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콩(Bakong) 사원

'프레아 코 사원'이 880년 인드라바르만 1세가 조상을 위해 만든 사원이라면, '바콩 사원'은 881년 인드라바르만 1세가 힌두교 비슈니신과 시바신에게 헌정한 사원이다. 인드라바르만 1세 사망 후 아들인 야소바르만 1세가 사원에 중앙탑을 증축하고 아버지를 모셨다고 하니, 사실은 인드라바르만 1세가 본인 사후를 염두에 두고 지은 사원이 아닌가 싶다.  

바콩 사원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크다. 첫째, 크메르 제국 최초 국가 사원이다. 둘째, 크메르 제국 최초 Temple mountain이다. 셋째, 앙코르 유적 중 최초로 사암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넷째, 앙코르 와트를 비롯한 앙코르 후기 대형 사원의 모델이 되었다.

▲ 하늘에서 내려다 본 바콩 사원(사진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photasia/24698570346)

위 사진에서처럼 바콩 사원은 인공 언덕 위에 지어졌다. 해자(垓字,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서 판 못)까지 포함해서 900m x 700m 크기로 두개의 해자가 둘러싸고 있었다. 바깥 해자를 둘러싼 외벽이 있고 바깥 해자와 안쪽 해자를 구분하는 중간벽이 있었다. 지금은 바깥 해자에만 물이 있고 안쪽 해자 물은 말라 돌계단만 남았다. 바깥 해자에서 사원으로 향하는 출입구는 없다. 다리 2개만 남았다. 동쪽 해자 다리를 건너면 중간벽이 나온다. 중간벽을 지나 똑바로 이어진 신도(神道)를 걷다 보면 동쪽 출입구와 내벽을 만난다.

▲ 동쪽 출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동쪽 출입구에서 바콩 사원을 보았다. 멀리서 봐도 묵직한 품격이 느껴지는 사원이다. 연꽃 모양을 상징한다는 뾰쪽 올라온 중앙탑이 눈에 확 띈다. 미지의 뭔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 바콩 사원의 구조도(사진 출처 : Books Guide Ancient Angkor)

바콩 사원의 내벽은 출입구 4개를 이은 벽이다. 위 구조도와 같이 가로세로 160m x 120m로 가운데 중앙탑이 있다. 중앙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출입구와 중앙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중앙탑 사방에 쌍으로 쌓은 벽돌 탑 8개가 있고, 내벽 안쪽 모서리에 벽돌로 만든 빌딩 6개도 있다.

▲ 나가상

입구에서 들어가면 거대한 나가상이 있다. 다른 사원에서 본 나가상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는데 이 나가상은 배를 깔고 누워있다. 훼손 상태가 심각해보이지만 보호를 위한 어떤 장치도 없어 안쓰럽다. 배가 쓸려 아플 것만 같다.

▲  Long Hall과 중앙탑
▲ Long Hall

중앙탑으로 들어가는 길 양 옆으로 Long Hall이 보인다. 홀 가운데에는 문도 있고, 밸라스터라는 독특한 기둥으로 장식된 창문도 있다. 힌두 신화를 그려놓은 전시실로 쓰였다고도 하고, 도서관으로 쓰였다고도 하고, 사원 행사 준비를 위해 쓰였다고도 한다. 많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살아 있다. 라테라이트 벽돌과 사암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 시계 방향으로 동쪽, 서쪽, 남서쪽, 북쪽 벽돌탑

8개의 탑은 붉은 라테라이트 벽돌로 만들어져 '프레아 코 사원' 냄새가 난다. 자세히 보니 기초만 남아있는 동쪽 탑이 규모가 가장 커 보인다. 서쪽 탑이 다른 것들보다 좀 작다. 무슨 용도로 지었을까. 힌두신을 위한 탑일까?

▲ 왼쪽이 형편없이 무너진 탑과 벽돌빌딩

보존 상태가 괜찮은 탑도 있고, 약간 기울어진 탑도 있고, 복원하고 있는 탑도 있고, 거의 무너져 복원이 될까 걱정스러운 탑도 보인다. 사진 오른쪽은 6개의 벽돌 빌딩 중 하나로 화장터였다고 한다.

