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기대어 졸고 있는데 바람이 날 흔든다.

“왜 건드려? 고소하게 잠자는데~”

“그랬나? 미안~. 난 그냥 가던 길인데...”

“그렇지만 날 깨웠잖아. 남이야 어찌 되건 넌 너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렇지는 않아.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의도하지 않으면 괜찮은 거야? 그건 아니지”

“그런가? 음~ 그러네. 미안!”

“알아들으면 됐어. 그런데 넌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맨 날 휙휙 불기만 하니?”

“거참. 별소리 다 듣겠네. 보이지 않는 것을 구태여 보려고 하지 마. 그리고 부니까 바람이지. 불지 않으면 바람이 아니지. 하지만 애초에 난 바람도 그 무엇도 아니었어. 그냥 나였지. 너희들이 그렇게 부른 거야. 하지만 괜찮아.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마!”

“그렇지만 난 ‘왜 바람이라 했을까? 바람이 많아 바람일까? 바람을 다 들어줘서 바람일까? 불어대니 바람일까?’ 등등,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나”

“그럴 수 있지. 그게 취미일 수도 있고, 그런 것으로 밥벌이 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 괜찮아~ 심신이 가는대로 해”

“근데 넌 어디서 오고 있어?”

“그건 또 왜 물어?”

“궁금해서~”

“나도 잘 몰라”

“허참~ 온 곳도 모른다고? 내가 보기엔 남쪽에서 오는 것 같은데... 그럼 가는 곳은 어디야?”

“글쎄, 그것도... ”

“허허. 그럼 넌 도대체 아는 게 뭐야?”

“내가 뭘 아느냐고? 난 오고가지 않아. 그저 바람이야.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등, 그런 것 잘 몰라. 아는 것은 지금 여기 있고, 너와 함께 한다는 것”

“!?...”

“그 외 더 알 필요가 있나? 난 그렇게 살아”

“맞아. 더 알아봤자 심신만 고달프지...”

“어디서 왔느냐? 갈 곳이 어디냐? 목표가 무엇이냐? 희망과 꿈이 있느냐? 이런 것들이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방해하지. 이목구비를 축소시키고 심신을 힘들게 해. 하나의 목표만 쫒거나, 한 길만을 가지 말고 주변을 두루두루 보면서 이길 저길을 가봐. 그러면 아름답고 다양한 세상이 보일걸?”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마라? 그래야 되는데... 어렵네”

“만물은 자존자립하고 있어. 종속적인 삶은 없지. 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거나 살 수 없다는 거야. 인간이 나무를 위해 살지 않듯이, 나무도 인간을 위해 살지 않아. 만물은 각자가 주체로 사는 거야. 비록 신이라 할지라도 자존자립을 훼손할 수 없어”

“맞아. 그래야지. 그렇게 살아야 해”

“그런데 당부할 게 있어. 나를 나쁜 의미로 쓰지 마. ‘바람 맞았다. 바람났네, 바람피운다, 바람 들었다, 바람만 부네’ 등의 표현 말이야. 난 좋은 의미도 많아. ‘미풍, 연풍, 낙풍, 해풍, 육풍, 계절풍, 방향풍, 샛바람, 실바람 등’ 알았지?”

“알았어! 그런데 바람나고 바람 들었다는 말이 안 좋은 것인가?”

“우잉~ 무슨 소리? 네가 거기까지? 상식의 벽을 넘어서고 있구나!”

“아냐! 넌 다 좋다는 거야”

 

- 바람 -

바람이 맞고 싶다

바람 맞으러 간다

바람이 분다

바람에 맡기고

바람을 맞는다

이 바람 저 바람

다 맞아봤지만

바람은 바람이더라

▲ 관매도의 바람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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