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여행하는 국가는 베트남이라고 한다. 나도 그 시류에 따라 베트남을 가보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다른 여행과 달리 떠나기 전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다.

'베트남 사람에게 적어도 3번 사과할 것!!!'

베트남 전쟁은 1955년 시작되었다. 미국은 1964년 통킹만 사건(조작으로 밝혀짐)을 빌미로 50만 대군을 이끌고 전면전을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미국 요청(혹은 미군철수 우려에 따른 자발적 파병)에 따라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약 32만 명을 파병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원이다. 이 전쟁은 엄청난 파괴와 인명 손실을 남기고 1975년 남베트남이 항복하면서 20년 만에 막을 내렸다. 처음으로 미국이 완패했다.

베트남 전쟁에선 군인뿐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도 많이 죽었다. 생존자 증언과 문헌 등에 따르면 한국군도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을 자행했다. 50년 전인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중부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청룡부대는 민간인 74명을 학살했다. 이어 1968년 2월 22일 같은 청룡부대는 하미마을에서 135명을 학살했고 가매장했다. 1969년 10월 14일 베트남 남부 판랑 지역 린선사 스님 학살 사건도 저질렀다. 이를 포함해 한국군은 총 80여개 마을 약 9,000명 민간인을 학살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1999년 5월 <한겨레21> 고경태 기자의 취재기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고기자는 2000년 5월, 30년 만에 기밀 해제된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관련 문서와 사진을 입수하여 후속 보도도 했다.

관련기사 : 응우옌티탄의 진실을 찾아서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2535.html)

젊어서 리영희 선생님의 <전화시대의 논리>를 탐독했던 나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 책임을 알고 있었지만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더 부끄러운 것은 한국 정부와 군의 무대응이다. 1992년 수교를 하고, 1999년 최초 보도가 나온 이후 우리 정부는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입 다문 것과 뭐가 다르랴...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2004년 베트남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호찌민 묘소에서 “우리 국민이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도 다낭을 방문해서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모두 공식적인 사과는 아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베트남을 방문하면 나라도 사과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 여정의 첫 장소는 1968년 학살이 자행된 퐁니·퐁넛 마을에서 25km 떨어져 있는 다낭이다.

첫날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12km 떨어진 오행산(五行山)에 갔다. 오행산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5개의 산인데 대리석이 많아 마블 마운틴이라 부른다.

예전에 월출산을 향해 가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평지를 가다가 갑자기 산이 떡 하니 나타나서 그랬다. 오행산도 그렇다. 평지에 5개 산(水山, 火山, 木山, 金山, 土山)이 오뚝 우뚝 서 있다. 다행히 날이 좋아 5개의 산을 다 볼 수 있었으나 막상 우리가 돌아다녔던 水山은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다. 水山 아래 마을에는 대리석으로 온갖 석상과 묘비를 제작하는 가게들이 많다.

▲ 부처님도 있고, 성모님도 있고, 우리나라 해태와 같이 예전 왕국의 수호동물 조각상도 있다.

오행산의 가장 높은 주산은 水山(투이썬)이다. 투이썬에는 불교사원과 동굴이 4개 있다. 우리가 간 동굴 3곳은 모두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린응사원과 3곳의 동굴에서 본 부처님은 온화한 여자부처님이다. 그렇게 편안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베트남은 모계사회, 대가족 중심의 가족문화 전통이 있다. 그래서 부처님도 여자 모습이라고 하는데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다.

가장 큰 동굴이 후옌콩 동굴이다. 동굴 내부에 사원을 만들었기 때문에 입구에 사천왕상도 있다. 한쪽 벽면에는 석불이 조용히 앉아 계신다.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신비한 기운을 느꼈다. 베트남의 평화와 한국군의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한참 그 앞에 앉아 있었다. 천장에 구멍이 두개나 있다. 마치 천당을 상징하는 것 같지만 베트남전 때 미군 폭격을 맞아 생긴 구멍이다. 투이썬 꼭대기에 서면 다낭 일대를 다 내려다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베트콩의 거점이 되어 미군 폭격도 잦았다고 한다.   

