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아래 방학동에서 시작하여 원통사를 거쳐 우이암에 올라 도봉산 입구로 내려왔다. 5시간 코스다.

북한산 방학능선 입구 농장에서 무궁화와 프렌치메리골드가 자란다. 이 더위에 살아 피어 있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벌레가 많이 꼬이는 무궁화는 평소에 지저분하다 생각했는데 오늘은 벌레 먹은 잎사귀 위에 살짝 얹힌 꽃봉오리가 참 귀해 보인다.

▲ 무궁화
▲ 프렌치메리골드

원통사에 오르면 늘 탁 트이는 경관을 만날 수 있다. 오늘은 저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이 비구름에 가려 운치가 있다. 심지어 수십만 명이 살고 있는 상계신도시 아파트단지도 구름이 가려주어 은은하니 봐줄만 하다. 상계단지가 없었을 땐 어떤 모습이었을까?  

▲ 원통사에서 바라본 수락산

더워도 산에 가면 잠시 더위를 잊는다. 오늘은 특히 그렇다. 산에서 소낙비를 맞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더니 빗방울이 후드득 제법 떨어졌다. 더위에 지친 나만이 아니라 온갖 식물들도 빗방울에 잠시 숨을 고르며 투명하고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낸다.

천둥을 동반한 갑작스런 비에 하늘도 혼비백산이다. 깜짝 놀라 달아나면서도 살짝 뒤로 돌아 시시각각 변하는 비구름 모습에 잠시 넋을 잃는다. 자연은 때때로 상상 이상의 모습을 연출해준다.  

멀리 보이는 능선 너머에 안개가 걸렸다. 비구름은 하늘을 갈라 여린 노을같은 하늘을 선사해준다. 그 사이사이 보일 듯 말 듯 무지개도 담겨있다.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역시 산은 안개도 있고 구름도 있어야 제 맛이다. 바람까지 머물러주면 더 바랄 게 없는데.. 걱정할 것 없다. 멀지 않아 바람도 오래오래 머물러 줄 것이다.

우이암을 마주한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소나무를 만났다. 한 몸에서 나온 두 가지가 언니와 동생, 남한과 북한 같다. 그래도 언니는 동생보다 영양이 좀 좋다. 둘이라 외롭진 않겠기에... 배는 좀 고프더라도 누구 하나가 누구 하나를 내치지 않고 오손도손 살았으면 좋겠다.

 

어디선가 상큼한 향기가 솔솔 난다. 고기누린내가 난다고 하는 누리장나무다. 나뭇잎과 줄기에서는 꼬리꼬리한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꽃에서 나는 향은 그만이다. 어쩌다 향은 무시당하고 누리장이란 이름을 얻었을꼬? 나라도 ‘어쩌다 누리장’으로 바꿔 불러줘야겠다.

▲ 누리장나무

소나무 가지가 하늘을 향해 오르지 못하고 땅에 잡혀 묻혔다. 마치 하늘로 날아오르다 상처입어 주저앉은 용의 등껍질처럼 보인다. 비에 젖어 짙게 변한 뿌리색이 마치 화상을 입은 것 같이 처참하다. 화상 당하고 있는 지구의 현재 모습을 멀리서 보면 저렇게 보이지 않을까?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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