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약 1시간 내 걸리는 곳에 고대 도시 페르게(Perge), 아스펜도스(Aspendos), 시데(Side)가 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아스펜도스지만, 페르게와 시데도 슬쩍 구경만 해보자. 다음 여행을 위해서...    

안탈리아 동쪽 방향의 고대 도시 페르게, 아스펜도스, 시데
안탈리아 동쪽 방향의 고대 도시 페르게, 아스펜도스, 시데

페르게(Perge)

페르게는 초기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4000-3000년에 시작된 도시다. 히타이트, 리키아를 거쳐 그리스, 로마의 통치를 받았다. 서기 1세기~3세기 로마가 통치할 때 번성했다. 아고라, 별궁, 원형극장, 경기장, 교회, 공중목욕탕, Gate 그리고 지금은 기초와 파편만 남아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 등 유적이 많다. 가장 유명한 유적은 아고라의 돌기둥이다. 중심 거리를 따라 좌우로 거대한 기둥 544개가 쭉 늘어서 있다. 터키 고대 도시 중 가장 많은 돌기둥을 가진 광장이라고 한다. 

페르게의 돌기둥(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erge-08-Saeulenreihe-1996-gje.jpg)
페르게의 돌기둥(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erge-08-Saeulenreihe-1996-gje.jpg)

시데(Side)

시데는 초기에 그리스인들이 정착하고 기원전 7세기 무렵 신히타이트 때 건설되었다고 보고 있다. 시데의 바르바로스 거리는 옛날 이집트·그리스 도시국가 상인들이 소금, 면 등을 거래하던 아고라였다. 상업도 발달하고 해안 도시라 배들의 왕래도 잦았던 도시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 대부분은 그리스-로마 시대 유적이다. 아폴론 신전, 아테네 신전, 베스파시아누스의 문(Vespasian Gate), 원형극장, 성벽, 수로, 병원 등 아름다운 유적이 많다. 

시데의 일부 기둥만 남은 그리스 시대 유적 아폴론 신전 (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unrise_apollo_side.jpg)
시데의 일부 기둥만 남은 그리스 시대 유적 아폴론 신전 (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unrise_apollo_side.jpg)

가장 뛰어난 유물로는 아치문을 가진 거대한 원형극장을 꼽는다. 아스펜도스 원형극장보다 보전 상태가 못하지만, 15,000~20,000명을 수용할 정도로 규모는 더 컸다고 한다.  

시데의 고대 극장(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ide_TH_au.JPG )
시데의 고대 극장(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ide_TH_au.JPG )

아스펜도스(Aspendos)

아스펜도스는 안탈리아 동쪽으로 40㎞ 거리에 있다. 초기 철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서 기원전 6세기 무렵 페르시아인들이 이주해 와 형성한 도시라고 한다. 역시 로마 시대에 번성했다. 당시 시데와 함께 은화 제조권을 가진 중요한 도시였다. 

아스펜도스의 유적인  수로, 대성당, 원형극장, 다리까지 걸어서 2시간 걸린다.  

주로 그리스-로마 시대 유적이 남아 있다. 유명한 유적으로는 대성당, 수로, 원형극장, 경기장, 다리 등이 있다. 이 중 수로와 원형극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협약에 올라있는 유적이다. 우리는 원형극장만 방문했지만, 수로만은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아스펜도스의 수로(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spendos_Roman_aqueduct_6328_(4895307195).jpg)
아스펜도스의 수로(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spendos_Roman_aqueduct_6328_(4895307195).jpg)

서기 2세기, 로마 시대에 지어진 수로는 원형극장보다도 더 가치를 인정받는 유적이다. 이 수로에는 독특한 두 개의 돌로 된 55도 각도의 사이펀1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로마 시대 '가르교 수로'나 '세고비아 수로'에도 이 사이펀은 없다. 약 30m 높이의 수로에 있는 사이펀은 산에서 내려온 물이 산과 도시 사이 1.7km 계곡을 건널 수 있게 해준다. 이 점에서 학자들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아스펜도스(Aspendos) 원형극장
아스펜도스(Aspendos) 원형극장

아스펜도스(Aspendos) 원형극장

가이드가 말했다.

“로마 시대 지어진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에선 아직도 공연합니다. 조수미도 공연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음향 장치 없이도 그 목소리가 객석까지 울려 퍼집니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다. 이 원형극장에선 요즘도 해마다 몇 차례씩 공연과 음악회가 열린다. 이 극장이 현재까지 공연할 수 있는 이유는 잘 지어졌고 잘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통치 기간인  서기 160~180년, 이 지역 건축가 제논(Xenon)이 지었다. 

무대 위쪽 처마에서 떨어져 나간 부분이 보인다
무대 위쪽 처마에서 떨어져 나간 부분이 보인다

지진이 잦은 터키에서 이렇게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는 원형극장은 없다. 무대 위쪽의 처마 부분을 빼고는 구조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셀주크 튀르크 때는 대상의 숙소로 사용되었지만, 룸 셀주크 때 건축물을 복원하고 별궁으로 사용하면서 꾸준히 보수·관리를 해준 덕에 1,80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제 모습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극장에서 별궁으로 다소 파격적인 용도 변경이지만 덕분에 극장은 곳곳에 이슬람 문명의 흔적까지 보인다고 한다.  

