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은 호이안에 갔다. 호텔에서 호이안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알선하고 있어 편하게 갔다. 왕복 교통비는 1인당 3500원 정도.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호이안이 있다. 호이안은 15세기부터 중국, 일본, 인도, 포르투갈, 프랑스 등 많은 상인들이 머물며 교역하던 국제 무역항이다. 특히 중국, 일본에서 온 상인들이 정착하면서 다양한 목조가옥과 여러 문화가 혼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19세기 무역항이 다낭으로 이전하면서 호이안은 활기를 잃었다. 하지만 200년 넘는 올드타운을 고스란히 보존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덕에 상인들로 넘쳐났던 거리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호이안에 간 날, 하필이면 비가 왔다. 비가 오면 행동반경이 좁아진다. 12시 넘어 도착해서 올드타운 만을 걷다 쉬다 시클로도 타보고 야경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 비오는 호이안 올드타운

호이안 올드타운의 박물관이나 전통 가옥, 회관 등에 들어가려면 통합입장권을 구입해야한다. 예전에는 이를 구입해야만 올드타운도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올드타운 구경은 그냥 공짜다. 통합입장권은 꽤 쓸모가 있다. 18곳 중 5곳을 구경할 수 있는 티켓을 주는데 우리는 내원교, 호이안 박물관, 당쏭 전통공연장, 푸젠회관, 쩐사당을 방문했다.

내원교는 호이안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1593년 건설했다. 다리 오른쪽엔 중국인이 살고 왼쪽엔 일본인이 살았다고 한다. 다리 중간에 작은 사원이 있다. 그런 사원을 만나면 무조건 기도한다. 기도는 늘 두 가지. 한국군 만행을 용서해달라는 것과 베트남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게 해달라는 것.

▲ 내원교 출구

호이안에는 싸후인 문화 박물관, 도자기 박물관, 민속 박물관, 호이안 박물관이 있다. 사람들이 가장 추천하는 곳은 도자기 박물관이다. 호이안 주변에서 발굴된 도자기와 13세~17세기 세계를 오가던 고급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호이안 박물관을 택했다. 호이안 역사와 문화도 전시하고 호이안 인근 독립투쟁 자료도 전시한다고 해서 꼭 가보고 싶었다. 한국군 학살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궁금했다.

<한겨레 21> 기사에 따르면 1967년 12월 한국청룡부대는 꽝남성 호이안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1968년 1월부터 민간인들을 학살한다. 호이안시 인근에서만 껌안 학살(1월30일·11명 사망, 퐁니·퐁넛 학살(2월12일·74명 사망), 하미 학살(2월22일·135명 사망), 하꽝 학살(2월29일·36명 사망)을 벌였다. 위 지역은 모두 호이안에서 5~10km 안에 닿을 거리에 있다.

호이안 박물관은 아직 정리, 정돈이 덜 된 듯 어수선했다. 3층에 독립투쟁에 대한 자료가 있었다. 미군에 대한 사진, 군복 등 전쟁관련 물건들은 많이 전시되어 있았지만 한국군에 대한 것은 사진 한 장과 한국군이 와서 호이안 인근에서 전투를 치렀다는 설명만 있었다. 왜 그럴까? 한국군 학살 진상규명에 대하여 호이안시 차원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걸까? 호이안을 방문하는 어마어마한 한국 사람들에 대한 배려일까?

▲ 비오는 올드타운 대신 박물관에서 본 발랄한 올드타운

사실 호이안을 방문하는 한국관광객들은 한국군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대부분 알지 못한다. 알고 있는 사람도 애써 외면하곤 한다. 국가에서 공론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겨레 21> 김선식 기자와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가 지난 1월 25일 ‘1968년 꽝남 대학살을 추모하는 꽝남순례길 1코스’를 위한 스포리펀딩을 시작했다. (스토리펀딩 주소 : https://storyfunding.kakao.com/episode/34359)

호이안 박물관 옥상에 호이안 전체를 볼 수 있는 야외카페가 있다고 해서 갔으나 비가 와서 그런지 카페는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비가 와도 올드타운의 조망은 여전히 아름답다.

▲ 호이안 박물관 옥상에서 본 올드타운

세 번 째로 방문한 곳은 전통공연장이다. 공연장은 200년 된 고가 안에 있다. 고 가 내에서 수공예품 전시판매도 하고 직접 만드는 체험도 한다. 무대에서는 매일 2회 공연이 펼쳐진다. 춤과 악기 연주 등 베트남의 전통문화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꼭 추천하고 싶다.

▲ 전통공연
▲ 전통공연장으로 사용하는 고가와 수공예품

그 다음 방문한 곳은 푸젠회관이다. 해상무역을 하던 중국상인들은 호이안에 정착하면서 향우회관을 지었다. 모두 모여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고 조상의 공덕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호이안에는 5개의 향우회관이 있다. 푸젠회관은 중국 푸젠성 이주 중국인들이 지은 것으로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하다. 어딜 가던지 화교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중국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본당에는 항해를 관장하는 바다의 여신 ‘티엔허우’가 모셔져 있다.

