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덩어리 교단일기 4 - 권위주의 학교문화를 회상하다

하성환 객원편집위원l승인2020.09.13l수정2020.09.2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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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이라는 말이 일제 식민지 잔재이기에 쓰면 안 된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교실에서 ‘교단’이 사라진 지는 20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교직 발령을 받은 1984년에는 ‘교단’이 일상적 풍경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교단’이라는 말이 교직을 상징하는 낱말이기에 교단일기라고 쓰겠습니다.

당시엔 매일 아침마다 교직원회의가 열렸습니다. 교무주임-학생주임-연구주임-새마을주임-윤리주임 순으로 지시, 협조사항이 전달되었지요.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맨 끝에는 학교장이 마이크를 잡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독려 반, 야단 반 그런 성격의 이야기로 회의 아닌 회의가 반복되곤 했습니다.

1984년 3월 첫째 주 교직원회의 당시, 학교장은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교사단체인 대한교련(대한교육연합회의 약칭, 89년 전교조 창립 이후 `한교총`으로 탈바꿈)에 가입하니까 오늘 첫 신규발령을 받은 8명 교사들을 포함해서 모든 교사들이 가입하는 것으로 하고 이의가 있는 사람은 교장실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학교장이 대한교련 학교 분회장이었습니다.

▲ 교권보호를 내세운 한교총 홈페이지 화면(출처 : 한교총)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교육자단체인 <조선교육연합회>를 이어받은 <대한교련>은 군부정권 내내 관변교육단체로서 어용성을 드러내다가 1989년 전교조 결성과 함께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약칭 한교총)로 명칭을 변경하고 규정 개정을 통해 교장, 교감이 아니라 평교사들에게도 대의원에 입후보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대한교련」은 1947년 11월쯤 결성된 보수 관변단체입니다. 해방 직후 민족주의 · 사회주의 양대 교육 세력이 자주적으로 결성한 교직단체가 「조선교육자협회」(1945)였습니다. 당시 남북한 전체 초중등교사 1/3에 해당하는 교사들이 가입할 정도로 지지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국대안’ 반대 투쟁(1946-1947)을 치르면서 「조선교육자협회」는 1947년 10월 지도부가 구속되고 심각한 탄압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1948년 지하조직으로 숨게 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쪽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집니다.

▲ <국대안 > 사건 당시 학생대표가 미군정청 문교부를 방문한다는 신문기사(출처 : http://www.graphys.co.kr)

<국대안>은 미군정기 강행된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의 약칭으로 당시 반대투쟁이 거셌다. <국대안> 사건은 기형적인 남북한 분단고등교육체제가 형성되는 출발점으로 작용했다. 제대 출신 남쪽 우수한 학자들이 북쪽 김일성 종합대학으로 월북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조선교육자협회」가 미군정당국에 의해 불법조직으로 탄압받고 조직이 위축된 1947년 11월, 미군정청 문교부장 오천석은 친일교육자 조동식을 사주해 「대한교련」을 조직합니다. 「대한교련」은 식민지 시대 친일교육자단체인 「조선교육연합회」의 후신으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아래에서 수십 년 동안 권력에 유착된 채 교직사회를 대표하는 양, 어용성이 짙었습니다.

1989년 전교조 창립 이후 「대한교련」은 조직 내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교장-교감 등 관리자 중심에서 평교사 대의원 비율을 대폭 늘리고 학교 분회장을 평교사가 맡는 것으로 변화했습니다. 나아가 1989년 이후 전교조와 함께 교원의 실질적 권익을 위해 변신을 시도한 결과, 한교총은 교원노동운동의 세계적 단체인 EI(국제교원노조연맹)에도 전교조와 나란히 가입했지요. 그러나 2014 박근혜 정권 시절,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가 강행될 때 격렬하게 저항했던 전교조와 달리 한교총은 국정제 지지선언을 하면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 1989년 5월 27일 전교조 결성대회 전날 결성식 예정 장소였던 한양대 캠퍼스로 몰래 들어가려고 애쓰는 교사들 모습(출처 : 교육희망)

당시 과학을 가르쳤던 77학번 어느 선생님이 교직원회의 끝나고 나가면서 그랬습니다. "야, 이렇게 하는 게 어디 있어? 개인의사를 묻지도 않고 통째로 어용단체에 우리가 왜 들어가! 우리 들어가자! 교장실 쳐들어가서 가입할 수 없다고 얘기하자!"

그래서 교장실에 우리 3명은 들어갔습니다. 20대 중·후반 젊은 교사들이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을 안고서 말이죠. 교장실에서 학교장이 뜨악한 표정(?)으로 그리고 심히 불쾌하다는 듯이 우리를 쳐다봤습니다. 교장실 소파에 앉으라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서 있게 한 상태로 교장은 한참을 자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대한교련」 가입 거부 의사를 표명한 뒤에 교장실을 나오면서 그 77학번 선배 교사가 이런 말을 들려줬습니다. 〞하 선생, 3/17일이 월급날인데 몇 년 전에는 3월 월급을 17일분만 줬어. 우리 77학번 발령 받은 교사들이 교육청에 집단으로 항의해서 3월 월급 전부를 받을 수 있게 된 거야, 몰랐지?〝

겨우 교육운동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던 80년대 초반 암울한 시절에 겪었던 학교사회 풍경입니다. 학교 내 조직적인 움직임이 학교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5공 정권이었으니까요.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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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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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호 2020-09-14 11:06:29

    생각 없이 사용했던 단어!
    그 교단이 이미 사라졌군요.

    학교는 개인과 가정,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배우는 곳인데,

    그곳의 한 주역인 선생님들이 지금 군대생활 하는 환경에 있었군요.

    당시의 과오를 기록하여 사람다운 사람을 가르치는 학교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하성환 통신원의 교단일기 공유합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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