아스펜도스(Aspendos) 원형극장 2층 무대. 무대의 문은 왜 아치 형이 아닐까? 
아스펜도스(Aspendos) 원형극장 2층 무대. 무대의 문은 왜 아치 형이 아닐까? 

 

무대 입구. 무대 문 위를 자세히 보면 쐐깃돌을 흉내 낸 사다리꼴 모양의 돌을 얹었음을 알 수 있다. 
무대 입구. 무대 문 위를 자세히 보면 쐐깃돌을 흉내 낸 사다리꼴 모양의 돌을 얹었음을 알 수 있다. 
무대의 아름다운 부조 
무대의 아름다운 부조 

남동쪽을 바라보며 언덕에 세워진 이 극장은 무대와 반원형 객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대는 2층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무대 건물은 폭이 24미터이다. 아래 사진 건물은 원형극장 외부에서 만난 무대 뒤편 건물이다. 룸 셀주크 때 이 건물을 별궁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외부 건물 

객석은 반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폭이 95미터이다. 객석은 하단과 상단으로 구분된다. 하단 석은 21열, 상단 석은 20열이다. 약 7,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스펜도스(Aspendos) 원형극장 관중석
아스펜도스(Aspendos) 원형극장 객석

아스펜도스 극장의 무대엔 특별한 음향 장치나 설비가 없다. 음향 설계가 매우 뛰어나서 마이크나 스피커 없이도 무대의 대화 소리가 객석 맨 뒤 좌석까지 들린다고 한다. 현대식 조명만 사용할 뿐이다. 도대체 어떤 음향 장치이기에 그런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하단은 석회암, 무대 아래는 역암, 무대장식은 대리석을 사용해 암석의 성질 차이로 소리의 파장 효과를 극대화했다고도 하고... 아래 사진과 같은 통풍구로 인해 음향이 증폭된다고도 한다.   

맨 위 회랑에 있는 통풍구. 
맨 위 회랑에 있는 통풍구. 

객석 맨 위에는 59개의 아치형 기둥이 정면을 향해 늘어서 있다. 음향 효과는 이 아치형 구조 덕이라고도 하는데... 이 부분도 잘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객석 맨 위 59개의 아치형 기둥
객석 맨 위 59개의 아치형 기둥
객석 맨 위 59개의 아치형 기둥
객석 맨 위 59개의 아치형 기둥

객석 맨 위 회랑도 아치형 구조다. 두 아치형 구조가 수직으로 만나면서 매우 튼튼해 보인다. 회랑은 아치형 기둥과 함께 그날 내가 뽑은 가장 아름다운 장소다.  

객석 위 회랑 
객석 위 회랑 

출입구도 아치형 구조다. 로마 시대 건축물답게 아치 구조물이 상당히 많다. 아디야만의 첸데레 다리도 지진에 끄떡없었는데... 이곳도  아치형 구조 덕에 끄떡없이 1,800년 이상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1930년대 어느 날 튀르키예 공화국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아스펜도스를 방문했다. 아름답고 웅장하면서도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극장에 반한 대통령은 공연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를 명령한다. 많은 역사학자와 건축가들 사이에서 훼손 논란을 일으킨 개조였다. 이후 극장에서는 '국제 발레 및 오페라 페스티벌'과 같은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렸다. 보통 늦봄과 초여름에 열리는 공연 표는 몇 달 전에 매진되고, 약 1만 5천 명의 관객이 방문하여 축제를 즐긴다. 하지만 이런 고대 건축물을 현대의 공연 공간으로 사용하는 데 우려를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높은 데시벨의 증폭된 현대 음악이 고대 건축물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경회루에서 매년 수차례 만찬을 여는 격이라는 생각에 고고학자들의 의견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힘없는 학자들의 의견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상당한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스펜도스(Aspendos) 원형극장의 전설 

아스펜도스의 한 통치자가 어느 날 건축경연대회를 열었다. 도시 번영에 가장 크게 이바지할 건축물을 짓는 자에게 통치자의 딸과 결혼할 수 있도록 하는 대회였다. 건축물 두 개가 결승에 올랐다. 첫 번째 건축물은 아스펜도스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였다. 통치자는 수로에 깜짝 놀라 다른 건축물을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건축물은 원형극장이었다. 통치자가 원형극장에 방문하여 극장의 가장 높은 곳에 섰을 때, 갑자기 맑은 목소리가 그의 귀에 속삭이듯 들려왔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건축가가 무대에서 말한 것이다. 음향 시설에 깊이 감동한 통치자는 바로 극장 건축가를 선택했다. 결혼식은 당연히 극장에서 열렸다고 한다. 

두 건축물의 건축 시기가 비슷은 하지만, 이 전설은 재미를 위해 지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다만 아스펜도스의 최고 건축물이 수로와 원형극장인 것만은 분명하고, 원형극장에는 신비로운 음향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이야기가 아닐지 싶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수로와 원형극장은 꼭 기억할 테니까.... ㅎㅎㅎ 이야기의 힘이다.

각주 1) 사이펀(siphon) :  용기의 액체를 위로 빨아올려 더 낮은 곳으로 내려보내기 위해 양쪽의 길이를 서로 다르게 구부려 놓은 관.

참고 사이트 : 다음 백과. 위키 백과 
참고 사이트 : 유네스코 세계유산 협약 The Theatre and Aqueducts of the Ancient City of Aspendos
참고 사이트 : https://ancienttheatrearchive.com/theatre/aspendus-theatremodern-belkiz-turkey/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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