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둘째 날은 ‘후에’에 갔다.

▲ 베트남은 바가지만 안 쓰면 택시 값이 싸다. 개별관광으로 갈 경우 택시를 이용하면 후에성을 보고 티엔무사원에 갔다가 뜨득활제릉, 카이딘황제릉, 민망황제릉을 구경할 수도 있겠다. 점심은 굶고.ㅎㅎㅎ

 

‘후에’는 베트남 마지막 봉건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다. 응우옌 왕조는 1802년~1945년까지 베트남을 통일하여 다스렸다. 응우옌 왕조는 1858년부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속하면서 83년간 프랑스 지배를 받았다. 일본이 인도차이나에 진격한 1941년에서 2년 간 일본과 프랑스의 공동 지배를 받기도 했다. 왕조 탄생 56년 이후부터 외세의 침략으로 실권 없이 명맥만 유지하다가 1945년 남북에 두 베트남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후에’에서 우리가 구경한 곳은 '티엔무 사원'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카이딘 황제릉'과 '후에성'이다. 

1. 티엔무 사원(天姥寺)

1601년 지어졌다. 응우옌 왕조를 예언하는 건국설화(?)가 깃든 사원으로, 신비한 여자 노인(天姥)이 나타나 ‘군주가 나타나 사원을 건설할 것이고 그 군주는 번영을 가져온다.’고 해서 지었다고 한다. 이후 200년 지나 응우옌 왕조가 세워졌다. 응우옌 왕실사원으로 관리되던 곳이다.

중국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힘을 가진 마고(麻姑)할미나, 제주도의 설문대할망 등 비슷한 이야기들이 건국설화로 세계를 떠돈다. 제주도나 베트남은 여성이 가정에서 경제를 잡고 있는 모계사회다. 두 지역 다 여성이 주로 일을 하고 남자들은 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회라고 한다. 그래서 건국설화 주인공도 여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사원 입구에서 뒤를 돌아보면 흐엉강이 보인다.

흐엉 강변에 위치한 사원은 한마디로 고풍스럽다.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꾸민 것 없이 화려하지 않아 좋다. 관광객들이 많지만 관광객을 위한 특별한 것도 없다.

▲ 대웅전과 사리탑

사리탑 양쪽에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가 보인다. 베트남은 겨울이라지만 우리 날씨로는 초가을 날씨인데... 그것도 춥다고 나뭇잎이 다 떨어졌다. 각 생태환경에 따라 각각의 유전자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살던 곳에 내버려두고 살자' 주의자인데 요새 추위를 겪어보니 그것도 쉽지 않겠다 싶다. 

▲ 오른쪽이 7층 복연보탑(福緣寶塔), 왼쪽은 이런저런 사원의 고풍스러운 모습

이 사원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재로 보이는 8각 7층 탑이다. 130년 전 지은 것으로 베트남에서 가장 큰 탑이라 한다. 층마다 감실을 만들어 석상을 안치했다. 겉모습만 봐서는 관리가 잘 되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인간 뇌같이 보이는 나무뿌리와 대나무가 색달라서 찍었다. 나무에게 있어서 뿌리가 뇌의 역할을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아바타에서 본 것처럼.. .대나무 마디도 우리가 늘 보던 것과 상당히 다르다.

 

2. 카이딘 황제릉

응우옌 왕조 열세 명 황제 중 무덤이 있는 왕은 일곱 황제뿐이다. 다른 왕들은 프랑스 식민지에 반대해 왕위에서 내려오거나 망명길에 올라 무덤을 건설할 수 없었다. 베트남은 왕 생전에 자신의 무덤을 짓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다른 황제릉은 주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카이딘 황제는 재위시절 프랑스에 상당히 친화적이어서 그랬는지 자신의 무덤을 유럽풍 냄새가 물씬 나게 지었다. 그는 무덤을 짓기 시작하고 5년 후 세상을 떠났고, 죽은 지 6년 지나서야 완성이 되어 들어갈 수 있었다.

