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말고 재택치료’ 가능케 한 진천군 통합돌봄

편집자주_ 진천은 남부3군과 마찬가지로 공공의료원이 없는 대신, 민간 의료 자원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와 통합돌봄 기반을 구축했다. 남부3군과 지역 규모나 의료 인프라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지역도 아니다. 

지난해 12월 기준 진천의 노인 인구는 전체의 17% 수준이다. 같은 기간 옥천은 32%로 큰 차이를 보이는 듯 하지만, 2개의 읍을 제외한 면(초평·문백·백곡·이월)에서는 고령인구비율이 30~45%에 달한다. 

아울러 진천은 옥천(남부3군)과 같은 중진료권(청주권)으로 묶여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진천군의 인구 10만명당 전문의 수는 93.9명으로 옥천(105.8명)과 보은(103.5명)보다 낮고, 간호사 수 또한 115.1명으로 200명이 넘는 남부3군에 비해 적다. 전체 인구 수는 8만6천여명으로 옥천보다 3만여명이 많지만, 종합병원은 마찬가지로 1개소에 불과하다.

정부 방침에 따라 2026년부터는 통합돌봄이 국민이라면 보편적으로 누리는 서비스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이에 옥천군도 선제적으로 대응해 미리 공공의료와 돌봄을 확충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도내 선진 사례인 진천군의 통합돌봄 체계를 들여다본다. 

 

 

진천군 재택의료센터는 ‘진천의원’이 위·수탁 운영중이다. 진천의원 박재영 원장이 재택 진료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생거진천 재택의료센터)
진천군 재택의료센터는 ‘진천의원’이 위·수탁 운영중이다. 진천의원 박재영 원장이 재택 진료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생거진천 재택의료센터)


진천에서는 입원할 때부터 퇴원 후의 삶을 설계한다.

퇴원 후 내 집에서도 의사와 간호사의 진료는 물론, 재활 운동과 영양식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집에 낙상의 위험이 있으면 이를 수리해주고, 약국이나 의원까지 거동이 어려우면 이동 지원과 동행서비스도 제공된다. 요양 등급자가 아니어도 목욕, 식사, 청소 등 일상생활의 가사간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집 밖을 나가면 여가와 정서적 회복을 위한 농업 활동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진천군이 시행하는 ‘의료-돌봄 통합지원’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다. 장기요양등급 인정자뿐만 아니라 등급외자, 그 밖의 국가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을 지역사회가 끌어 안은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파도 굳이 살던 곳을 떠날 이유가 없다.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을 막기 위한 의료-돌봄 체계가 진천군에서 구축되고 있다. 


■ ‘우리집까지 의사가 온다고?’ 진천군, 민간종합병원·의원 손 잡고 방문의료 서비스 제공

“무엇보다 퇴원 환자를 가장 집중적으로 살핀다. 퇴원환자는 6개월만 관리를 잘하면 일상에 복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기간에 낙상 사고가 일어나는 등 관리가 되지 않으면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된다. 병원에서 퇴원한 환자가 다시 재입원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의료와 돌봄 역량을 투입하는 것이 진천군 ‘의료-돌봄 통합지원’의 골자다”(진천군 주민복지과 정덕희 과장)

진천군 유일한 종합병원인 중앙제일병원(대표 임정일)에서는 입원 신청 단계에서부터 환자에게 ‘우리동네 돌봄스테이션 사업’을 안내한다. 환자의 의료 욕구에 따라 개별 간호·진료·영양·재활 등 퇴원하고 난 뒤에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계획하기 위해서다. 병원에서 수립한 계획은 읍면으로 연계해 퇴원 후 집에서도 의료·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의료·돌봄 지원 필요성이 인정되면 의사 1명, 간호사 5명, 영양사 1명, 물리치료사 1명, 사회복지사 2명으로 구성된 ‘우리동네 돌봄스테이션’ 의료진이 환자의 집을 방문한다. 영양제 주사 투약이나 만성질환관리 등 진료와 처방뿐만 아니라 방문간호·영양·재활 서비스가 환자의 집 안에서 이루어진다. 1인당 서비스 제공 횟수는 총 9회(방문 5회, 전화 4회)로 6개월간 이루어진다. 

