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탐방기 14] 허창무 주주통신원

‘수구문길’을 따라서
광희문 남쪽으로 새롭게 정비된 성곽은 100m 정도 이어진다. 이 구간은 성곽의 안팎으로 시원하게 잔디밭을 꾸몄다. 성곽이 끝나는 지점에서 옛 성벽의 행방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성벽은 이 지점에서 직진을 멈추고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성곽이 직진했다면 장수2길로 지나갔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광희동 2가와 신당동 법정동 경계가 이 지점에서 또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에 서쪽으로 한 블록 더 가서 ‘수구문길’로 들어가야 한다. 법정동의 방향이 각이 져서 꺾인 지점은 도성 밖으로 돌출된 치성의 흔적이다.

‘수구문길’을 따라 끝까지 걸어가면 좌우로 가로지르는 ‘장수길’과 만나 작은 삼거리를 이룬다. 수구문길 끝자락과 이 길의 방향을 그대로 연장한 장수길 건너편에서 주택의 담장이 돼 있는 성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성곽은 수구문길 방향으로 곧장 연장되어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길은 없어져서 성곽을 따라갈 수 없다. 다른 길로 우회해야 한다.

▲ 수구문길에서 만나는 주택가 담벼락의 서울성곽길 표지

‘성당길’을 따라서
수구문길과 장수길이 만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조금 더 걸으면 오른쪽 모퉁이에 장충가든빌라가 보인다. 그곳을 끼고 오른쪽 성당길로 들어선다. 그 길을 따라가면 신당동성당이 나오기 때문에 붙인 가로명이다. 성당길을 계속 걸으면 왕복 8차선 동호로까지 이어진다. 성곽의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 길을 걷다가 오른쪽에 있는 막다른 골목길로 들락날락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자면 끈기가 필요하다.

첫 번째 골목길로 들어서면 끝자락에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터가 나온다. 이곳을 10시 방향으로 가로질러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면 그 끝에 자리 잡은 주택 옆 계단에서 좁은 길 안쪽으로 성돌이 보인다. 그 길을 더 올라가면 상당한 길이인 성곽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시 성당길로 나와 걸으면 명진빌 왼쪽과 오른쪽 골목에서도 주택 너머 성벽이 보이고, 그다음 장충아트빌라 골목 끝에서도 성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구간의 성곽 흔적은 세종 때와 숙종 때 축성된 것이다. 우리는 어림잡아 이 성당길을 100m 정도 따라왔다. 이곳까지가 장충동 1가와 신당동, 법정동의 경계다.

장충아트빌라에서 성당길 언덕을 따라가면 곧 2시 방향으로 길이 휘어진다. 이 지점부터 오른쪽으로 고급주택가가 이어지는데, 이곳이 ‘장충동 부자촌’이라는 곳이다. 삼성 창업자인 고 이병철의 저택도 이곳에 있다. 말하자면 성북동, 평창동, 한남동 등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부자촌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는 장충동의 부자들이 강남으로 이사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의 쟁쟁하던 명성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은 대저택이 헐린 자리에 빌라가 들어섰다.

▲ 이병철가의 정원 석축을 쌓은 성곽의 유구

장충동 성곽의 파괴
한양성곽은 이들 대저택 정원을 뚫고 지나갔을 것이다. 공유지와 공공물인 성곽이 어떻게 사유지와 사유재산으로 바뀌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사정은 이렇다. 일제강점기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위 문화주택지라는 명목으로 택지가 개발됐다. 문화주택이란 전통주택과 구별되는 용어로 근대적인 설비를 갖춘 서양식 주택을 말한다. 교외 주택지라고 불렀던 이러한 곳은 도시화가 더디었던 광희문과 장충동 일원에 급속한 변화를 가져왔다.

1934년 6월 조선도시경영회사(朝鮮都市經營會社)가 이곳 장충동 택지개발을 시작했다. 이때 이 일대의 서울성곽이 파괴됐을 것이다. 그때 이곳 주택지의 한 가구당 필지는 400~500평으로 다른 문화주택지보다 넓게 설정됐고, 조용한 교외 지역에다 남향이라는 자연조건까지 갖춰 자동차를 소유한 부자들에게 분양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장충동 성곽 터를 집터로 허가해준 자들은 일본 관리들이나 회사원들이었을 것이다. 일제는 도로 개설로 성벽을 파괴하고 주택단지 개발로 또한 성곽을 파괴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해방 후 1960~70년대 경제개발시기에 신축된 주택들도 성벽을 파괴했다.

동호로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정문까지
성당길을 나오면 왕복8차선 동호로와 마주친다. 동호로를 건너면 왼쪽으로 언덕이 보이고, 완전히 복원된 성곽이 나타난다. 거기서부터는 도성 밖으로 성곽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나있다. 성곽길이라고 부르는 이 길을 따라 걸으면 호젓한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옛 성벽과 근년에 복원된 성벽이 대비돼 세월의 변천과 무상함을 볼 수 있다. 낙산 구간에서 가톨릭대의 담장이 된 성벽을 보듯이 이 구간의 초입에서도 도성 안에 자리 잡은 신라호텔의 담장이 된 성벽을 고스란히 보게 된다. 무려 500~600m에 이르는 긴 구간이다.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건물

글 허창무 주주통신원/ 사진 이동구 에디터

허창무 주주통신원  sdm3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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