▲ 바다의 여신 ‘티엔허우’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고가(古家)의 하나인 ‘쩐사당’이다. 대부분 고가는 상점으로 바뀌었지만 일부 고가는 잘 보전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쩐사당(陣祠堂)은 중국관료였던 진씨 가문의 목조가옥으로 역시 200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호이안 고가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라 해서 방문했다. 중국 관료였던 집이라서 그런지 중국 분위기가 많이 났다.

쩐사당은 가운데 정원을 두고 두 부분으로 나뉜다. 대문 입구 편 건물은 제를 지내는 사당, 반대편 건물은 후손들이 사는 생활공간이다. 특이한 점은 아이들이 어려서 죽으면 외로울까봐 정원에 함께 묻어주었다고 한다. 집 한가운데 무덤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서...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건가 하는 의문도 든다.

쩐사당을 설명하는 안주인은 한국 제주도와 남이섬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친근감을 표했다. 참 미안하게도 어딜 가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반가워한다. 다낭 오행산에 갈 때 만났던 택시기사도 한국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했다. 신이 나서 드라마 이름을 줄줄 꿰는데 우린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문화가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큰 것 같다.  

어둠이 깔리면 올드타운은 더욱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바로 야경을 보기 위해서다. 비 때문에 춥고 후질근했던 낮의 거리가 밤에는 이렇게 화려한 세상으로 바뀐다. 밤배를 타고 투본강을 유람하면서 풍등도 띄우고 싶었는데... 약속된 셔틀버스 시간 때문에 포기했다.

▲ 호이안의 낮과 밤
▲ 투본강의 야경
▲ 투본강을 낀 올드타운 야경

호이안에 방문한다면 한 가지는 꼭 쇼핑하고 오라고 말하고 싶다. 위즐커피다. 올드타운을 돌아다니다 고소한 커피 향에 저절로 발길이 멈춘다면 바로 이 가게다. 'An Phu' 커피를 파는 Heirloom coffee. 올드타운에 적어도 2곳 있다. 들어가면 1등급, 2,3등급 커피 향을 맡아보라고 권하는데 그 향을 맡으면 1등급을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이외에 우리가 들어갔던 호이안 커피숍에서 파는 호이안 원두도 가격대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호이안 음식은? 화이트 로즈와 베트남식 완탕이 유명하다. 화이트 로즈는 쌀로 만든 피에 다진 새우를 넣어 만든 만두로 생선소스에 찍어 먹는다. 생선 소스가 싫은 사람은 그냥 먹어도 된다. 하얀 피 속의 붉은 새우가 어우러져 하얀 장미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완탕은 밀가루를 얇게 튀긴 후 다진 고기와 야채를 얹은 것이다. 화이트 로즈가 더 깔끔한 맛이다. 완탕은 얹은 소스가 좀 달다. 

▲ 화이트 로즈와 베트남식 완탕

욕심을 내서 호이안에서 1박 하는 것도 좋다. 호이안 구경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른 하루는 2세기~10세기에 존재했던 참파 왕국의 종교성지인 미썬 유적지에 가보는 것이다. 미썬 유적지는 호이안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린다. 호이안 호텔에 문의하면 반나절 일정의 투어가 많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 중 미군폭격으로 대부분 유적지가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그런데 사과는? 한국군 학살 장소과 가까운 호이안에서 누구라도 붙잡고 사과하고 싶었는데 마음만 있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호이안 박물관에 방명록 같은 것이 있었으면 얼굴 안보고 사과할 수 있었을 텐데... 택시 운전수나 가게주인에게라도 하려고 했었는데 입이 잘 안 떨어졌다.

2017년 12월 27일인 넷째 날은 다낭을 떠나는 날이다. 호텔에서 연결해준 자가용 택시를 타고 다낭공항으로 향했다. 택시기사가 제법 영어를 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앞좌석에 앉았다. 재래시장을 지나면서 기사는 묻지 않았는데도 이런저런 모습을 설명해주었다. 나의 콩글리쉬를 잘 알아들어 가볍게 이야기도 나눴다. ‘기사에게 꼭 사과하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다 내려주고 운전석으로 가려는 그를 불러 세웠다.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이 와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여자도 어린이도 죽였다. 너무 너무 미안하다.”

사람은 눈으로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는 약간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곧 감정이 없었던 그의 눈에 감정이 실렸다. 촉촉하고 부드러워진 눈으로 역시 촉촉해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Sorry’라고 한 번 더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을 내밀었고 그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렇게 괜한 뭉클함과 첫 사과를 받아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하노이를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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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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