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아(Antalya)

안탈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라 따뜻하고, 근처에 고대 유적지가 많다. 지중해를 낀 아름다운 해변에, 날씨도 온화하고, 볼거리도 많으니 튀르키예 최대 휴양도시가 되었다.  

안탈리아 해변(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alezlerden_Antalya_Konyaalt%C4%B1_Plaj%C4%B1na_do%C4%9Fru_bir_g%C3%B6r%C3%BCn%C3%BCm.jpg)
안탈리아 해변(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alezlerden_Antalya_Konyaalt%C4%B1_Plaj%C4%B1na_do%C4%9Fru_bir_g%C3%B6r%C3%BCn%C3%BCm.jpg)

안탈리아는 기원전 2세기 무렵 그리스 도시 국가 페르가몬 왕국의 항구로 출발했다. 로마 제국을 거쳐, 동로마 제국을 지나, 셀주크 튀르크 아래에서 번성하여 이 일대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가 되었다. 1391년부터 오스만 제국 지배 아래에 있었다.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 제국이 분할되면서 이탈리아가 잠시 점령했으나 1921년 7월 튀르크의 국민군이 되찾았다.

하드리아누스 문

안탈리아 역사지구(칼레이치-Kaleiçi)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이 하드리아누스 문이라고 한다. 서기 130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방문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 사이에 있는 이 문은 아치 통로 3개가 있다고 해서 '트리플 게이트'라고도 불린다. 

로마 개선문 : 왼쪽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 시절 (27 BC–14 AD) 개선문, 오른쪽  서기 312~315년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riumphal_arch)
로마 개선문 : 왼쪽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 시절 (27 BC–14 AD) 개선문, 오른쪽  서기 312~315년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riumphal_arch)

아치 통로 3개에  돌출된 기둥 4개로 구성된 문은 전형적인 로마 개선문 형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마의 개선문은 가운데 아치 통로가 크지만, 하드리아누스의 문은  아치 통로 3개가 똑같다. 또 하드리아누스 문은 엔타블레이처1(기둥이나 문에서 지붕까지 구조물)만 있지만, 로마의 개선문은 엔타블레이처 위에 다락방(Attic)이 있다.  

뱌깥쪽에서 본 하드리아누스의 문(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ntalya_-_Hadrian%27s_Gate.jpg)
뱌깥쪽에서 본 하드리아누스의 문(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ntalya_-_Hadrian%27s_Gate.jpg)

하드리아누스의 문 양쪽에 서 있는 두 개의 탑은 모습과 크기가 다르다. 처음부터 다르게 지어졌을 리는 없다. 로마 시대에 지어진 왼쪽의 탑은 파손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고, 오른쪽 탑은 가운데와 아랫 부분만 로마 시대 것이고 윗부분은 13세기 전반 셀주크 때 재건된 것으로 색상과 모양이 다르다.  

안쪽에서 본 하드리아누스의 문 
안쪽에서 본 하드리아누스의 문 

3개의 아치 통로는 너비 4.15m, 아치 상단까지는 높이 6.18m이다. 바닥에서 꼭대기까지는 높이가 약 8m다. 문의 안쪽과 바깥쪽에는 각각 돌출된 4개의 기둥이 있다. 이 기둥의 샤프트 (원통형 몸체) 부분만 유난히 매끄럽고 희다. 샤프트만 단단한 화강암을 사용했고, 샤프트를 제외하고 다른 구조물은 전부 부드러운 흰색 대리석을 사용했다. 

하드리아누스의 문의 기둥
하드리아누스의 문의 기둥

아치 통로의 둥근 반원형 천장은 케이슨(네모 박스 형 천장 붙임이)으로 장식되었다. 각 케이슨은 장미 같은 꽃을 주제로 조각했다. 아치 통로 천장에 케이슨으로 장식하는 건 로마 시대 어느 개선문이나 똑같다. 

아치 문 천장 문양 
아치 통로 천장 문양 

엔타블레이처의 높이는 1.28m다. 엔타블레이처의 가장 하단인 아키트레이브와 가운데 프리즈 영역은 꽃과 풀을 주제로 조각했다. 상단의 돌출된 처마(코니스) 장식은 사자 머리와 잘 알 수 없는 문양으로 조각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들이 아치 통로와 함께 잘 어울린다.  

아치 위 엔타블레이처 장식 
아치 통로 위 엔타블레이처 장식 
기둥 위 엔타블레이처 장식 
기둥 위 엔타블레이처 장식 

고대 요새 히디를릭 탑(Hıdırlık Tower)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보고  상점가를 지나 '카라알리올루 공원(Karaalioğlu Parkı)'으로 향했다. 히디를릭 탑은 카라알리올루 공원 초입에서 만난다.

