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성경을 통해 인간을 조롱하다.

녀석들은 전설이나 민담 혹은 시를 통해 인간 주변에 얼쩡거릴 뿐만 아니라 탈무드와 성경에서는 역사적 기록물로 버젓이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한다.

탈무드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본래 다윗왕은 거미와 모기, 그리고 정신병자를 매우 싫어하였다. 그러나 거미 덕에 자신이 동굴에 숨어 있는 것을 사울왕에게 들키지 않았고, 모기 덕에 칼을 다리사이에 끼고 자던 사울왕의 칼을 몰래 탈취했으며, 미치광이처럼 연기해 적의 군사들에게서 벗어났다고 한다. 우습게보거나 쓸모없다고 여기던 존재들을 통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 성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탈무드는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사울왕에게 쫓기던 구약 성경(사무엘상)의 내용을 보강하고 각색한 것이다. 성경에는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겨 엔게디 황무지에 있던 동굴에 숨었지만 사울왕에게 발각되지 않았던 이야기가 전해지고, 또한 한밤중에 십 황무지의 하길라산 길가에 진을 치고 잠을 자던 사울왕의 창을 몰래 탈취한 이야기만 기록하고 있을 뿐 거미와 모기의 역할에 대한 기록은 없다.

성경에는 사울왕의 창이 머리 곁에 꽂혀 있었고 다윗은 사울왕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탈무드에서는 모기가 사울왕의 다리를 무는 바람에 사울왕이 끼고 자던 칼을 빼낼 수 있었다고 전한다. 다윗이 사울왕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칼만 훔쳐옴으로써 관용을 베풀었음을 사울왕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탈무드에서는, 다윗이 가장 쓸모없는 생물로 여겼던 거미와 모기 덕분에 위기도 모면하고 일을 도모할 수 있었으니 아무리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소홀히 대하지 말라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사실 평소에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운명을 바꾸어 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에서 모기는 존재감이 미약한 생물의 대명사지만 다윗의 조력자로서 당당히 자기의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녀석들은 탈무드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구약 성경에 직접 등장한다. 성경에서 모기가 등장하는 인상적인 대목은 출애굽기에서다. 출애굽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인데, 이집트의 바로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놓아주지 않자 하늘에서 10가지 재앙을 내리게 되는데, 그 중 세 번째 재앙이 바로 모기떼이다.

- 여호와가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에게 지팡이를 뻗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모기(gnat : 각다귀, 모기)가 되리라" -

그들이 그대로 행할 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모기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더라 (출애굽기 8 : 16, 17) -

얼마 전 뉴스에서 어느 시골에 모기떼가 등장하여 살충제와 각종 약으로도 퇴치가 안 되는 실상을 보도하며 지역 주민들의 애로를 전하는 것을 보면, 구약시대에 온 땅에서 모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드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구약 성경에만 등장하는 게 섭섭했는지 녀석들은 신약 성경에도 등장한다. 마치 구세주인 예수가 등장하는 중요한 장면에서 자기들이 빠져서야 되겠냐는 듯이 말이다.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義와 仁과 信은 버렸도다.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가 모기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도다. (마태복음 23 : 23, 24) -

여기서 예수는 하기 싫은 외적인 의무를 억지로 수행하는 모습을 모기로 비유했고, 내면적인 마음이 간직해야 할 '의'와 '인'과 '신'을 낙타로 비유했다. 일상을 살다보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에는 긴장하고 신경을 쓰다가도 정작 중요한 일에는 소홀히 하는 일이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밭에서 나는 채소의 십일조까지 꼬박꼬박 챙겨서 바쳤지만, 정작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기 때문에 예수로부터 책망을 들은 것이다.

여기서 모기는 사소하고 무시해도 좋은 일로 비유되고 있다. 자신을 치장하여 남에게 좋게 보이기 위한 일에는 열심인 척 하면서,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망령되고 부끄러운 짓을 자행하는 모습이 인간의 진면목이기도 하다. 예수는 "너희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함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25)"라고 일갈한다. 위선적인 인간들을 호되게 꾸짖는 과정에서 모기는 그것보라는 듯이 등장하여 인간을 조롱한다.

탈무드에서는 사소한 것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비유로 모기가 등장했고, 신약 성경에서는 사소한 일에 매여 정작 소중한 일을 경시하지 말라는 비유로 모기를 등장시켜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이렇게 녀석들은 중의적인 교훈의 대명사로 등장하여 인간을 헷갈리게도 한다. 때려잡자니 시간과 정열이 아깝고, 가만히 두고 보자니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녀석에 대한 인간의 애증은 이처럼 때로는 전설과 민담을 통하여, 때로는 비유적인 시와 속담을 통하여, 때로는 탈무드와 성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인간에게 소리소문 없이 접근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쯤 되면 <적과의 동침> 정도가 아니라 <인류와의 역사적 동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계속>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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