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73일, 74일, 75일째

불가리아에 들어와서 ‘백만 송이 장미’라는 러시아 민요가 계속 머리에 떠올라 이번 글의 제목은 이렇게 뽑았다. 발칸의 붉은 장미 불가리아는 세계 최대 장미 산지이다. 최고의 장미오일 산지이기도 하다. 장미오일 1kg이 황금 1.5kg에 맞먹는 가격으로 거래가 된다고 하니 놀랍다. 전 세계적으로 향수와 에센스에 쓰이는 장미 80%가 불가리아에서 생산된다. 불가리아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만큼 신비로운 것도 많다. 신비의 장막을 걷으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 2017년 11월 13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Vakarel까지 달리면서

장미는 푸르른 6월 하늘 아래 붉은 꽃망울을 피워내며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이 바람에 날리는 향기마저 천상의 냄새이다. 곱고 부드러운 살결은 슬그머니 피부에 가져다 대고 싶기도 하다. 교태가 넘치는 것이 우아하기까지 해서 스스로 꽃 중에 여왕이 되었고 많은 예술가의 혼을 자극한다. 그런 면이 여자의 마음을 흔드는 최고 수완이 되는 것 같다. 장미로 인해 말주변 없는 남자도 마음을 표시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인류는 더 많은 사랑을 나누어왔고 그래서 자손도 더 번성했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장미의 선홍색은 19살 나이에 사랑에 뛰어들어 두근두근 뛰던 나의 심장 색과 같고 그 향기는 경춘선 완행열차를 타고 갈 때 스쳐오던 그녀 체취처럼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다. 겹겹이 싸인 많은 꽃잎 속에 삶과 사랑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고, 뾰족한 가시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처럼 아프다. 나는 지금도 달리는 순간순간 푸른 청춘의 6월 어느 날 장미꽃다발을 내밀던 떨리는 손길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장미오일 한 방울 만드는데 장미 잎 1000장이 필요하고 장미오일 1kg 추출하려면 3천 톤이 필요하듯이 한반도에 작은 평화를 추출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촛불의 촛농이 필요한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1만6천km를 달리는 나의 발자국 수만큼 필요하다면 참 좋겠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붉은 장미 백만 육천 송이를 더하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내가 달려갈 발자국을 선으로 이으면 유라시아 대륙에 목걸이를 건 형상이 된다. ‘평화의 진주목걸이’. 그렇다 그 길이 평화의 진주목걸이가 되어준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카잔구크에 ‘장미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이 계곡은 불가리아를 동서로 나누며 130km에 걸쳐 펼쳐져 있다. 해발 30~710m에 분포하며 북쪽은 1,600m 이상 높이의 발칸 산맥이 겨울에 남하하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고, 남쪽 산지에는 출구가 있어서 지중해의 온화한 공기가 계곡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따뜻하고 강우량이 적당하다고 한다. 장미는 차갑고 밝은 것을 좋아한다. 땅이 비옥하고 수분이 충분해야한다. 이곳 장미는 독특한 지리적 요인과 기후 조건으로 꽃잎이 얇다.

불가리아는 1270년 시리아 다마스쿠스 장미를 도입해서 알맞은 기후 덕분에 16세기에 좋은 장미수를 얻는데 성공했다. 1680년 이후부터 불가리아 장미는 대부분 장미오일을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다. 18세기 중엽부터 장미오일은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을 통하거나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오스트리아의 빈을 거쳐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 2017년 11월 13일 숙박한 불가리아 소피아 김수임씨 집

나는 이곳 불가리아에서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불가리아에 들어오기 전 세르비아에서부터였다. 장미보다도 더 붉은 통일의 열정을 가진 가족들이다. 이 통일가족을 총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는 가진이 할머니다. 가진이 할머니는 조부 때부터 독립운동을 한 독립군가족의 일원이다. 증조부는 만석지기였는데 대대로 종으로 있던 사람들에게 땅을 10마지기씩 나누어주며 자유를 주었다고 한다. 이 가족의 불가리아 집을 방문했을 때 마당 한쪽 벽에 걸려있는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무효’이라는 큰 구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역사가 진구렁으로 빠지기 시작한 해이다. 이 집을 살 때 토지대장에 1905년 지어진 집임을 확인하고 바로 샀다고 한다. 창문에는 ‘평화’라는 글자가 들어간 액자가 세워져있다.