▲ 왼쪽 상단이 카이딘 황제릉의 문 · 무관 석상, 하단이 황제의 위업비가 있는 팔각형 사당, 오른쪽이 위업비 좌우로 있는 탑

카이딘 황제릉은 평지에 조성된 다른 황제릉과 달리 산속에 있어서 층계를 80계단 이상 올라가야 한다. 나무가 아닌 유럽 고딕풍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 날이라 그런지 콘크리트가 습기를 머금어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모습이다.

▲ 천정궁

겉모습은 그렇지만 황제 시신을 안치한 천정궁(天定宮)으로 들어가면 그 화려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전체가 도자기와 유리로 모자이크 장식을 했다. 그 한가운데는 금으로 장식한 카이딘 황제상이 있다. 황제상 아래 시신을 묻은 관이 있다고 한다.

▲ 천정궁 내부

 

3. 후에성

성문 앞에 1807년 초대 자롱황제가 건축한 거대한 3단 깃발탑이 보인다.

▲ 깃발탑(황제를 의미하는 노란 깃발을 달았었으나 현재는 붉은 색의 베트남기를 게양했다

143년간 응우옌 왕조의 궁이었던 이곳은 4개 문을 가진 사각형 땅에 자리를 잡았다.

▲ 오문위에 이층 누각을 올렸다. 가운데 문은 황제만이 드나들었던 문이다)

우리나라처럼 남쪽 문을 정문으로 삼았다. 정오에 해가 오르는 문이라 하여 午門이라 불렀다. 가운데 문이 왕이 지나가는 문이다. 오문 외에 남쪽 방향에 종묘(현임각)를 드나드는 묘문이 하나 있다. 동쪽에는 현인문, 서쪽에는 경덕문, 북쪽에는 평화문이 있다. 남자들은 현인문으로만, 여자들은 경덕문으로만 드나들었다고 한다. 가이드 말로는 왕이 몰래 나가 다른 여성을 만날 때는 북쪽 평화문으로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평화’를 지켜달라고 평화문이라고 지었다나? 평화를 파괴하면서 평화를 외치는 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차고 넘친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첫째 왕의 후궁은 100명이 넘고 둘째 왕의 후궁은 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베트남은 모계사회라서 남성이 놀고먹는 꼴은 봐줘도 바람피우는 꼴은 못 봐준다고 하는데 왕은 예외인 것 같다. 둘째 왕 민망(1820년~1841년)의 후궁이 500명, 참 민망한 왕이다. 이러니 7년 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왕이 여자와 향락에 빠지면 망조로 가는 길이라는 것은 세세손손 진리다. 

▲ 오문 앞의 연못

오문 앞은 연못으로 가꿔져 있다. 많은 왕궁이 그렇듯 물로 일차 방어진을 구축한 형태다.

▲ 상단은 연회장소로 쓰였던 태화전과 하단 왼쪽은 잘 모르겠다. 오른쪽은 북동쪽에 있는 복원 중인 궁

정문을 지나면 태화전이 나온다. 황제가 즉위식을 하거나 국빈을 만나는 등 궁중행사를 위해 사용하던 장소다. 건물 내부는 백성의 피보다 진한 붉은 색 나무 기둥에 금색 장식으로 이루어져 화려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준다. 진짜 금인 것을 강조하는데 진짜 금이라면 그 전쟁을 치르고도 남아있을 수 있을까 싶다. 사진을 찍는 것은 허용되지 않아 내부 모습은 담을 수 없었다.

▲ 성안의 빈 공터

태화전을 나오면 양쪽으로 긴 복도를 만난다. 이 복도는 복원된 것이다. 이 양쪽 긴 복도 사이에 상당히 넓은 터가 있다. 왕의 집무실과 침실, 왕비의 침실 등이 있었던 곳으로, 가이드 말에 따르면 베트남 독립전쟁 중 프랑스에 의해 다 파괴되었다 한다.

