했다.

Derinkuyu Yeraltı Şehri(데린쿠유 지하도시)

우리가 방문한 지하도시 데린쿠유(‘깊은 우물’이라는 뜻)는 괴레메에서 약 35㎞ 떨어진 곳에 있다. 차로 40분 걸린다.  근처 지하도시 중 가장 유명한 곳으로, 약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 탄생 후 그리스와 튀르키예 간의 인구교환 정책에 따라 이곳에 살던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로 이주하면서 지하도시는 버려졌다. 1960년, 한 농부가 도망간 닭을 쫓다가 우연히 입구를 발견했다고도 하고, 1963년 지역 주민이 집수리하던 중 통로 입구를 재발견했다고도 한다.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1969년이다.

지하 도시  통로.
지하 도시  통로.
 지하 도시  통로.
 지하 도시  통로.

깊이는 85m이며 현재 지하 8층까지 발굴했으나 최대 17~18층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머리를 숙인 채 걸어가야 할 정도로 통로의 높이가 낮고, 옆으로 비스듬히 걸어가야 할 정도로 좁은 곳도 있다. 쪼그려 엉금엉금 기어가야 하는 곳도 있다. 4층까지만 일부 개방했다. 현재 지하도시의 10%만 관람이 가능하다. 

데린쿠유 지하 도시  갤러리 
데린쿠유 지하 도시  갤러리 

 

 아치형 천장이 있는 방, 학교로 추정
 아치형 천장이 있는 방, 학교로 추정

데린쿠유는 지하도시의 모든 특징을 다 갖고 있다. 지상과 가장 가까운 층에 가축우리가 있다. 짐승들을 더 아래로 데려가기 어려워서다. 부엌도 식재료를 실어 나르기 편한 지상과 가까운 곳에 두었다. 침실, 거실, 교회, 학교, 회랑, 창고, 포도주 제조실, 포도주 저장고, 공동 우물, 배수시설, 감옥, 시체 저장소(묘지?)까지 있다고 한다. 내부 곳곳엔 둥근 미닫이 돌문을 설치해 외부 침입을 막았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단면도. ① 입구, ② 막힌 입구, ③ 수로, ④ 통풍구, ⑤ 교회, ⑥ 돌문(출처 : 한겨레 신문)
데린쿠유 지하도시 단면도. ① 입구, ② 막힌 입구, ③ 수로, ④ 통풍구, ⑤ 교회, ⑥ 돌문(출처 : 한겨레 신문)

지면과 연결된 55m 수직 통풍 굴뚝은 환기 뿐 아니라 지하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했다. 통풍 굴뚝은 수만 명 주민들이 빵을 굽기 위해 불을 지펴도 연기가 분산되어 나갈 정도로 환풍 역할이 탁월했다. 이 굴뚝의 가장 아래는 지하수가 흘러 우물 역할도 했다. 그래서 이 지하도시 이름이 ‘깊은 우물’이다. 다른 몇 지하도시에 있는 화장실은 이곳에 없다. 어떻게 용변을 해결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곳은 일시적 주거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요강 비슷한 것을 각자 준비해서 처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오래 머물 때는 어떻게 했을까? 이 또한 정말 미스터리다. 

위에서 본 55m 수직 통풍 굴뚝(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Derinkuyu_underground_city) 

Kaymaklı Yeraltı Şehri(카이막르 지하도시)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북쪽으로 9km 떨어진 카이막르 지하도시와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카이막르 지하도시는 데린쿠유 규모의 반 정도다. 1964년 총 8층이지만 4층까지만 공개했다. 지역주민들은 아직도 마당으로 연결된 터널로 들어가 지하도시 적합한 곳을 골라 창고, 가축우리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괴레메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본  다층 구조(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Kaymakli_Underground_City#/media/File:Kaymakli_underground_city_9003_Nevit_Enhancer.jpg)
카이막르 지하도시 -위에서 내려다 본 다층 구조(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Kaymakli_Underground_City#/media/File:Kaymakli_underground_city_9003_Nevit_Enhancer.jpg)

Özkonak Yeraltı Şehri(와즈코낙 지하도시)

현재 발견된 지하도시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 와즈코낙 지하도시다. 4층으로 약 6만 명까지 수용했다고 한다. 위 두 지하도시와 다른 점은 층과 층간의 통신을 위해 좁고 긴 구멍(직경 5cm)이 여럿 있다는 것과 미닫이 돌문 뒤에 적에게 뜨거운 기름을 부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는 점이다. 방어를 넘어 공격까지 염두에 둔 지하도시가 아닐까 한다. 괴레메에서 차로 25분 거리에 있다.

