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정년은 65세이지만 60세가 되는 올해 명퇴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무엇을 준비했냐고 묻는다. 그런데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기 위해 퇴직했다. 난 태생적으로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다. 가능하면 몸도 적게 움직이고 머리도 쓰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세상에 어울려 살아야하니 부지런을 떨어야 했고, 없는 머리도 짜내야 했으며, 싫은 일도 강요된 열정으로 해야만 했다. 사실 타고난 재주도 별스러운 게 없고, 학습하고 기른 능력도 부족하여, 참으로 어렵고 난감할 때가 많았다. 행운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그러던 차에 명퇴가 있다하여 감사한 맘으로 신청했다. 고민은 했지만 잘한 것이다.

인생은 일로서 증명이 되고, 그래야 인생다운 인생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안되면 되게하라’는 군사문화의 영향도 받았다. 그러나 이젠 꼭 무엇을 이루고 성공해야 올바로 사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고리를 풀어버리고자 한 것이다. 조직과 사람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슨 대단한 것을 할 수 없겠지만, 한다고 나서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몸과 맘을 얽어매고 있는 각종 끈들을 자르고 싶었다. 더 이상 주변의 시각과 관심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이 또한 과욕인가? 하지만 김태평이란 이름에 묶인 기대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아직 제약은 다소 따르고 있지만 예전에 비해 느긋하고 홀가분하다. 가고 싶으면 가고 눕고 싶으면 누울 수 있어 좋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평일임에도 시내를 한가로이 거닐 수 있고 산에도 갈 수 있다. 누구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지 않아도 되고 받지도 않는다. 부족하고 모자람은 나의 본질일 것이니, 부족하고 모자란 대로 그렇게 살고자 한다. 졸이 되고 밥이 되더라도, 병신 같고 바보스러워도... 살날까지 또 다른 변화가 있겠지만 명퇴 후 약4개월 소회가 그렇다.

퇴직하고 나니 시간과 세월이 길어졌다. 몸과 맘도 축 퍼지고 편안해졌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그렇다. 심심하지 않다. 소일거리를 찾아 나설 필요도 없다. 구태여 연락하여 누구를 만나자고 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없는 이대로가 좋기 때문이다. ‘세상이여! 나를 이대로 두어라’ 철없다 하겠지만 자연에 조금 다가간 느낌이다.

 

세월! 그를 만났다.

‘세월아! 너 어디 있었지?’

‘나? 늘~ 여기 있었는데!’

‘그런데, 난 너를 보지 못했지?’

‘네가 나를 보지 않았겠지’

‘그랬을까~’

‘아님, 안중에 없었던지’

‘맞아~ 그럴지도 몰라...’

‘넌, 너 밖에 모르잖아’

 

흠칫 놀랐다. 아내가 늘 하던 말이었다. 난 내가 없이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나를 보면서 살려고 했는데... 그도 아니었다. 외부에서 보기엔 나만을 위해 산다고 보인 모양이지? 정말 그랬나? 가슴이 먹먹하고 맥이 빠진다.

‘그래~ 거참~ 뭘 그리 빡빡하게 살았을까? 세월도 보지 못하면서...’

‘이젠 뭐가 좀 보이나?’

‘허허~ 그래, 이젠 주위를 좀 보며 살려고 해. 그렇지만 아직은... 이제야 여유롭고 자유롭게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기도 어렵겠네...’

 

세월이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바로 그리 되기는 어려울거야. 나도 보기만 하고 버려. 그래야 돼. 무슨 의식과 의지를 갖지 않는 게 좋아. 어떻게 살고 싶다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 또한 구속이잖아? 무엇이든지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게 좋아. 특히 자신 내면의 흐름을.’

‘고마워, 그래야 될 텐데... 될까 모르겠네’

‘외부 시각과 평가에 구애 받지 마. 다 일시적이고 그네들의 것일 뿐이야. 네 몸과 맘이 가는대로 살아. 남을 해치지 않는다면 무관할거야. 억지로 몸과 맘을 강요하지 말란 것이지’

‘맞아~ 세월 너처럼 살아야 하는데... 이제 그렇게 살아야지? 그렇지 못한다면...’

세월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무심하게 흘러갔다. 나도 저와 같이 유유자적할 수 있을까?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양성숙 객원 편집위원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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