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 명상 8: 술 유(酉)

형광석 주주통신원l승인2020.07.29l수정2020.07.30 10:43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한자 酉를 통상 아는 바대로 ‘닭 유’로 읽으면, 그 글자와 결합한 여러 한자, 즉 配(나눌 배, 짝 배), 酸(실 산), 醋(초 초), 酬(갚을 수, 잔 돌릴 수), 酌(술 부을 작), 醉(취할 취), 酊(술 취할 정), 醜(추할 추), 酷(심할 혹), 酵(삭힐 효) 등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경험이 적은 탓이겠다.

닭으로 풀이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우선 십이지지(十二地支) 중 열 번째 동물을 표시하는 酉이다. 그래서일까? <한자사전>에서 酉의 첫 번째 뜻으로 ‘닭’을 내세웠다. 대한민국은 酉와 인연이 상당하다.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난 해가 바로 1945년 을유년(乙酉年)이다. 조금 억지를 부리자면, 酋(우두머리 추) = {酉, 八}를 구성하는 酉는 조류의 하나인 닭으로 봄 직하다. 영화에서 인디언 추장은 머리에 새의 깃털로 장식한 모자를 쓴 모습으로 나온다. 酋는 그런 모습과 조금은 닮았다. 반면에 <네이버 한자사전>은 酋를 상형문자가 아니라 지사문자로 풀이했다.

<네이버 한자사전>에 따르면, 酉의 두 번째 뜻은 ‘술’이다. 酉는 술을 빚는, 뚜껑이 덮인 ‘술 항아리’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그에 따라 본래의 뜻은 술이다. 한자 부수(部首)로 쓰이는 酉는 술이나 발효와 연관된 뜻을 나타낸다.

▲ [뚜껑항아리(유개호; 有蓋壺)] 제작시기: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술 단지에서 잘 삭힌 술은 원액으로서 술의 정수(精髓)인지라 진하고 독할 거다. 전남 진도에서 만드는 홍주(紅酒)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이다. 어떤 홍주는 알코올 도수가 58%이다. 이러한 술은 보통 사람이 바로 마시기에는 독하다. 일반 유리컵에 얼음 3~4조각을 넣고 진도홍주를 따라 마시면, 순하고 시원하다고 한다. 원액인 술(酉)에 물(水)을 적당히 더하여 알코올 농도를 묽게 한 게 보통 말하는 술(酒)이다. 그래서 酒 = {酉, 水}이다.

▲ [프랑스에서 쓰던 브랜디 증류기] 출처: http://www.hani.co.kr/arti/PRINT/230694.html

나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골 술도가에 직접 가서 막걸리 한 말을 사 오곤 했다. 여러 개의 조그만 통에 나누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에 조금씩 마셨다. 초기보다 나중에 마신 막걸리가 부드럽고 순했다. 스무날 정도 지난 막걸리는 조금은 신맛을 냈다. 이에 맛을 들이다가는 자칫 알코올 의존증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기를 그만뒀다.

적당히 삭힌 술은 어버이가 마시기에 좋다. 酵(삭힐 효) = {酉, 孝}. 孝는 ‘효도 효’이다. 막걸리는 오래 두면 서서히 신맛을 낸다. 酸(실 산) = {酉, 夋}. 夋 = {允, 夊}은 ‘정말로 천천히 걷는 모양 준’인지라 상당한 시간의 경과를 의미한다. 그냥 둔 지 오래된 술은 초다. 醋(초 초) = {酉, 昔}. 昔은 ‘옛날 석’이다. 그렇게 술이 시어지도록, 실온에 오래 둔 찬밥이 쉬어지도록 하는 바탕인 원소가 바로 산소(酸素)이다. 산소와 오랜 시간 만나서 삭히거나 삭는 과정이 다름 아닌 산화(酸化)이다.

▲ [술 항아리] 출처: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215

술에 심하게 취하면 어떻게 되는가? 정신을 잃지 않던가. 운이 없으면, 술에 취해 졸(卒), 즉 죽기도 한다. 그래서 醉(취할 취) ={酉, 卒}. 몸도 맘도 취했는데, 도깨비까지 취해 도깨비 춤을 춰대니, 그 몰골이 추하지 않겠는가. 醜(추할 추) ={酉, 鬼}, 鬼는 ‘귀신 귀’, ‘도깨비 귀’이다. 그런 추한 꼴로 고래고래 소리 질러 고(告)하니, 매우 심하지 않은가. 酷(심할 혹) = {酉, 告}.

젊은 시절에 들은 말이다.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 술을 따르는 자세, 마시는 태도를 상대방은 관찰한다.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어림잡아 잘 헤아리는지를 본다. 말하자면, 잘 짐작(斟酌)하는 역량을 평가한다. 斟은 ‘술 따를 짐’이요, 酌 = {酉, 勺}은 ‘술 부을 작’이다. 勺은 ‘구기 작’이다. 구기는 술 따위를 푸는 그릇이다. 아마도 평범한 판사는 피의자의 불가피한 딱한 사정을 잘 참작(參酌)하여 작량감경(酌量減輕)을 고민할 거다. 대체로 사람들은 수작(酬酌)을 꾸미기 전후에 술을 마신다. 술은 모사(謀事)와 성사(成事)의 촉진제이다. 수작은 술잔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그 오가는 술잔에 각자 엉큼한 속셈을 실어 보낸다. 酬(잔 돌릴 수) = {酉, 州}. 요컨대, 짐작, 참작, 작량, 수작 등은 술과 연관된 낱말이다.

▲ [가쓰라-태프트협약(Katsura-Taft協約)]  1905년 7월 “미국은 일본이 한국의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고, 극동의 평화에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사진: 위키백과

전통 혼례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서로 잔을 바꾸어 술을 마신다. 그 술이 합환주(合歡酒; 음양합덕의 기쁨을 촉진하는 술)이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 배우자(配偶者)가 된다. 기쁜 마음으로 서로 몸을 나누고 짝짓고자 하는 질풍노도의 열정은 실현된다. 配(나눌 배, 짝지을 배) = {酉, 己}. 서로 자기 몸을 나눠주고 짝지음에도 술은 윤활유와 같은 작용을 한다고 봐도 좋겠다.

두목은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잘 나누어 줘야 한다. 酋(우두머리 추) = {酉, 八}. 이때 八은 ‘나눌 팔’이다. 우두머리는 흔연스럽게 술을 나눌 정도의 넉넉함을 보여야 한다. 사람은 먹어야 흥이 나서 따른다. 적시적소(適時適所)에 적당한 술은 흥을 돋우고 상호소통을 촉진한다.

이상에서 보건대, 우선 酉는 ‘술 유’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酉가 들어간 글자의 뜻이 술술 풀린다. 술은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의 촉진제이자 매개체이다. 그런데도 잘 짐작(斟酌)하여 엉큼한 개수작(酬酌)은 간파해야 하리.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형광석 주주통신원  f6125505@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형광석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주주커뮤니케이션팀  |  전화 : 02)710-0124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이상준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준
편집위원 : 김경애, 김국화, 김동호, 김미경,김태평, 서기철, 심창식, 정혁준, 허익배   |  객원편집위원 : 김혜성, 박춘근, 박효삼, 안지애, 양성숙, 최성주, 하성환
Copyright © 2020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