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2. 63일째

내 마음은 지금 헬륨을 채운 풍선처럼 높은 가을 하늘을 두둥실 떠오른다. 고단한 여정 속에서도 감격을 먹은 육신은 중력을 잃고 높이 떠오른다. 내가 세르비아 사람들과 사랑에 빠져 세르비아 들판을 달리고 있는데 김수임씨 어머니를 포함하여 아이들까지 가족 8명이 왔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6시간을 운전해서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또뽈라까지 찾아온 것이다.

▲ 김수임 가족이 싸온 저녁 만찬

위로받은 절망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갈채 받은 고단한 육신은 다시 생기를 얻을 수 있다. 길거리에서 매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 악수하고 사진 찍고 인사를 나누지만 사람이 그리웠다. 한국 사람이 그리웠다. 오늘 점심은 통돼지 바비큐를 먹었다. 매일 배불리 먹고 다니지만 하얀 쌀밥에 고추장찌개가 그리웠다. 마침 묵는 호텔은 주방시설이 갖추어진 호텔이었고 금방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 올랐다. 고추장찌개, 배춧속, 소고기 장조림, 고추, 오이지 등 한상 잘 차려졌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감격을 먹었고 깊은 책임감을 먹었다.

사실 불가리아를 지나면서 한인을 만나지 못하고 지나칠 줄 알았는데 며칠 전 김수임씨한테 연락이 왔다. 불가리아 통과할 때 국경까지 마중 나와서 불가리아 통과하는 내내 차량지원을 해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심 불가리아가 산악지형이 많아서 무거운 손수레를 밀며 산을 오르내릴 생각에 걱정이 많았는데 너무 잘됐다 싶었다. 그런데 맘이 급해서 그 때까지 못 기다리고 오늘 나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다는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동력은 바로 이야기에 있다. 나의 달리기에 있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를 빨리 만나서 듣고 싶은 것이다. 내가 장동건처럼 멋지고 잘나서가 아니다. 이야기는 가공할 힘을 발휘한다. 나는 마라톤에 이야기를 장착하려고 테마가 있는 달리기를 한다. 이야기에는 혼이 담겨있다. 안데르센 이야기나 디즈니랜드 영화가 전 세계 어린이들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지금은 우리 이야기인 한류 드라마나 영화가 전 세계인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이야기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달리기가 신선한 식재료라면 이야기는 식재료를 맛있게 조리하여 영양뿐 아니라 맛의 감동까지 잡는 것이다. 나는 전국을, 전 세계를 무대로 달리는 행위예술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불꽃같이 피어나는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평화를 이야기하고 통일을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통하면 핵무기가 파괴할 열 곱절, 백 곱절의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평화를 위협하는 강고한 마음을 움직이는 나의 천일야화는 두 다리를 붓 삼아 쓰일 것이고 나의 심장이 확성기가 되어 세상을 향해 이야기할 것이다. 정보와 기술로 가득한 디지털 시대에 이야기가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로 자신을 표현하는 소통 방식은 더욱 더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천천히 그리고 경쾌하게 달는 말발굽소리에서 왈츠의 경쾌한 음이 연상되듯이 나의 달리는 발자국소리에 가슴을 울리는 진한 평화 메시지를 담아보겠다.

달리면서 보이는 세상을 안데르센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을 바라보는 아이의 순진한 눈으로 보고 아이의 천진한 입으로 묘사를 할 것이다.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이나 학자나 종교인이 아닌 한 사람, 서구인이 아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한 아시아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적어볼 것이다. 동서양을 끊임없이 오고간 실크로드를 역사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혹은 소수자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고 추종하는 맹신적인 세상을 김삿갓처럼 맘껏 조롱하며 다닐 것이다.

▲ 김수임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고 또뽈라에서 달리기 시작

우리는 아침 7시 반에 호텔에서 힘차고 신나게 출발하였다 여러 사람이 함께 출발하니 너무 신이 난 나는 그만 코스를 점검하지 않고 어제 진행 방향으로 그대로 나아갔다. 약 2km 쯤 간 뒤에야 그래도 다시 확인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보니 아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 길을 할 수 없이 다시 돌아가야 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 차도 있고 동반자들도 있다. 한혈마와 함께 차를 타고 출발한 호텔까지 가서 다시 출발하였다.

