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60주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옥천신문이 우리지역 출신 민주화운동가를 취재합니다. 첫 시작은 옥천 중앙교회에서 20년간 목사생활을 했던 정차기 목사입니다. 정차기 목사는 전남 영암 출생으로 광주 민주화운동을 실제로 목격했습니다. 옥천에서 목회생활을 했던 20년(1981~2001) 동안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시국강연을 펼치고, 운동을 벌이는 등 지역 민주화에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현재는 청주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정차기 목사를 11일 자택 인근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글 싣는 순서

1회: 옥천서 활동한 정차기 목사 인터뷰
2회: 민주화운동가 강구철 열사, 유병진 열사
3회: 옥천출신 민주화운동가 정형기 열사, 윤창영 열사
4회: 옥천출신 민주화운동가 송건호 선생 및 임창순 선생
5회: 옥천군 민주화에 앞장선 옥천군 농민회 및 지역노동단체
6회: 옥천 민주화운동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주민토론회)

▲ 정차기 목사


"정차기 목사님은 옥천 중앙교회 목사로 재직하시면서 독재 타도를 위해 삭발을 하시고 1인시위에도 나섰던 분입니다. 경찰에도 자주 연행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롭게 앞장서는 목사님의 모습을 보며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옥천중앙교회 박주홍 장로는 지역에서 앞장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정차기 목사를 '불의에 저항하는 목회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정차기 목사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만행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다. 참상을 목격한 후 본인이 살아남은 것 자체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그다.

"광주행 교통이 끊기기 바로 직전 광주로 향했습니다. 당시 광주에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광주에 도착하니 역에 군인들이 가득했죠. 수레에 실려가던 임신부의 시신, 광주 양림동 내 기독병원에서 피흘리며 고통받던 환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그였다. 그러나 신군부세력에 언론이 장악됐고 광주의 진실은 가려질 위기에 처했다. 언론은 군부정권의 나팔수에 지나지 않았다. 정차기 목사는 언론사를 문제 삼고 이들에 저항하기 위해 1983년 텔레비전 시청료 거부운동에 나선다. 옥천군 기독교 연합회원으로서 기독교 연합회가 함께했고, 전국적으로 시청료 거부운동이 퍼져나갔다고. 4.13 호헌조치에 반대하며 단식운동을, 민주화를 위해 삭발을 하는 등 온몸으로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한편 옥천에서 민주화의 싹을 틔우기 위한 시국강연도 6년 간 매년 3월1일에 개최한 바 있다. 3월1일에 강연을 한 이유는 독재정권의 시대와 일제 강점기가 다를 바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을 바랐듯, 독재정권에서의 해방을 바랐던 그다. 자신의 은사인 문익환 목사를 비롯해 장을병 교수, 박형규 목사 등 모두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옥천을 찾아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벌였다. 강구철 열사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군부독재정권 당시 옥천뿐만 아니라 청주·대전·영동 등을 오가며 민주화운동을 벌였지만 그에게 돌아온 시선은 '용공목사', '빨갱이'였다. 기독교 세력 역시 그에게 힘이 되긴 커녕 등을 돌리기도 했다. 체포와 도청, 사찰은 일상화됐다. 1986년 6월 전두환이 광주 학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공개적인 비판에 나섰다가 당시 옥천 반공연맹사무총장에게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국가원수모독죄로 수사를 받고 새벽에 갑작스럽게 재판을 받아 구류 10일을 선고받았다. 후에 반공연맹사무총장은 정차기 목사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

2000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를 통해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은 정차기 목사. 그는 역사를 그대로 남기고 기억하는게 중요하다고 봤다. 이어 민주화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민주화 운동을 했던 운동가들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과 같은 정부의 노력이나, 민주화 운동가를 발굴하는 언론의 보도 모두 진실된 역사를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일부는 민주화유공자와 관련해 금전적 보상을 논하지만,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아직도 알려지지 못한 민주화운동가가 많습니다. 그들을 발굴하고 이야기를 밝혀야 앞으로의 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봅니다."

▲ 정차기 목사는 1980년대 옥천중앙교회 목사로 활동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지역사회에 전했다. 사진은 옥천 중앙교회 전경

* 이 기사는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양수철 옥천신문 기자  minho@okinews.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옥천열사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