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고요했고 땅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나는 목적지로 가기 위한 길목을 찾고 있었다. 목적지로 들어서는 길이 어딘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곳은 반드시 오늘 내로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면 나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살기 위해서라도 오늘 밤 반드시 그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못 찾고 헤매고 있다. 정문이나 후문이라고 여겨지는 곳이 모조리 닫혀있다. 이상스럽게도 문이라고 짐작되는 곳에는 죄다 자물쇠가 잠겨 있다. 그리고 문 주위에는 훼방꾼들도 있었다. 시시껄렁하게 생긴 훼방꾼들이 나에게 시비를 건다. 시비에 말려들면 꼼짝없이 그들에게 붙잡혀 밤새 희롱당할 것이다. 그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서둘러 달아난다. 그들이 뒤에서 나를 조롱하는 듯하다. 낄낄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육십여 년간 늘 드나들던 곳이라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다. 침대에 눕기만 하면 늘 열려 있었고, 굳이 문을 찾을 필요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누군가가 어떤 세력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고 조직적인 방해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예전에도 가끔 이런 일이 있곤 했지만 어떻게든 문을 비집고라도 들어가곤 했는데 오늘은 그것도 힘들 것 같다.

평상시에는 와인을 한 잔 마시고 나면 길이 열리곤 했었다. 주량이 세지 않은지라 와인 한 잔에도 머리가 띵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면 자연스레 길이 보이고 문이 열리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와인을 두 잔이나 마시고 누었는데도 길이 보이지 않고 문은 닫혀 있었다.

▲ Sleep paralysis - Wikipedia

원래는 열려있는 길이었고 문도 따로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벽이 생기더니 길이 막혀 있었고, 입구를 찾아 헤매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오늘은 밤이 새도록 도저히 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 세계로부터 거부당할 만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러고보니 잡다한 상념의 끈들이 뇌의 본체를 에워싼 채 엉겨 붙어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흔적들이 심장에 달라붙어 끈적거리고 있었다.

기어이 오늘은 포기해야 하는 걸까? 아마도 그리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만 하고, 등에는 식은땀마저 흐른다. 어린 시절에는 눕기만 했다하면 나를 반기던 세계였다. 그렇게도 나를 환영하며 밤새 나와 더불어 노닐던 세계가 어느 날 나를 거부할 줄을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어본다. 왜 나의 앞길이 막혀 있냐고? 앞길을 열어달라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이 아쉬울 때 하늘은 묵묵부답이다. 길은 열리지 않고 마음만 조급한 채 나는 기어이 나의 상태를 인정해야 했다. 차라리 그것이 편할 것이다. 내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나을 것이다. 어차피 들어가지 못할 세계라면 내일을 기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밤이 있을 터이니.

잠의 세계가 이렇게 나를 박대할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어린 시절 제일 친했던 세계가 잠의 세계였는데 이제 나이 들어 그 세계가 나를 멀리하고 있다. 연유가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다. 나는 잠자기를 포기하고 눈을 감은 채로 긴 밤을 꼬박 새우고야 말았다.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현상이다. 그리고 그 현상은 그날 밤 이후로도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