하드리아누스의 문에서  카라알리올루 공원(Karaalioğlu Parkı)까지
하드리아누스의 문에서  카라알리올루 공원(Karaalioğlu Parkı)까지

2세기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지은 것으로 추정하므로, 안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물 중 하나다. 어떤 장식없이 황갈색 벽돌로 두툼하게 지은 이 탑은 하단은 정사각형이고 윗단은 원통형으로 높이는 14m다. 아래층에는 작은 방이 있고,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이어진다. 위층은 셀주크와 오스만 시대에 대대적으로 개조했다.

히디를릭 탑(Hidirlik Tower)과 해넘이  
히디를릭 탑(Hidirlik Tower)과 해넘이의 조화  

이 탑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안탈리아로 오는 배의 등대 역할과 안탈리아에 접근하는 배를 관찰하는 망루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첫 번째 주장이 유력하다.  두 번째는 탑 아래층 방 벽에 프레스코화 조각이 있어 영웅 같은 중요한 사람의 무덤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금, 이 탑은 어떤 쓰임새도 없지만, 저녁 무렵에는 달라진다. 지는 해와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하나가 되어 안탈리아 해변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바꾼다. 잠시 세월을 거슬러 고대와 만난 느낌이랄까? 

카라알리올루 공원(Karaalioğlu Parkı)

카라알리올루 공원은 ' 카라알리올루'란 후원자가 땅을 기부해서 만든 공원으로 안탈리아 해변을 끼고 지중해를 감상할 수 있는 아주 멋진 장소다. 특히 안탈리아 해변 넘어 펼쳐지는 해넘이가 장관이다.  

카라알리올루 공원(Karaalioğlu Parkı)에서 만난 해넘이
카라알리올루 공원(Karaalioğlu Parkı)에서 만난 해넘이

운 좋게 카라알리올루 공원에서 해넘이를 만났다. 안탈리아의 드넓은 창공과 푸른 바다, 멀리 겹겹이 보이는 섬들 사이로 강렬하게 떨어지는 해님은 잠시 모두의 시선을 빼앗고, 말문을 닫게 하여 감탄사도 잊게 만든다.

에르도안 총리와 맞짱 뜬 사나이 '메메트 악소이'

카라알리올루 공원에는 조각 작품이 여럿 있다. 그중 인상적인 작품 한 점을 소개한다. 튀르키예 조각가 메메트 악소이(Mehmet Aksoy) 작품 '노동자와 그의 아들'이다. 근육질 노동자의 강인함과 세상을 향한 도전적인 시선, 그 두터운 손으로 아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느껴지는 작품도 인상적이지만, 악소이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메메트 악소이 작품 '노동자와 그의 아들'
메메트 악소이 작품 '노동자와 그의 아들'

2009년 악소이는 튀르키예 카르스에 '인류의 여신상(Statue of Humanity)'을 건설 중이었다. 아르메니아-튀르키예 관계 회복을 위한 화해의 몸잣으로 당시 카르스 시장인 '나이프 알리베욜루(Naif Alibeyoğlu')가 제작을 의뢰했다. 이 조각상은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뻗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으로 완성된다면,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이웃 아르메니아에서 볼 수 있었다.

2009년 건설 중이었던 인류의 여신상(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ehmet_Aksoy_(sculptor)#/media/File:Monument_to_Humanity_by_Mehmet_Aksoy_in_Kars,_Turkey.jpg)
2009년 건설 중이었던 인류의 여신상(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ehmet_Aksoy_(sculptor)#/media/File:Monument_to_Humanity_by_Mehmet_Aksoy_in_Kars,_Turkey.jpg)

2011년 1월, 에르도안 총리가 카르스를 방문했다. 그는 이 조각상을 보고 '괴물'이라고 말했다. 카르스시 의회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단 몇 달 만에 동상 철거를 결정한다. 악소이는 '괴물' 발언이 작품에 대한 모욕이라며 에르도안을 고소했다. 2015년 3월, 법원은 에르도안에게 작품 모욕에 책임을 물어 10,000 리라 벌금을 부과했다. 에르도안 변호사는 모욕이 아닌 비판이라고 주장했고, 나중에 지방 법원은 그 판결을 뒤집었다. 하지만  2019년 7월, 헌법재판소는 작품 철거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으며 악소이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철거될 당시 미완성이었던 이 작품은 카르스의 옛 아르메니아 지역 인근에 세워졌다고 한다.

2011년 총선을 앞두고 민족주의 정서를 부추기는 에르도안의 발언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해도... 예술가 작품을 '괴물'이라고 표현한 국가지도자의 무례함에 한 번 놀라고, 독재자 비스름한 총리와 맞짱 뜬 악소이의 기상과 용기에 또 한 번 놀란다.

