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르치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젊은 교사들은 잘 이해가 되질 않을 것입니다. “가르치는 게 왜 싸우는 거야?”

보통의 생각으로 가르치는 것은 연구하는 것이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지요. 나아가 가르치는 일 자체에 기쁨과 뿌듯함 그리고 자기충족감으로 표현되는 정신적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즐거운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 아이들이 선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노라면 분명 가르치는 직업은 정신노동 가운데 가장 멋진 직업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 영혼과 맞닿아 내적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터(M. Luther)는 성직 다음으로 교직을 찬미하며 성스러운 활동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교사가 처한 교육의 현실은 상황이 녹록하지 않습니다. 너무 지친 탓인지 아니면 교실이 붕괴돼 무례한 아이들로 상처받은 탓인지 가르치는 일에 회의를 느끼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르치는 일로부터 이 땅의 교사들이 뿌리 채 소외된 모습입니다. 저 자신부터 가르치는 게 힘듭니다. 나이 때문도 있겠지만 지난해 다르고 올해 다릅니다.

2010년 리틀 MB 공정택 교육감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하나로 ‘학교선택제’ 시행 이후,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는 가파르게 슬럼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시내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가 처한 일반적 현상입니다. 매년 성적 우수한 학생들이 우수수 자사고로 빠져나가고 일반 인문계 고교는 실업계 학교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특목고, 자사고로 진학해도 뛰어난 성적을 지속할 극소수 학생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 수준인 인수분해도 불가능한 아이들이 공존한 게 우리교육이 처한 현실입니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일반인문고 전성시대’를 구호로 내걸고 당선된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생각은 반듯했지만 당선 이후 행보는 거대한 세력! 높디높은 벽에 부딪친 느낌입니다. 부득이 대안교실, 희망교실 정책은 학교선택제 정책이 낳은 반(反)교육적인 현상을 뒷수습하는 형국이었지요. 일반 인문계 고교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속에서 대안교실이 등장하고 몇 년 전 희망교실도 등장했습니다.

모두 공정택이 저지른 반(反)교육을 바로잡는 과정이자 뒤치다꺼리하는 모양새입니다. 2008-9년 교장과 장학사 직을 돈 받고 팔았던 리틀 MB, 공정택이 저지른 학교 시장화 정책은 폐기하는 게 한국 교육이 나아갈 길입니다. 공정택은 매관매직의 전형인 부패교육감의 대명사로 오늘날 교육 운동하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곤 하지요.

고등수학을 비롯해 학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는 아이는 한 반에 5-6명 정도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중학교 석차백분율 30%에 속한 아이들이 그 정도 수준입니다. 외고, 자사고, 국제고 해체를 비롯해 특단의 대책이나 대안교육 프로그램(예, 대안교실, 희망교실)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교사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르치는 일에 의미를 억지로 부여하기가 자꾸 힘들어지는 상황으로 치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꿈은 내년엔 직업반을 두 개 개설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주면 자포자기했던 아이들이 아름다운 꿈을 좇아 열심히 살아갑니다. 아이들도 인간다워지고 선생님들도 상처를 덜 받아서 좋습니다. 거기다 ‘희망교실’을 통해 아이들과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수요시위도 함께 가고 밥도 사주며 사회의식을 키워서 세상으로 내보내고 싶습니다. 둥지에서 어린 새가 날아가듯이...

▲ 여의도고등학교 학생들이 2014년도 7월, 손수 제작한 피켓을 들고 옛 일본대사관 맞은 편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수요시위에 참여한 모습.(출처 : 하성환)

선생님, 그래도 가르치는 일은 피를 흘리지 않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지치고 힘들어도 교사들은 남은 힘을 쏟아 부어 아이들과 어울리길 즐겨합니다. 성대 결절이 오고 아이들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교사가 되었지?’라고 되묻습니다.

아이들과 부대끼다보니 상처가 쉽게 아물지도 않고 아물기 전에 또 다른 상처를 받기도 하지요. 저는 그런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이전 학교 담임선생님이 말썽을 피우는 아이를 퇴학시켜 달라고 선도위원회에서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반 수업을 들어가셨던 어느 역사 선생님은 너무도 마음이 심란하여 퇴근을 못하고 여의도 한강 변을 거닐며 우셨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지 저는 그 선생님을 잊지 못합니다. 자기반 아이도 아닌 학생이 퇴학 처분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교사로서 안타까움과 자괴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아름다운 선생님이 지금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1년 넘게 질병 휴직상태입니다. 저와 역사스터디를 같이 했던 분이기에 아무리 이리저리 연락하고 안부 문자를 보내도 소식이 없습니다. 슬프지요! 서글픕니다!

