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이로소이다 19. 초능력의 샘

심창식 편집위원l승인2020.09.17l수정2020.09.1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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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의 샘

왕에 등극한 지 얼마 안 되어 역모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면 누구든 기민하고 현명한 대처에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내가 인질로 잡혀있고 호태종마저 포박되어 끌려온 마당에 한강왕으로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모연중은 나의 뒷조사를 철저하게 했으며 나에게 심리전술을 구사하며 압박했다.  호태종과 초순진을 부녀사기단으로 몰아가며 자신이 인터폴이라고 떠벌거렸지만 그가 한 말들은 이미 신빙성을 잃었다. 그는 옥새를 탈취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지금 벌어지는 사태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이다. 호태종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모든 걸 포기한 걸까. 호태종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세상에 나 홀로 버려진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한강왕이 되기 몇 달 전 교외 숲속에서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아내와 사별한 이후 숲속을 자주 찾았는데 그 날도 숲속을 거닐던 차에 널찍한 바위가 눈앞에 나타났다. 썬다싱이라면 이런 바위에서 명상과 기도를 했을 것이다. 인도의 성자 썬다싱처럼 바위에 올라가 잠시 명상을 했다. 우주와 교감하는 시간이다.

▲ 치유의 숲 (출처 - 한겨레신문)

그러다가 명상에서 깨어났다. 주위에는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우주의 공허가 그대로 고독이 되어 밀려왔다. 세상에 나 홀로 남은 듯 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사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나를 향하여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길을 잃은 걸까. 한편으로는 경계심이 일기도 했다. 감청색 셔츠를 걸친 구차한 행색의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에게 먹을 것이 있으면 좀 나눠주시겠소? 정처 없이 숲을 헤매다보니 목도 마르고 배고파 죽을 지경이오."

가까이서 보니 남자의 눈은 간디의 눈을 닮았다. 눈망울이 크고 슬픔과 자비를 간직한 눈동자, 영락없는 간디의 눈이다. 배낭에는 약간의 먹을거리가 남아있었다. 먹을거리와 음료를 나누어 주자 그는 황급히 먹어치웠다. 간디의 눈동자가 말했다.

"조만간 또 보게 될 것이오. 오늘처럼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한 날에 말이오!" 

그런데 모연중이 반란을 일으킨 지금이 바로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드는 날이 아닌가. 시퍼런 칼날이 내 목을 겨누고 있고 다들 나를 주시하고 있다. 호태종이 한강왕위를 물려주며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왕이 된다는 것은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과 같은 것이며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왕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그때 멀리서 감청색 셔츠를 걸친 허름한 남자가 선유도 정자를 향해서 터벅터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숲에서 만났던 남자, 간디의 눈동자를 지닌 남자였다. 모연중 일당이 그를 제어하자 그는 멈칫하더니 허공에 대고 누군가에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멀리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속삭이듯이 들려왔다.

"또 보게 될 날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조만간 두 가지의 신호가 있을 것이오. 첫 번째 신호는 지금 처한 상황이 어느 정도로 위기상황인지를 알리는 신호요. 횟수가 세 번이면 제일 위험하다는 신호일 것이오. 두 번째 신호는 그것이 제압될 상황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신호인데 그 신호가 홀수라면 제압이 어려울 것이며 짝수라면 곧 제압될 것이니 염려 말라는 신호일 것이오."

 

▲ 마하트마 간디

간디의 눈을 지닌 남자가 미친놈처럼 혼자 중얼거리더니 저 멀리 사라져걌다. 모연중 일당을 비롯한 경호원들 누구도 그 남자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중얼거린 소리는 내 귀에만 들린 것이다. 그런데 두 가지 신호는 어디서 누가 보낸다는 걸까? 주위를 들러보던 순간, 비밀경호단장과 눈이 마주쳤다. 

단장이 나를 향해 갑자기 왼쪽 눈을 세 번 깜짝거리더니 오른쪽 눈을 두 번 깜짝인다. 간디의 눈을 지닌 남자에 따르면 이는 좋은 신호다. 세 번 깜짝인 왼쪽 눈은 지금 상황이 최고로 위험한 비상시국임을 말하는 것이고, 두 번에 걸친 오른쪽 눈의 깜짝임은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신호다.

경호단장은 이번에는 다른 신호를  보냈다. 잔기침을 세 번하더니 가벼운 헛웃음소리를 두 번 했다. 이것 또한 같은 의미의 신호일 것이다. 나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호태종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게다.

초순진은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초순진의 눈빛에서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초순진의 눈동자에서 글이 나오고, 그 글이 음성이 되어 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음과 모음이 제각기 흩어져 보였다. 그나마도 띄엄띄엄 보였다.

- ㄷ ㅏ .. ㅇ ..  ㅅ ㅣ ㄴ ... ㅂ ㅐ .. ㄱ ㅇ ㅣ ㄹ ... ㅎ ㅏ.. ㅂ .. ㅏ ㅇ ...  ~~

다시 집중을 해서 보니 음절과 단어가 연결되어 보이기 시작했고 귀에 들어올 때는 문장이 되어 있었다. 귀에 들려온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백일 후 합방을 할 때까지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요."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초순진의 눈빛에서 글을 읽고 그 메시지를 귀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초능력이 생긴 걸까. 아니면 긴박한 상황에서 마음이 서로 통한 걸까. 지금은 그것을 따질 겨를이 없지만 일단 나도 눈빛으로 초순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와 함께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니 안심하시오."

▲ 신이 대지와 물과 태양을 주었으며 사과나무를 주었으며 사과를 길러낸 사람들의 미소와 노래를 주었다. 

- 일본의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에서 (출처 : 한겨레신문)

눈빛으로 보낸 나의 메시지를 초순진이 읽었을까. 눈빛을 보낸 후 순진이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순진에게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진과는 이렇게 말없는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염화시중의 미소요 교감이었다. 초순진과 말없이 주고받는 미소야말로 지금의 나에게는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이었다.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는 '신이 주신 대지와 물과 태양에서 그리고 사과를 길러낸 사람들의 미소와 노래에서' 영혼의 깊고 오묘한 맛을 느낀다고 했다.

초순진과 나눈 교감은 불과 4~5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의 침묵을 지켜보던 모연중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옥새 있는 곳을 대라고 다그치자, 그때까지 사태를 주시하던 경호단장이 갑자기 천둥이 울리는 듯 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저 가짜 인터폴 일당들을 당장 포박하라~."

그러면서 자신에게 총을 겨누던 경호원을 단박에 제압했다. 동시에 어떤 사내가 정자 밑 어둠속에서 뛰쳐나오더니 칼로 나를 위협하던 자의 목 뒷덜미 혈도를 눌렀다. 지켜보던 다른 경호원들도 호태종 부녀를 포박한 자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모연중 마저 포획했다. 그와 동시에 선유도 정자 외곽에 있던 모연중의 일당들도 일거에 진압되었다. 이 모든 게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계속>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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