우리동네 돌봄스테이션 안은숙 팀장(간호사)은 “처음엔 방문진료·간호가 낯설게 느껴졌다. ‘환자들이 집에 계셔도 될까? 병원으로 보내드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있었다. 하지만 병원이랑은 또 다른 면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집에 머물면서 안정감을 느끼며 건강상태가 나아지는 모습을 본다. 또 환자가 편안한 곳에 있으면 건강 상태가 더 잘 보인다. 증상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집안 환경 등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천군의 방문의료 서비스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진천군은 교통약자 등 의료 서비스에서 소외된 주민의 의료 욕구와 접근성을 충족시키고자 군 예산 7천여만원을 투입해 방문형 재택의료센터도 설치했다. 센터 운영 및 수행기관은 진천 내 1차 민간 의료기관인 진천의원(대표 박재영)이다. 진천의원 소속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로 꾸려진 다학제팀이 환자의 집을 방문한다. 의사는 최소 월 1회, 간호사는 월 2회 이상을 방문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진료와 약 처방뿐만 아니라 △케어플랜 수립 △환자·보호자 정서지원 △맞춤형 정기건강관리 등의 서비스도 이루어진다. 

뇌출혈·고혈압·당뇨로 장기요양 1등급 판정을 받은 환자의 보호자 A씨는 “(거동이 어려운 와상환자) 어머니가 퇴원하시면서 비위관(콧줄) 교체가 가장 큰 문제였다. 보호자인 내가 할 수는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편하게 재택의료를 이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진천의원 박재영 의사는 “일주일에 10~15명 정도 환자의 집을 방문한다. 사전에 환자의 의료 욕구를 파악해 비위관(콧줄), 소변줄, 드레싱 등의 장비를 챙겨 나서기에 기본 진료에는 큰 문제가 없다”라며 “재택의료를 시행하기엔 도시가 수월하긴 하지만, 정작 필요한 곳은 농촌 지역이다. 이렇게 방문진료를 다니는데도 집에서 혼자 돌아가시는 분이 15%가 넘는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기준 재택의료센터 이용 대상자 수는 79명으로 이 중 28명이 장기요양 1~4등급 외 환자들이다. 장기요양 등급외자나 병원퇴원자들에게는 군이 자체 군비를 투입해 수가를 지원한다. 
 

진천군 ‘우리동네 돌봄스테이션’의 수행기관인 중앙제일병원 소속 간호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들. 
진천군 ‘우리동네 돌봄스테이션’의 수행기관인 중앙제일병원 소속 간호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들. 


■ ‘복지-보건’ 부서 칸막이 낮추고 ‘공공-민간’ 손 맞잡아 구축한 통합돌봄 지원체계… 의료 넘어 이동·주거·식사·가사간병·케어팜 등 통합지원… 장기요양 등급 외자 등 국가돌봄 사각지대 돌봄 집중

환자의 집을 방문한 의료진은 ‘의료’에 그치지 않는다. 환자의 건강 상태와 생활 환경을 조사해 일상의 돌봄이 가능하도록 필요한 지역 내 서비스를 연계한다. 

가령 이미 재가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 장기요양 등급 인정자를 제외한 △등급외자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중점대상자 △퇴원 환자 △그 밖의 돌봄사각지대 노인을 대상으로 ‘통합돌봄 가사간병 지원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다. 본인부담금은 10% 수준으로 유형에 따라 월 5만~13만원이 발생하고 나머지는 군에서 지원한다. 장기요양 등급 인정자에게만 이루어지는 국가 돌봄의 사각지대를 보완해, 고비용의 돌봄 부담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다. 

‘통합돌봄 이동지원 서비스’ 또한 퇴원 후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게끔 하는 데 초점을 둔 사업이다. 약국이나 병원 진료가 필요한 거동 불편 노인 180명에게 지역 내 이동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증리프트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택시 이용 부담금을 10% 수준으로 낮춰 관내는 2천원, 관외는 5천원의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통합돌봄 가사간병 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환자 중 거동이 어려운 노인에게는 군에서 수가를 지급해 요양보호사와의 이동 동행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퇴원 및 재가 환자의 집안 내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현관이나 거실, 부엌, 욕실을 수리하는 △맞춤형 주거환경 개선 지원, 환자 개별 특성을 고려한 △영양식 도시락 지원 서비스, 통합서비스가 제공되는 커뮤니티형 주택을 지원하는 △케어안심주택 지원 등의 사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입원 환자의 퇴원 후 통합지원계획 수립을 위해 병원 안에서는 1차 케어회의가 열린다. (사진제공: 진천군)
입원 환자의 퇴원 후 통합지원계획 수립을 위해 병원 안에서는 1차 케어회의가 열린다. (사진제공: 진천군)