 

우리 교사들은 스스로 성장하기도 하지만 주변 교사들을 보면서 성장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아이들을 보면서 더 내면 깊숙이 성장을 경험하기도 하지요. 아이들이 때로는 교사인 나를 성찰하게 만들고 교사인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는 것을 솔찮이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지만 – 더러는 근거 없는 비난과 악플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 아이들 교육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일에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치는 교사들도 많습니다. 바로 교육모순과 끊임없이 싸우는 교사노동조합 교사들입니다. 그분들은 ‘가르치는 것을 싸우는 것’이라 믿습니다. 아이들 교육환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교육모순과 그를 겹겹이 에워싼 또 다른 한국사회 중층적 모순(민족모순, 계급모순, 사회역사모순)과 오늘도 싸웁니다.

30년 전 교사노동조합이 건설될 때 시인이자 국어교사(전교조 초대 정책실장, 지금 국가교육회의 의장)였던 김진경 샘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선생님, “가르치는 것은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순을 외면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선생님! 아무도 대신 싸워주진 않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싸울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과 가장 가깝게 지내며 아이들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는 우리 교사들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옥죄는 입시현실, 그리고 학교생활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온갖 교육모순과 쉼 없이 맞서 싸워야 할 주체는 교사입니다. 그러할 때 한 걸음 역사는 전진할 것이고 아이들은 조금씩 삶을 회복할 것입니다.

학교는 행복한 삶을 준비하는 공간이자 행복한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운 시절이 돌아오면 그 땐 운동을 접어야겠지요. 모순이 사라져 운동 자체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올 테니까요.

핀란드와 덴마크 교육, 하다못해 러시아의 아름다운 학교는 행복발전소입니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부모의 말이 ‘너 자꾸 말 안 들으면 학교 안 보낼거야‘ 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핀란드 아이들은 학교 가는 게 행복합니다. 우리의 경우 단축수업하면 아이들이 행복해 하지만 핀란드는 정반대입니다. 학교에서 오래 있기를 바라지요. 진실입니다! 2000년대 이후 그동안 교육개혁에 관한 보고서나 수없이 출간된 행복한 학교, 핀란드 교육혁명에 대한 책들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 핀란드는 수업을 적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세계 제1의 교육력을 자랑한다.

고등학생들조차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하고 학교를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교사의 자율성을 극히 존중하여 강제적인 연수가 전혀 없음에도 모든 교사들이 전문성 신장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수를 받는다. 물론 한국사회처럼 관료적인 장학감사제도가 없다. 그럼에도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은 매우 높다. 한국사회 교육개혁을 위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꿈을 키워가고 내적 성장을 경험하며 패거리 문화가 아니라 아름답게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역시 ‘공부 못하는 자신의 아이가 대학 가겠다’고 고집 피우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괜히 대학 가서 더욱 열등감으로 상처받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지요. 핀란드, 덴마크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인간의 품의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복지선진국입니다. 복지시스템이 세계 최상의 수준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아이들을 둘러싼 교육모순과 싸우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이 시대 교사의 소명인지도 모릅니다. 너무 많은 모순들이 아이들을 입시경쟁으로 내몰고 속물적 교양으로 자신을 위장하며 살아가게 만듭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대면할 용기도, 의지도, 깨달음도 사라져버린 아이들에게서 우리는 안타까움을 넘어 절망합니다. 어쩌다 교육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교육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기막힌 현실 앞에 오늘도 교사들은 고민이 깊어집니다.

적어도 군부독재정권이 교육을 정치의 도구로, 이념교육의 장치로 강제한 시절에는 모순과의 투쟁이 당연했고 삶 그 자체였습니다. 하루를 사는 것도 싸우는 것이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만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의열단, 조선의용대 출신 연변 작가 고 김학철 선생이 남긴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납니다.

“편하게 살려거든 불의를 외면하고 인간답게 살려거든 불의에 저항하라”

▲ 조선의용군들이 1944년 타이항산에서 옌안으로 옮긴 뒤 사무실과 주거 용도로 사용했던 흙동굴.

약산 김원봉이 창설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조선의용대의 정신적 지도자 석정 윤세주가 일본군과의 반소탕전(1942. 5월)에서 전사한 직후, 연안파 공산주의 항일조직인 조선독립동맹 산하 군사조직,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된다. 조선의용군은 해방 직전까지 일본군과 치열한 무장투쟁을 전개했고 국공내전에서 빛나는 전과를 세워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비극적인 사실은 이들 조선의용대(군)이 6,25 전쟁 당시 북쪽 인민군의 주력부대가 된다는 사실이다.(출처 : 한겨레 김남일 기자) 

문제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한 세대가 바뀌었음에도 아직도 모순과 싸워야 하는 세상이 참으로 서글픕니다. 진실과 거짓이 뒤바뀌고 정의와 불의가 전도된 이 현실 앞에 교사로서 절망합니다.

가르치는 것은 싸우는 것입니다. 교육은 가치를 지향하는 활동이고 교사는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오늘도 가르치는 것은 싸우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합니다.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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