미닫이 문으로 사용 된 둥근 돌(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3%96zkonak_Underground_City#/media/File:%C3%96zkonak_Underground_City.jpg)
미닫이 문으로 사용 된 둥근 돌(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3%96zkonak_Underground_City#/media/File:%C3%96zkonak_Underground_City.jpg)

 

Tatlarin Yeraltı Şehri(탓라린 지하도시)

1975년 발견된 탓라린 지하도시는, 1991년 개방되었고 현재 두 개 층만 관람할 수 있다. 여기 지하 방들은 널찍널찍한 홀이 많아서 학자들은 은둔 수도원이거나, 감옥 혹은 묘지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만약 감옥이었다면 여기에는 꼭 화장실이 있어야 한다. 맞다. 여기에 바로 사용하기에 아슬아슬한 화장실이 있다. 사진으로 보면 화장실이기보다는 용변저장소 같다. 그런데 분비물을 어떻게 처리했다는 기록은 찾지 못했다. 괴레메에서 차로 35분 거리에 있다.

탓라린 지하도시의 화장실(출처 https://turkishmuseums.com/museum/detail/2210-nevsehir-tatlarin-underground-city/2210/4)
탓라린 지하도시의 화장실(출처 https://turkishmuseums.com/museum/detail/2210-nevsehir-tatlarin-underground-city/2210/4)

인간의 절박한 생존 의지가 지혜로운 지하 유적지를 만들었다. 평균 온도 15도를 유지한다는 지하 도시는 인간 삶의 지나간 역사 같지만, 어쩌면 인간 삶의 새로운 역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우리도 지하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할 날이 올 수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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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Cappadocia>에는 명소로 나오지만, 우리가 가보지 못한 몇 곳도 소개하고 싶다. 

괴레메 야외박물관 (Göreme Open Air Museum)

괴레메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과거 기독교인들이 은신처로 사용하던 13개의 각기 다른 암굴 교회도 보고, 프레스코화도 감상할 수 있고, 계곡 사이를  걸어 다니다 동굴 안 식당에서 밥도 먹고, 다양한 암굴 카페에서 차 한 잔도 할 수 있다. 한나절 이상 지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괴레메 중심가에서 차로 5분 거리다. 워낙 유명해서 사람은 많겠지만... 이런 저런 암굴을 체험하기 딱 좋은 필수 코스가 아닐까 싶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C3%B6reme_Open_Air_Museum_-_2014.10_-_panoramio_%282%29.jpg)
괴레메 야외 박물관(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C3%B6reme_Open_Air_Museum_-_2014.10_-_panoramio_%282%29.jpg)
괴레메 야외 박물관(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C3%B6reme_Open_Air_Museum-20090910-DSCF0849.jpg)
괴레메 야외 박물관(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C3%B6reme_Open_Air_Museum-20090910-DSCF0849.jpg)

젤베 야외 박물관 (Zelve Open Air Museum)

동로마 시대의 거대 동굴 수도원이다. 카파도키아 최초의 신학교도 이곳 수도원에 있었다. 동로마 멸망 후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함께 살았지만 1952년 안전상의 문제로 모두 이주했다. 괴레메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젤베 야외 박물관(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Zelve_Open_Air_Museum_v3.jpg)
젤베 야외 박물관(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Zelve_Open_Air_Museum_v3.jpg)

우르굽의 세 미녀 바위(Three Beauties) 

우르굽의 가장 중요한 명소 중 하나가 '세 미녀'란 요정의 굴뚝이다. 여기엔 전설이 있다. 카파도키아의 한 공주는 목동과 사랑에 빠졌다. 왕은 이 결혼을 반대한다. 아버지를 설득할 수 없었던 공주는 목동과 도망가 소녀를 낳는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왕은 더 화가 나서 딸과 목동을 찾으라고 지시한다. 공주는 군인들에게 쫓긴다.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다는 것을 알곤 가족이 헤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한다. 기도가 이루어져 온 가족이 요정의 굴뚝으로 변한다. 이후 세 미녀 바위는 가족의 상징으로 여겨져 아이가 없는 가족은 요정 굴뚝 옆 비탈을 7번 오르내리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어느 전설과 닮은 것 같다. 괴레메에서 차로 15분 내 거리에 있다.  

세 미녀 바위(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3%9C%C3%A7_G%C3%BCzeller-%C3%9Crg%C3%BCp_%285%29.jpg)
세 미녀 바위(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3%9C%C3%A7_G%C3%BCzeller-%C3%9Crg%C3%BCp_%285%29.jpg)

세 미녀 바위는 뒤에 보이는 웅장한 에르지에스 화산과 더불어 해 질 녁에 더욱 아름다움을 뽐낸다고 한다. 

세 미녀 바위와 멀리 눈 덮힌 에르지에스 화산(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3%9C%C3%A7_G%C3%BCzeller_-_Cappadocia_-_Kapadokya.jpg)
세 미녀 바위와 멀리 눈 덮힌 에르지에스 화산(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3%9C%C3%A7_G%C3%BCzeller_-_Cappadocia_-_Kapadokya.jpg)

으할라라 계곡(Ihiera Valley) 

이 계곡 역시 에르지에스 화산의 여러 차례 분화로 이루어졌다. 현무암이 침식되어 16km 골짜기를 이루었다. 협곡을 따라 멜렌디즈 강이 흐른다. 물을 쉽게 구할 수 있고, 협곡 안 벌집 모양으로 뚫린 동굴에 교회와 집을 만들면 잘 눈에 띄지 않아 초기 가독교인들이 로마 군인들의 색출을 피해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사진에서 보면 산책 코스가 보인다. 우리나라 한탄강 주상절리도 저만큼 멋있다. 괴레메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걸린다.  