1945년 제2차 대전 후 대부분 식민지는 독립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베트남을 계속 식민지로 두려했다. 베트남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46년 베트남 독립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54년까지 8년간 끈질긴 항전으로 프랑스는 베트남을 포기했다. 베트남은 독립을 쟁취했지만 북은 베트남 민주 공화국, 남은 베트남 공화국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다시 새로운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공산주의 상륙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1955년 미국이 시작한 20년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후에성은 저항세력의 근거지여서, 폭격으로 파괴되어 텅텅 빈 공간이 많다. 계속 복원되고는 있으나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도 있다.

▲ 복도와 여성 이드의 뒷모습

후에성은 지역인재를 활용한다는 차원인지 지역 가이드(Local Guide라 함)만이 안내할 수 있었다. 여성가이드였는데 약 30명을 끌고 다녔다. 이중 중국인이 20명 이상, 영어이해가능자들이 7~8명 있었다. 중국어와 영어를 왔다 갔다 하며 설명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은 그렇다 치고, 영어발음은 정말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런 영어실력으로 가이드를 하다니 기가 찼다. 가이드에게 “당신 말을 잘 못 알아듣겠다.”고 살짝 불평을 했더니 그때부터 가이드는 나에게 초집중하기 시작했다. 중국어로 설명하다가도 내가 자신을 쳐다보며 귀 기울이는 것 같으면 바로 말도 안 되는 영어로 바꿔 설명했다. 중국인 관광객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한국어에 관심이 많다며 계속 ‘이 말이 한국말로 뭐냐’며 물었다. 배짱 두둑한 베트남 여성의 강인한 생존력? 아님 영리한 처세술? 이라고 할까? 정신없이 끌고 다니며 내가 알려준 한국말로 이것도 '이백 년', 저것도 '이백 년'을 수없이 말하는 가이드에게 불평 한마디 못하고 웃으며 헤어졌다.

▲ 상단과 하단 왼쪽은 세조묘(역대 황제의 위패를 모신 사당). 하단 오른쪽은 현임각(왕조 건설에 헌신한 이들의 공덕을 기리는 앙실 사원)

 

▲ 황제의 도서관이었던 태평루

‘후에’는 볼거리가 많다. 하루 일정은 너무 짧다. 왕궁도 급한 가이드를 따라 다니느라 많은 부분을 보지 못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황제릉도 많다. 그 중 보존이 잘되어 사람들이 추천하는 황제릉은 세 곳이다. 2대 황제 민망 황제릉, 4대 황제 뜨득 황제릉, 그리고 카이딘 황제릉이다. 다음에 갈 기회가 있다면 ‘후에’에서 1박 하는 코스를 택하고 싶다. 하루는 황제릉을 구경하고. 다른 하루는 사원과 후에성과 구시가지를 구경하고...

베트남에는 스타벅스 대신 유명한 하이랜드 커피샵이 있다. 하이랜드 커피를 언제 맛보나 했는데 동문 현인문으로 나가니 바로 앞에 있다. 커피 맛은? 정말 맛있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 그런데 굉장히 진해 연유를 섞고 물을 더 타도 진했다.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아침에 향기 그득한 하이랜드 커피 한잔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참 좋을 듯...

한가지 팁. 후에관광은 호텔에서 소개받아 12인승 봉고를 타고 갔다. 운전사, 가이드 포함 8명이 함께 갔다. 호치민에서 온 베트남 처자 2명, 우리 가족 3명, 나머지 한명도 한국 처자. 우리는 원화로 약 4만 원(차량, 가이드 비, 점심식사, 입장료 포함) 정도 주고 갔는데 여행사 예약으로 온 한국 처자는 약 6만원 주고 왔다. 여행사 안내서에는 진주마을, 향수마을에도 간다고 했는데, 실제 간 곳은 진주가게, 향수가게라고 화가 난다고 했다. 가이드 돈벌이를 위해 들른 가게였는데.. 그냥 하나 사준다는 심정으로 제사 때 쓸 향을 한 통 샀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시가의 3배.

다낭 둘째 날도 ‘미안해요’ 소리를 하지 못했다. 아직 용기가 없는 걸까? 절박하지 않은 걸까?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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