빈 수레를 밀며, 멀리서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과 어깨를 맞추고 마음을 모아 뛰는 발걸음은 한결 경쾌하다. 나의 한혈마도 오랜만에 짐을 내려놓고 달리니 하루에 천리를 달릴 듯이 가볍게 달린다. 마침 오랜만에 날씨도 화창해서 가을하늘은 드높고 풀을 뜯는 양떼들은 살이 복스럽게 올랐다.

▲ 2017년 11월 2일 세르비아 Topola에서 크라구예바츠까지 달리면서 만난 양떼
▲ 점심은 닭 백숙으로

옆에서 달리는 가진이의 발갛게 달아오른 볼이 푸른 가을하늘과 멋진 대비를 이룬다. 오늘 가진이는 거의 30km나 콧노래를 부르며 달리는 슈퍼어린이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럿이 함께 달리니 사람들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특이 어린아이들이 함께 뛰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손을 흔들어주고 차들은 경적을 올려주고 악수를 청하고 음료수를 주는 사람들이 많다. 맥주를 마시다 손을 흔들어 한잔하고 가라는 사람들도 있고, 어느 공장 작업장에서는 쉬는 시간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우리를 세운다. 다가가서 서로 해맑은 미소를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니 누가 한 사람 들어가더니 음료수와 세르비아 술 라키야를 집에서 담근 것이라며 가져와서는 러브샷을 하자고 한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사람들 가슴은 뜨겁게 뛴다.

▲ 공장 작업장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 아홉 명 세르비아 일고여덟 명, 순식간에 거리에서 ‘한·세르비아 콜라, 라키야 우호축제’가 벌어졌다. 사실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왔다. 이렇게 두 다리도 달려서 갈 수도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 자동차, 기차, 비행기가 잘 발달돼 있는 시대에도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았다. 마음까지 너무 멀리 떨어져서 서로 상관없는 사람들인 줄 알고 신경 안 쓰고 살아왔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여기가 밤일 때 그곳은 낮인 곳, 여기가 낮일 때 거기는 밤인 곳을 ‘낙원’이라고 부르며 꿈꾸며 상상하며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그런 꿈을 사라지고 무관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하교하는 학생들과 함께

조금 더 가니 아이들이 하교를 하고 버스정거장에서 차를 기다리다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어느 개구쟁이 녀석이 오라고 소리를 지르며 손을 마구 흔든다. 순식간에 30여 명의 아이들이 우리 주위를 둘러쌌다. 우리는 일일이 아이들 손을 잡고 악수하고 준비해간 유라시아대륙횡단 평화마라톤 영자 홍보물을 나누어주었다. 너도나도 달라고 야단법석이다.

목적지인 크라구예바츠까지 왔을 때 오후 3시가 되지 않았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멀리서 찾아와서 위로해주고 알뜰살뜰 살펴주며 하루를 같이해준 가족들이 너무 고마워 꼭 껴안아주었다. 며칠 후면 다시 만날 것이지만 헤어지는 마음이 섭섭하다. 가슴에 온갖 치유의 해법이 다 있다. 심장이 터질 때까지 서로의 가슴을 비벼보자! 다가갈수록 증폭되는 뜨거운 울림!

▲ 2017년 11월 2일 세르비아 Topola에서 크라구예바츠까지 달리면서

 

▲ 2017년11월 1일, 2일 세르비아 Knez Petro에서 Topola거쳐 크라구예바츠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7년 11월 1일 세르비아 Knez Petro에서 Topola까지 달리면서 만난 사람들

 

▲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1월 2일 세르비아 크라구예바츠까지 달린 길(누적 최소거리 약 2396.45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및 동영상 : 강명구, 불가리아 교민 김나라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선수유라시아평화마라톤 63째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