으할라라 계곡(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hiera_Valley_Turkey_-_panoramio.jpg)
으할라라 계곡(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hiera_Valley_Turkey_-_panoramio.jpg)

굴쉐히르(Gülşehir) Open Palace Museum과 버섯 바위

야외 궁전 박물관(Open Palace Museum)은 굴쉐히르 중심가에서 약 3km 떨어져 있다.  화산 지형에 만든 9개의 큰 뜰과 15개의 동굴 교회가 있다. 서기 1000년경  동로마 제국 때 만들어졌다.

야외 궁전 박물관(사진 출처 : 무료 사진 /https://www.flickr.com/photos/asipos49/4006829044/)
야외 궁전 박물관(사진 출처 : 무료 사진 /https://www.flickr.com/photos/asipos49/4006829044/)

작은 계곡이 근처에 있어 정착지로 적합했을 것이다. 이 유적지 계곡에서 긴 하이킹도 할 수 있다. 유적지에 있는 버섯 모양의 요정의 굴뚝이 아주 독특하다. 괴레메에서 차로 25분 걸린다. 

굴쉐히르(Gülşehir) 버섯 바위(출처 : Cappadocia(저자 :Murat Gülyazz/ 출판사 : Digital Dünyası))
굴쉐히르(Gülşehir) 버섯 바위(출처 : Cappadocia(저자 :Murat Gülyazz/ 출판사 : Digital Dünyası))

아래 지도에서 보면 위 5곳 중 으할라라 계곡을 제외하고는 괴레메에서 다 가깝게 있다. 

튀르키예 사우나의 추억

카파도키아에서 두 밤을 잤다. 호텔에서 튀르키예 사우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곳일까 궁금했지만, 첫날 밤은 피곤해서 그냥 잤다. 다음 날 아침, 사우나에 갔다 온 일행과 같이 식사하게 되어 사우나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이상하다는 거다. 거기 안내원이 옷을 모두 벗고 큰 수건만 걸치고 들어가라고 해서 그렇게 들어갔다는 거다. 남녀 혼용이라 수건이 흘러내릴까 걱정되어 수건을 꼭 잡고 널찍한 온돌 대리석에 앉아 사우나를  하고 왔는데 일행 외엔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오호~~~그럴 수도 있나? 의아한 생각에 저녁에 진짜 그런가 가봐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저녁에 갔다. 입구에 안내원 남자가 앉아 있는데 진짜로 옷을 벗고 큰 수건만 걸치고 가라는 거다. 수영복을 입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내 말을 못 알아듣는지 무조건 '노노' 했다. 그래서 물이 없는 빈 저수조(욕탕 같음)를 가리키며 수영하는 시늉을 하고 내 옷을 집어서 말하는데도 또 '노노' 했다. 무조건 '노노맨' 같았다. 알았다고 하고,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안에 입고 어깨끈을 감추고 수건을 두르고 나왔다. 샤워 후 먼저 튀르키예 사우나에 갔다. 은근히 뜨끈하고 널찍한 온돌 대리석에 앉으니 뭔가 좋았다. 아주 큰 돌침대 같았다. 남편도 안에 수영복을 입고 수건으로 감싸고 사우나를 하는데 우리 밖에 없었다. 대리석에 누워 짧은 잠까지 잤다. 

목청 큰 남자 몇이 들어왔다. 그들을 피해 다른 방인 짝퉁 핀란드식 사우나에 갔다. 한 가족이 여럿 와 있었는데, 다 수영복 차림이 아닌가? 아마도 안내원의 말은 지금 있는 옷만 다 벗으라는 거였나 보다.

자꾸 생각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이 나왔다. 옷을 모두 벗고 수건이 흘러내릴까 벌벌 떨면서 따뜻한 돌판 위에 얌전히 앉아만 있다 나온 일행이 생각나서 말이다. 지금도 글을 쓰다가 실실 웃음이 난다. 두고두고 웃을 거리를 주신 일행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 '튀르키예 사우나의 추억' 글은 등장하는 일행 대표께 허락을 구한 내용이다. 웃음도 주시고 허락도 주심에 또 감사를 드린다.

참고 사이트 : 다음백과, 위키백과
참고 서적 : Cappadocia(저자 :Murat Gülyazz/ 출판사 : Digital Dünyası)
참고 사이트 : https://turkishmuseums.com/museum/detail/2210-nevsehir-tatlarin-underground-city/2210/4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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