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에는 대만 역사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중국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잠시 다녀 온 중국 여행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이번에 제가 다녀온 곳은 오천년 중국 문화의 발원지 산시성(山西省, 산서성)입니다. 불교 4대성지중의 하나인 우타이산(五臺山, 오대산)과 윈깡(雲岡, 운강)석굴, 황허(黃河, 황하)의 후커우폭포(壺口, 호구) 그리고 중국 4대 미녀중의 하나인 왕소군이 흉노의 왕에게 시집가기위해 넘었던 만리장성의 옌먼관(雁門關, 안문관)등을 둘러보고 왔는데, 일정 중에 미안산(綿山, 면산)관광지가 있었지만 관심 밖이어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갔습니다.

▲ 윈깡(雲剛, 운강)석굴. 1500년 전 북위 시대에 조성된 중국 3대 석굴 중의 하나이며 세계문화유산! 45개의 동굴에 51,000여 존의 석각조상이 있음.

 

▲ 후커우(壺口, 호구)폭포, 산시성(山西省,산서성)과 싼시성(陜西省.협서성) 사이를 흐르는 황하의 400미터 강폭이 갑자기 50미터로 줄어들면서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는 폭포. 황하는 중화문명의 젖줄이며 母親河(모친하)라 부릅니다.

관광 가이드가 산으로 가는 중에 이 산이 介子推(개자추)가 불타죽은 산이라고 해서 내심 크게 놀랐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이 기쁨. 이번 이야기는 춘추전국시대 두 번째 패자인 진 문공과 개자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대만이야기 2화에서 언급했던 제나라 환공이 첫 패자였고, 그 뒤를 이은 패자가 바로 晉나라 文公(진나라 문공)이지요.

보다 강한 힘을 숭배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가요? 또한 그 힘을 독점적으로 유지하려는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나봅니다.

계비 강씨의 베개송사에 이성계는 방석을 세자로 앉히지만 전처소생 방원의 칼날아래 두 아들은 죽임을 당하지요.

춘추시대 晉나라 헌공에게는 전처소생의 아들이 셋이 있었으나 애첩인 여희의 음모에 빠져 후계자인 큰 아들은 죽임을 당하고 둘째 중이(文公이 됨)는 생모의 나라로 피신에 성공을 하고, 셋째 역시 탈출을 합니다.

인품이 뛰어났던 중이에게는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따랐습니다. 그들과 함께 고생고생하며 이 나라 저 나라 유랑을 다녔습니다. 그동안 아버지가 죽고 여희의 두 아들은 권좌를 계승하지만 쿠데타로 여희 일파가 몰살을 당합니다.

후에 바로 아래 친동생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형 중이가 자신의 자리를 뺏을까봐 친중이파를 대거 숙청하고, 자객을 중이에게 보냅니다. 그래서 중이는 더 멀리 도망을 가지요. 마침 당시 초강대국 제나라 재상인 관중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제나라로 가서 의탁을 합니다. 제 환공은 중이를 후하게 예우를 하고 결혼도 시켜줍니다. 제나라 환공이 죽자 격렬한 권력투쟁이 일어나 어수선하지만 중이는 편안함에 빠져 귀국할 생각을 안 합니다. 여걸인 부인과 따르던 신하들의 기지로 제나라를 떠나 또 다시 방랑길에 오릅니다. 19년이란 긴 방랑기간 중에 굶주림과 병마의 고통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탈진한 중이를 위해 신하 개자추가 허벅지 살을 베어 국을 끓여 봉양을 했습니다.

그동안 진 나라에서는 친 동생 혜공이 죽고 어린 아들이 뒤를 잇지만 다수의 도움으로 중이가 귀국하여 62세에 권좌에 올라 강력한 국가로 탈바꿈 시키고, 주 왕실의 내분으로 도망쳐온 왕을 모시며 두 번째 패자로 올라섭니다.

귀국하여 권력을 잡은 문공은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신없이 바빴고, 자기에게 충성을 다한 신하들에게 논공행상을 하여 모두에게 걸맞은 자리를 주고 상도 내렸지만 개자추를 미처 챙기지는 못합니다.

혹시나 빠진 사람이 있을까 걱정한 문공은 논공행상에서 빠진 사람은 고하라는 방을 붙입니다. 하지만 개자추는 나오지 않습니다. 개자추는 함께 고생을 하며 꿈을 이룬 뒤 앞 다퉈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무리들이 싫었나 봅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에게 이제 훌륭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고 자신의 꿈도 이루어졌으니 조용히 산으로 들어가 여생을 보내겠다고 하니 그 어머니 흔쾌히 아들의 결정을 따릅니다. 그리하여 두 모자가 들어간 산이 바로 이번에 다녀온 綿山입니다.

나중에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문공이 직접 모든 신하들을 데리고 와서 면산을 뒤집니다. 며칠을 찾아도 나오지 않자 한 신하가 진언하길 개자추는 효심이 깊어 산에 불을 지르면 어머니를 모시고 나올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산이 다 타도 개자추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결국 불에 타서 숨진 모자만 찾게 됩니다. 크게 슬퍼한 문공은 이후 삼일동안 불을 피우지 말고 개자추를 추모하게 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한식의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 綿山(면산), 이곳은 도교 사원의 성지 대라궁이 있더군요. 국립공원안에는 대부분 도교 사원이었습니다. 함께 간 일행들 중 일부입니다.

중국에 기회가 되어 가시게 되면 자동차 번호판을 주의 깊게 보십시오. 북경에서는 번호판에 京(경)이 들어가고, 한반도와 이웃한 산동성에서는 魯(로)를 쓰지요. 山西省(산서성)에서는 모든 자동차 번호판에 晉(진)이 들어갑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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