▲ 난디

중앙탑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기 전에 출입을 위한 작은 문이 있다. 삼각지붕 건물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문 앞에는 시바신이 타고 다닌다는 하얀 소 '난디'가 앉아 있다. 아쉽게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 기단 모습

계단을 올라가기 전 5층 기단을 올려다보았다. 3층 기단까지만 보인다. 세월의 흔적이 멋지다. 상징적으로 각 기단은 힌두신을 위한 영역으로 정했다고 한다. 1층은 Naga(신성을 띤 용 신), 2층은 Garuda(비슈니신이 타고 다나는 신조(神鳥)), 3층은 Raksbasa(신성을 띈 인간 존재), 4층은 Yaksba(자연 신, 사원의 수호자)의 영역이고 꼭대기 5층은 Maharaja(위대한 왕이란 뜻) 영역이라고 한다. 인간도 신의 영역에 들어가나?

▲ 수호자 코끼리상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갔다. 1층에서 3층까지 정사각형 기단 모서리 4곳에 코끼리상이 있다. 제 모습을 갖추고 있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했다. 힌두교에서 코끼리는 신앙의 대상이다. 시바신의 아들이 코끼리 머리를 하고 있는 '가네샤'다. 그래서 코끼리를 조각한 부조가 많다. 코끼리가 수호자 역할을 한다고 하니 왠지 든든하다. 바콩 사원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게 잘 지켜주었으면...

▲ 사자상

각 기단을 올라가는 층계 입구와 중앙탑 입구에 코끼리와 더불어 제 2의 수호자인 사자상이 쌍으로 있다. '프레아 코 사원'의 사자상은 막 달려 나갈 것만 같았는데 이 사자상은 먼 곳을 바라보며 상황을 관찰하는 약간은 느긋한 사자 같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 때문에 내 느낌이 사자에게 묻어났으리라...  

▲ 4층 기단에 있는 12개의 작은 탑이 보인다. 

2층 기단에서 올려다 본 중앙탑이다. 4층 기단에는 중앙탑을 빙 둘러싸고 shrine(성골탑 혹은 성물용기함?) 12개가 있다. 시바신 상징인 링가(생식력의 상징으로 시바 신전에는 항상 있다)가 모셔져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앙탑만 덜렁 있었다면 무척 허전했을 텐데... 외롭지 않게 해주는 친구 탑들이다. 밤이 되면 탑의 정령들이 나와 춤을 추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 4층 기단 남쪽 부분에 새겨져 있는 부조 (출처 : Books Guide Ancient Angkor)

나중에 알고보니 4층 기단 벽면에 새겨놓은 부조작품이 그렇게 섬세하다고 하는데... 기단 벽을 자세히 들여다 볼 생각을 못해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놓쳤다. 대신 Ancient Angkor 책에서 본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 동쪽을 향하고 있는 중앙탑

3층 계단에서 중앙탑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위에서 이 사원을 Temple mountain이라 했다. 중앙탑은 Mount Meru의 큰 봉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Mount Meru(메루산)은 힌두교에서 말하는 신성한 다섯 봉우리 산이다. 영적으로 우주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시바신이 살고 있다는 성지(聖地)다. 그래서 중앙탑을 성소탑(聖所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콩 사원을 시작으로 앙코르 사원들 대부분 봉우리를 지닌 Temple mountain 형태로 지어졌다. 

▲ 남쪽 사이드에서

5층 기단까지 올라갔다. 5층 기단은 바닥에서 15m 높이에 있고 중앙탑은 16m 높이라고 한다. 동쪽에만 탑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다른 세 곳은 닫힌 문(blind door, 들어가는 곳이 없는 문)이다. 탑의 각 면에 새겨진 부조가 굉장히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탑을 이루고 있는 돌 색이 많이 다르다. 아마도 오래 전부터 수차례에 걸쳐 증축과 복원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다.

▲ 중앙탑 벽면에 새겨진 부조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자비의 여신 데바타(Devata)가 아주 풍만하다. 벽체를 장식하고 있는 그 주변의 부조들도 하나하나 뜯어 보면 대단하다. 

