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때 세워진 천년 고찰 선운사(禪雲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 워낙 유명한 절이다. 선운산은 선운사의 유명세에 가려지곤 하지만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기암괴석이 많다. 선운산은 중생대 백악기 후반 8500만 년 융기한 화산이 굳은 화강암 산이다.(주)
바위도 멋지지만 4월에는 산 입구에서부터 약 4㎞에 걸쳐 500년 간 조성된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 184호)에서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여름에는 사시사철 흐르는 도솔천을 따라 울창한 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길을 숲내음 맡으며 걸을 수 있다. 9월이면 선운사 입구부터 도솔암까지 약 5km에 걸쳐 핏빛보다 더 붉게 핀 꽃무릇 군락에 깜짝 놀라게 된다. 절정인 9월 20일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무릇 군락을 보기 위해 꽃만큼 사람들로 넘쳐난다. 10월 넘어 가을에는 도솔천에 드리운 단풍이 또한 그만이다.
선운산은 이번이 두 번째다. 10년 전 봄에 갔을 때 저녁에 하산했다. 선운산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서해안 일몰이 장관이라 했는데 날이 흐려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아쉬움에 한참 앉아있다 어둑어둑해져서야 내려왔다. 어둑한 산을 내려오는데 산새가 청아한 소리로 나를 따라오면서 계속 울었다. 마치 내 아쉬움을 위로해주는 속삭임 같아서 두고두고 생각났다.
이번에는 고창 주주통신원 한충호님 덕에 간단 산행을 했다. 도솔암에서 시작하여 마애불을 거쳐 용문굴을 지나 낙조대에서 잠시 머무른 후 천마봉을 돌아 다시 도솔암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다녀온 코스는 선운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솔계곡 지역으로 명승 제54호로 지정된 곳이다.
도솔암은 선운사의 암자로 선운산의 옛 이름 도솔산((兜率山)에서 나왔다. 도솔(兜率)은 불교 용어인데 욕계육천(欲界六天) 가운데 네 번째 天界를 말한다. 수미산 꼭대기에서 하늘나라 사람들이 일곱 보석으로 만든 궁전을 짓고 살았는데 바로 이곳을 도솔이라 한다. 도솔산은 곧 신선들이 사는 천당 같은 산인가?
도솔암 앞 높이 20m 기암절벽 천인암(千仞岩) 옆으로 143개 계단을 올라가면 내원궁(內院宮)이 있다. 미륵이 산다는 내원궁은 천인암과 깊은 계곡 사이에 조용히 숨어있다. 예전에도 하산 길에 내원궁을 들러본다 하고 못 들렀는데 이번에도 가보지 못했다. 다음을 기약하고 싶다.
도솔암을 지나면 천인암 절벽에 높이 25m, 너비 10m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있다. 보물 제1200호로 보통 도솔암 마애불이라 부른다. 그 옛날, 깎아지른 절벽에 부처님을 새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가만 보니 마애불 복부에 네모난 흔적이 있다. 1894년 고창군 농민들이 동학 무장접주 손화중을 따라 마애불 배꼽 속에 든 비결을 꺼내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다고 한다.(주) 봉건제를 바꾸는 미륵세상을 세우는 비결이 그곳에 있었다니 도대체 어떤 비결일까 궁금하다.
도솔암을 지나 그늘진 숲길을 오르면 용문굴(龍門窟)이 나온다. 용문골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검단선사가 절을 세우려 선운산을 찾았는데 절터로 점찍은 연못에 용이 한 마리 살았다. 검단선사가 그 용을 쫓아내자 용이 급히 도망치다가 바위에 부딪혀 굴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무기가 주민들을 괴롭혀 마애불 옆에 12나한전을 설치하니 이무기가 바위를 뚫고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것이다(주). 용문굴은 응회암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굴이다. 응회암내 조밀하게 생성된 절리를 따라 진행된 침식으로 만들어진 굴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어내는 이야기가 참 재밌다(주).
용문굴을 지나 층층계단을 오르니 낙조대가 보인다. 낙조대는 수직 절벽 쌍둥이 바위 두 개를 말한다. 두 바위 사이로 멀리 서해바다가 보인다. 여기서 보는 서해바다 낙조가 장관이라 낙조대라 이름 지은 것 같다. 낙조대는 선운산 명소 중 한 곳이란다. 우리는 아침 7시에 올랐으니.. 낙조는 볼 수 없었지만 한충호님이 살고 있는 마을은 볼 수 있었다. 나지막한 산들과 평야가 넉넉하고 여유 있는 편안한 모습이다.
낙조대 바위에는 지의류가 많이 살고 있다. 물도 없는 그 꼭대기 바위에서 바람을 맞고 살고 있는 녀석들이 기특하다.
낙조대에서 내려가 바로 천마봉을 만났다. 선운산의 최고봉은 336m 도솔봉이다. 천마봉은 284m지만 천마봉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아마도 최고가 아닐까 싶다.
천마봉(天馬峰)은 말이 하늘로 뛰어 오르는 듯 한 모습을 한 웅장한 바위다. 수십 미터의 수직단애가 보기만 해도 아찔해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진다. 그래 그런지 장군봉이라고도 부른다. 바위도 멋지지만 주변 풍광도 빼어나다. 특히 북쪽 방향으로 보이는 만월대가 백미다. 누군가 “장가계가 부럽지 않네요.” 한다.
천마봉을 마지막으로 다시 도솔암으로 향했다. 선운산에는 이외에도 멋진 바위들이 많다. 멀리선 바라본 선운산 서쪽 수락봉에 배를 매어놓았다는 배맨바위도 있다. 이름에서처럼 근처가 바다였는지 조개껍질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밖에도 투구바위, 사자바위, 병풍바위, 안장바위, 탕건바위, 광대바위, 할미바위 등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바위들이 많아, 암벽등반 하는 이들도 즐겨 찾는 산이라 한다.
이번 짧은 산행은 고창향토해설가이자 주주통신원인 한충호님 덕에 이루어졌다. 상세한 설명으로 산행의 재미를 더해준 한충호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주) 한충호 주주통신원의 도움으로 작성했다. 한충호님은 전체 내용도 점검해주었다.
사진 : 김미경, 김동호, 김진표 주주통신원, 이동구 에디터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부에디터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