마블 마운틴을 보고 다낭 시내로 향했다. 처음 간 곳은 다낭 성당, 그 날은 12월 24일. 8시에 성탄전야 미사가 마당에서 열린다고 했다. 베트남 미사는 어떨까 궁금해서 ‘종교 문화 체험’ 운운하며 미사참여를 제안했지만 일행 모두 반대. 다낭 성당은 1923년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았던 시절 다낭에 건설한 유일한 성당이다. 은은한 분홍색 사암으로 지어 부드러운 느낌이다. 성당 겉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 다낭성당과 성탄을 맞이하여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

그런데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을 발견했다. 베트남 화장실은 항상 아래와 같이 청소용(혹은 수동 비데용?) 수도호스가 달려있다. 그래 그런지 어디를 가도 화장실이 깨끗한 편이다. 화장지는 없는 곳이 많아 준비해서 가지고 다녀야 한다. 화장지가 있는 화장실을 보면 거의 다 왼쪽에 화장지가 있다. 우리는 거의 오른쪽인데... 왼손잡이가 많아서 그럴까? 그렇진 않을 거다. 오른손의 청결을 강조하는 문화가 있지 않을까? 아니면 수도호스가 대부분 오른쪽 아래에 있기 때문에 화장지가 젖을까봐 왼쪽에 두었나? 그런 생각도 해본다. 별 거 아닌 것이 다 궁금하다.

▲ 다낭 성당 화장실

다낭에서 가장 큰 시장인 '한 시장'도 찾아보았다. 정말 꼬리꼬리한 냄새가 났다. 속이 다 울렁거렸다. 시장 한 쪽에서는 음식도 팔았다. 그런 음식도 먹어보는 것이 여행의 맛이라지만...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2층은 옷가게가 즐비했는데 한쪽 줄에는 우리나라 60-80년대처럼 아오자이를 직접 만들어 팔았다. 맞춤도 해주는 것 같았다. 구경하는 우리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입어보라는 것 같았다. 몸매가 길쭉하고 가늘가늘한 딸에게 시도해보라고 했지만... 질색을 하고 나가잔다. 냄새 때문에...

▲ '한 시장'

저녁을 먹고 다낭 시내를 걸었다. 어마어마한 오토바이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토요일이라 더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다낭을 동서로 가르는 ‘한 강’을 연결하는 쏭한교가 보인다.

▲ 쏭한교와 신호 대기 중인 어마무시한 오토바이 행렬. 베트남은 오토바이 천국이다. 한 운전수에 의하면 인구 천만이라면 오토바이는 오백만 이상이 가졌을 거라고...

택시 기사가 토, 일요일 8시에 '한 강'을 연결하는 또 다른 다리인 롱교(용다리)에서 불을 뿜는 퍼포먼스를 한다고 해서 길거리 카페(주로 코코넛과 관련된 음료수 판매)에 앉아 불이 뿜기를 기다렸다. 8시 경이 되니 비가 많이 왔다. 아무리 기다려도 불은 커녕 물도 뿜지 않았다.

▲ 호객 행위에 바쁜 종업원을 둔 길거리 카페와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어린이와 함께 오토바이에서 내린 젊은 부부가 차를 마시러 길거리 카페로 들어오고 있다.

기다리다 ‘비 때문에 쉬는가 보다’ 하고 8시 40분 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9시에 불을 뿜었다는 것. 택시기사가 eight과 nine도 헷갈린 걸까? 그때 길거리 카페 주인에게 한번만 물어봤어도 불 뿜는 용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여행 가면 무조건 물어봐야 한다. 두 번 체크는 필수다. 세 번이면 안심이다.

▲ 한강을 앞에 둔 다낭 야경

 

▲ 용 다리 / 왼쪽 용머리에서 용의 몸통이 길게 다리 끝까지 이어져 있다.

그나저나 다낭 첫째 날에 아무에게도 사과하지 못했다. 아직 다낭에서만 3일이 남아 있으니까 세 번이야 어떻게든 하겠지...

참고 기사 : 파월 한국군의 학살 진상은?/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19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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