이블리 첨탑 모스크(Yivli Minaret Mosque)

노을을 뒤로 하고 서 있는 뾰족탑이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이블리 모스크의 첨탑 높이는 38m이며 꼭대기까지 계단 90개가 있다. 이 모스크는 1225년경 셀주크 시대에 지어졌다. 14세기에 파괴되었다가 1373년 오스만 때 재건되었다. 

이블리 미나렛 모스크(Yivli Minaret Mosque)
이블리 미나렛 모스크(Yivli Minaret Mosque)

현재는 안탈리아 지역고고학 박물관(Antalya Ethnographic Museum)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인근 지역에서 발굴된 히타이트, 그리스, 로마, 동로마, 튀르크, 오스만 등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1974년 일반에 공개되었다.

안탈리아 성벽

하드리아누스의 문에서 안탈리아 해변으로 가는 길은 예쁜 가게들이 즐비한 관광과 쇼핑의 거리다. 거기서 굉장히 놀라운 벽과 담장 여럿을 만났다.

성벽의 돌 흔적이 보이는 담장과 벽 
성벽의 돌 흔적이 보이는 담장과 벽 

사진에서 보는 상점의 벽과 담장은 모두 성벽의 돌을 이용하여 만든 것 같았다. 아래 사진은 무너진 탑을 엉성히 보수하여 그 안에 상점인지 이슬람 도자기를 홍보하는 전시관인지 모를 유리 진열대가 들어가 있다.

서울성곽길 혜화문에서 숙정문 방향으로 가다 보면 혜화문 바로 지난 일정 구간에서 성곽길이 끊어진다. 그러다가 드문드문... 성곽에서 나온 돌을 이용해 담장을 쌓거나 축대를 올려 지은 집들과 만나게 된다. 한마디로 성곽을 마구 뜯어내 맘대로 사용한 거다. 이미 사유 재산으로 저당 잡혀 복원할 수도 없을 만큼 망가져 있다. 보면서 속상했다. 허무는 건 쉬워도 다시 세우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보수가 필요한 탑속에 들어있는 유리 진열대. 이 진열대의 소유자는 과연 누구일까?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보수가 필요한 탑속에 들어있는 유리 진열대. 이 진열대의 소유자는 과연 누구일까?

안탈리아 성벽은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왕국 시절로 추정)에 처음 지어졌다. 로마 시대에 개조되어 성벽 사이사이 수많은 탑과 문이 세워졌다. 8세기~13세기까지 안탈리아는 여러 전쟁을 치르면서 성벽은 파괴와 보수를 반복했다. 1387년, 오스만 제국 통치가 시작된 후 성벽은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거쳤다. 이후 도시를 둘러싼 전투, 수많은 반란과 지진에도 불구하고 구시가지를 둘러싼 54개의 탑과 일부 성벽은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허물어지고 있지만 보수되지 못하고 있는 탑과 성벽 
허물어지고 있지만 보수되지 못하고 있는 탑과 성벽 

오스만 말기인 19세기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성벽은 계속 파괴되기만 하고 유지·보수가 되지 않았다. 도시개발을 방해한다고... 지역사람들에게 바다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긴 성벽과 탑은 고의로 뜯겨 나갔다. 성벽에서 나온 돌들은 구시가지 인근 집을 짓는 데 쓰였다. 그런 참담한 파괴가 끝난 후, 지금은 54개의 탑 중 7개만 남았고, 성벽도 일부만 남게 되었다. 철저히 무시당한 성벽의 슬픈 운명이다. 그 성벽과 탑이 고스란히 보존되었다면 안탈리아는 얼마나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도시가 되었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눈 앞의 경제와 개발'이라는 이름을 이기는 자 없는 세상이다. 

어쩌다 남아 있은 성벽과 탑이 아닐까 한다 
어쩌다 남아 있은 성벽과 탑이 아닐까 한다 

 

참고 사이트 : 다음 백과, 위키백과
참고 기사 : https://news.am/eng/news/51669.html

각주 1 엔타블레이처(entablature) : 고대 건축의 기둥 위에 구축되는 수평 부분으로 아키트레이브·프리즈·코니스의 3가지 중요 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아랫부분인 아키트레이브는 원래 지주와 지주 사이를 잇는 보의 형태이고, 중간 부분  프리즈는 장식이 있거나 혹은 장식이 없는 소벽으로 이루어진다. 엔타블레이처의 맨 위 코니스는 프리즈 위에서 돌출된 형태다(출처 : 다음 백과).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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