▲ 2017년 11월 13일 숙박한 불가리아 소피아 김수임씨 집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장미를 평화의 마음을 담아 평양에 보내는 것은 어떨까, 소피아 분지를 달리는 내내 ‘백만 송이 장미’를 흥얼거리며 생각해본다.

“옛적에 한 화가가 살았네... 집과 캔버스를 가지고 있었네... 어느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녀는 꽃을 좋아했지. 그녈 위해 집을 팔고 그림과 모든 것을 팔았지. 그 돈으로 샀다네... 꽃의 바다를,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빨간 장미....”

모든 걸 다 팔지 않아도 무기를 살 돈의 극히 일부만 가지고도 수백만 수천만의 빨간 장미를 살 수 있다. 그 장미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전하면 어떨까,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 그런 생각해본다.

남북통일은 지나간 옛사랑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저녁 달빛 창가에서 목이 터져라 세레나데를 부르고 백만 송이 장미로 꽃의 바다를 만들어서라도 이루고야 말 운명적인 사랑이다. 남북통일은 오랜 기간 분단된 이질적인 것들을 한군데 버무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담대한 도전이요, 이 시대 최고의 과제이기도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화합하고 때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덮어가면서 따뜻한 민주주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 운명적인 사랑을 위하여 휴전선 철조망을 걷어내고 수백만 수천만 빨간 장미로 장식하며 평화를 구애해보는 것을 어떨까!

▲ 2017년 11월 13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Vakarel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7년 11월 13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Vakarel까지 달리면서...

▲ 2017년 11월 13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Vakarel까지 달리면서,,, 우측 하단이 비토산 산. 일년 중 몇 달만 빼고 저렇게 정상에는 눈이 쌓여있다고 한다
▲ 2017년 11월 13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Vakarel까지 달리면서... 식당도 먹을 만한 공간도 없어서 차에서 점심을 해결해야했다.버스가 고생이 많다.
▲ 2017년 11월 14일 불가리아 Vakarel까지 Belovo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7년 11월 14일 불가리아 Vakarel까지 Belovo까지 달리면서

 

▲ 2017년 11월 14일 불가리아 Vakarel까지 Belovo까지 달리면서

 

▲ 2017년 11월 14일 불가리아 Vakarel까지 Belovo까지 달리면서 만난 집들
▲ 2017년 11월 14일 불가리아 Vakarel까지 Belovo까지 달리면서. 좌측이 소피아 공주 상. 레닌 동상이 있던 자리에 소피아 공주 상을 세웠다고 한다. / 우측 하단이 마리자 강 상류 계곡의 오래된 다리
▲ 2017뇬 11월 13.14일 만난 사람들

게오르기(죠지)씨 동영상 : 집 앞을 지나는 강마라토너를 봤는데 고속도로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며 반가워하며 차를 세우고 인사하러 왔다(김나라님 글).

불가리아를 여행하고 있는 분의 간편 인터뷰 "오다가 한국분들이 마라톤 달리는 걸 보게 됐어요. 한반도 평화통일을 하루라도 앞당기게 하고 싶은 간절한 염원에서 달리는 거라고 하시는군요. 남.북한은 하나인데 강대국이 맘대로 갈라 놓았어요. 꼭 통일하시기를 또 끝까지 무사히 완주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11월 14일 불가리아 Belovo까지 온 길(누적 최소거리 약 2832.45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및 동영상 : 강명구, 불가리아 교민 김나라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박효삼 편집위원

#강명구선수유라시아평화마라톤 75일째(2017년11월14일)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