■ 단 한 명의 환자 위해 행정 부서 간, 공공-민간 머리 맞대 주 3~5회 꼴로 통합지원회의 열어

진천군이 이 같은 의료-돌봄 체계를 마련한 것은 공공과 민간이 손을 잡고 행정 내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무는 작업 없이 불가능했다. 공공-민간, 특히 행정 안에서도 복지-보건 서비스가 분절적으로 이루어지던 체계를 환자를 중심으로 통합한 것이 주효했다. 대표적인 것이 통합지원회의(지역케어회의)와 읍면 맞춤형복지팀 내 배치된 ‘간호+복지’ 전담인력이다. 

진천에서는 지역사회가 돌볼 대상자를 가려내기 위한 통합지원회의가 주에 3~5회꼴로 열린다. 앞서 언급한 돌봄이 필요한 노인, 퇴원 환자 등의 건강 상태와 통합지원계획을 ‘공유’하고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다. 군과 읍면, 보건소·지소, 건강보험공단, 복지관, 민간병원 소속 담당자들이 참석한다. 

이 회의에 참석하는 각각의 기관들은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를 발굴하는 창구이자 1차 지원계획을 세우는 주체다. 계획이 최종 승인된 뒤에는 필요한 기타 서비스를 연계하는 다리 역할도 한다. 환자 한 명의 돌봄 계획을 하나의 복지 전담부서나 의료·보건 기관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지역 자원이 총동원돼 함께 연계·구축하는 것이다. 

진천군 주민복지과 통합돌봄팀 이재철 주무관은 “최대한 빨리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일주일 단위로 한 회의 당 2~3명의 대상자의 지원계획을 다룬다. 환자가 서비스를 신청하고 결과를 받기까지는 늦어도 일주일이 걸리지 않는다”라며 “환자가 서비스 변경이나 중지를 요청한다든지, 1차 회의에서 다룰 수 없는 고난도 사례가 있는 경우에는 한 달에 두 번씩 전문 의사가 주관하는 2차 대면 회의를 연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통합지원체계가 가능한 이유는 읍면마다 ‘복지+보건’ 인력으로 구성된 ‘통합지원창구’가, 보건소나 병원, 복지관 등에는 ‘통합안내창구’가 설치돼있기 때문이다. 통합안내창구에서 선별평가를 통해 의뢰된 대상자의 집을 2인 1조로 구성된 읍면 통합지원창구 담당자(복지+간호)들이 직접 방문해 심화평가를 실시한다. 지원 필요성이 인정되면 통합지원창구 안에서 의료와 돌봄 등 통합서비스가 포함된 통합지원계획안을 수립하는 구조다. 

(사진 왼쪽부터) 진천군 주민복지과 정덕희 과장, 통합돌봄팀 김영국 팀장, 통합돌봄팀 이재철 주무관. 
(사진 왼쪽부터) 진천군 주민복지과 정덕희 과장, 통합돌봄팀 김영국 팀장, 통합돌봄팀 이재철 주무관. 


아울러 진천군은 촘촘한 대상자 발굴을 위해 민간 의료 영역까지 손을 뻗쳤다. 방문의료를 수행하는 기관인 중앙제일병원과 진천의원 외에도 충북대병원과 청주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 청주나 대전 등 민간 의료기관에도 퇴원 환자의 연계의뢰 체계를 구축했다. 이들 병원에서 입원한 환자 중 진천에 거주하는 환자를 퇴원 시 군청으로 의뢰해 퇴원 이후 돌봄 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재철 주무관은 “복지와 보건의료를 어떻게 융합할 것인지가 늘 고민거리였다. 특히 노인에게 보건의료는 별개 서비스가 아니라 통합해 지원돼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업을 통해 보건소 간호직 공무원이 통합돌봄팀으로 오면서 어느 정도 융합을 이뤘다. 서비스 제공부터 모니터링까지 한 부서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 지역사회의 큰 변화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옥천신문  이훈·이현경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이 기사는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옮긴 이 : 김미경 편집위원

옥천신문  이훈·이현경 기자  minho@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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