▲ 중앙탑 벽면에 새겨진 부조

린텔 부조는 복원중인지 비어있다. 대신 린텔 위에 얹혀있는 삼각형 사암에 새겨진 부조가 특이하다. 탑 꼭대기까지 조각품이 이어져 있다. 조각가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암 한 덩이 한 덩이 붙이고 조각하고.. 아님 조각하고 붙였을까? 16m 꼭대기까지 올라 가야 했을 텐데... 그 시대는 안전장치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때인데... 그 열정과 노고 덕에 우리 눈은 호강한다지만....  

▲ 마지막 인사

예닐곱도 안 되는 사람들이 중앙탑의 위용 앞에 아무 말 없이... 조용조용... 느릿느릿... 5층 기단을 돌아다녔다. 너무나 한적해서 시간도 공간도 멈춰선 것 같았다. 잠시 앉아 그 시대 그 장소의 숨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단체 여행은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미 일행들은 멀리 입구에서 우리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떠나기 싫었지만 중앙탑이 무사 안녕하기를 기원하고 탑을 내려갔다.

캄보디아는 최소 두 번은 여행을 해야 그 맛을 안다는 말이 있다. 바콩 사원 뒤로 떨어지는 일몰이 그렇게 멋있다는데... 만약 다시 온다면 오후 늦게 바콩 사원 방문 일정을 잡고 슬슬 돌아다니다가 어느 구석에서 황홀한 일몰을 즐기고 싶다.

▲ 불교 사원

내려오면서 만난 현대식 불교 사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이 마른 두 번째 해자 위에 세워져 있다. 오래된 바콩 사원과 좀 어울리지 않지만 나름 독특한 양식이다.  

 

롤레이(Lolei) 사원

롤레이 사원은 893년 야소바르만 1세가 시바 신에게 헌정한 사원으로 인공 섬 위에 지어졌다. 롤레이 사원 주변은 저수지였다. 야소바르만 1세의 아버지 인드라바르만 1세는 오랜 가뭄으로 국민들이 물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최초로 ‘인드라타타카타’라는 인공 저수지를 만들었다. 이런 선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아들인 야소바르만 1세가 저수지 한 가운데 사원을 만들었다. 사원을 물 한가운데 두는 것은 일종의 상징이다. 힌두 신화에서는 신들의 고향인 메루산이 대양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 복원 중인 가장 큰 탑

야소바르만 1세는 조부모와 부모를 위해 탑 4개를 건설했다. 더 높은 2개의 탑은 조부모를 위한 탑이고 작은 2개의 탑은 부모를 위한 탑이다.

▲ 복원 중인 롤레이 사원

하지만 세월이 흘러 롤레이 사원을 둘러싼 물은 말라 저수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원이 있던 인공 섬의 크기는 90m x 80m로 돌담과 출입구 4개가 있었으나 다 사라졌고 오직 탑 4개만이 남았다. 그 탑도 무너질 듯하다. 복원을 위해 지지대를 설치했다. 지지대 사이 사이로 보이는 부조가 작품이다.    

▲ 왼쪽 드바라팔라(Dvarapala) 부조, 오른쪽이 철골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린텔 부조

탑은 '프레아 코 사원' 탑처럼 라테라이트 벽돌에 석회몰타르를 붙여 건축했지만 린텔, 장식기둥, 닫힌 문(blind door), 수호천사인 드바라팔라(Dvarapala)와 데바타(Devata)등은 사암을 이용해 조각했다. 특히 닫힌 문은 큰 사암 한 덩어리에 조각했다. 롤레이 사원의 사암 작품은 그 섬세함과 예술성에서 롤루이스 유적군 중 가장 으뜸이라고 한다.

▲ 롤레이 사원의 유명한 린텔 부조(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힌두신 중 하나인 칼라(Kala)신이다. 신전의 수호자로서 신전 문 위 린텔에 부조로 새겼다. 왕방울만한 눈에 아래 턱이 없어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 칼라의 입에서 '나가'가 나온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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