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이로소이다 18. 순진의 내기

심창식 편집위원l승인2020.09.11l수정2020.09.11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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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태종은 발해의 마지막 신녀 훤희가 예언했던 시기를 주목하고 있었다. 발해가 멸망한 후 한민족의 정기가 바닥을 치고, 대한민국의 국운이 융성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자신의 뒤를 이을 79대 한강왕의 재임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한강변에 터를 잡은 고구려와 발해, 백제 유민의 후손들 모두가 79대 한강왕에게 주목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발해왕족의 후예를 자처한 모연중이 한강왕위를 찬탈하고자 역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유럽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구축하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모숭산이 아들 모연중을 부추겼으리라. 모숭산도 2026년 이후 대한민국의 국운이 크게 융성하리라는 훤희의 예언을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신녀 훤희의 예언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발해왕족의 권위를 내세우려 한 게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부친의 사주를 받은 모연중이 인터폴 파리지국의 보안용역직원으로 근무하며 클레어의 인터폴 신분증과 기밀을 탈취한 후 한강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기어이 모반을 일으킨 것이다

이미 한 달 전에 오토왕으로부터 모연중에 관한 첩보를 사전에 입수한 호태종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는 하되 79대 한강왕에게는 이 사실을 일단 비밀에 붙이기로 했다. 경호단 중 일부가 모연중에게 포섭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으나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딸 초순진에게는 살짝 귀띔을 했다.

그러자 순진은 79대 한강왕이 걱정이 되는 듯 한 마디 했다.

"그래도 현직 한강왕인데, 넌지시 눈치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 장래의 낭군이 될 사람이라 걱정이 되는 게야?"

"혼례와 합방이 있을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발해의 신녀 훤희의 예언대로라면 지금은 역사적 변환기이다. 그런 역사적 변환기를 맞아 자신에게 왕권이 이어지지 못하게 된 것도 하늘의 섭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초순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79대 한강왕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호태종은 딸 순진의 성격을 잘 안다.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현재의 한강왕에게 왕위가 돌아갔을 때 순진이 내기를 하자며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 '아버지가 실성을 해서 한강왕이라고 떠벌리고 다닌다'고 거짓으로 고변을 해볼게요. 그가 제 말에 흔들린다면 그는 한강왕 자격이 없는거라구요."

그래서 딸 순진과 내기를 하게 되었고 순진의 예상은 어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혼례와 합방 날짜가 잡힌 것이다. 내기에서 지면 초순진은 한강왕에게 합방을 제안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 달 전에 그런 내기를 했지만 지금은 그런 내기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긴박한 실전 상황이다. 모연중 일당이 79대 한강왕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79대 한강왕과 비밀경호단장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에서 여차하면 한강왕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모연중에게 의표를 찔린 것이다. 호태종이 예상한 시기보다 무려 보름이나 빨리 역모를 일으킨 것이다. 게다가 초순진이 한강왕과 만나 합방 날짜를 잡은 바로 그 날 반역을 도모할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모연중으로서는 호토종이 자신을 감시하는 낌새를 알아채고 거사를 앞당겼을 것이다.

사전에 오토왕의 제보를 받았으니 망정이니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호태종도 무척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국내에 들어온 모연중이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비밀경호단 일부를 매수했으며 옥새를 손에 넣으려 한다는 것까지 알아내고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있었지만 이를 보고받지 못한 79대 한강왕은 이만저만 당황한 게 아닐 것이다.

초순진은 이런 상황에서도 고구려와 발해의 옛 영토를 회복하게 될 거라는 발해의 신녀 훤희의 예언을 떠올렸다. 가끔 초순진은 아련한 꿈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순결한 햐얀 말갈퀴가 멋지게 휘날리는 백마를 타고 초인처럼 만주벌판을 내달리며 쑹화강가에서 신명나게 춤을 출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까? 언제쯤이면 아무르강가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와인 잔을 기울이며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러다가 모연중이 역모를 꾸민 현 사태를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과연 79대 한강왕과 함께 아무르강가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볼 수 있을까?"

79대 한강왕을 보니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모연중 일당이 목에 칼을 겨누고 있고, 호태종부녀가 포박당한 채로 끌려오는 걸 보고 지금쯤 엄청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초순진은 79대 한강왕에게 무척이나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호태종이 말렸어도 79대 한강왕에게 모연중의 모반을 미리 알렸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자책감이 초순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계속>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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