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우리가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대부분 행복이라고 한다. 그토록 원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혹자들은 꿈과 희망을 가지라 한다. 그래서 꿈과 희망을 무덤까지 간다 했을까? 그럼 꿈과 희망이란 무엇일까? 지금보다 많이 갖기 위해 부단히 힘쓰는 ‘더’일까? ‘더’는 끝이 있을까? 극한으로 몰아가지는 않을까? 발꿈치를 세우는 극한의 삶이 행복할까? 평화롭고 따뜻한 삶이 가능할까? ‘더’만 쫓다가 인생이 끝나지 않을까? 그런 ‘더’보다 ‘더’없는 ‘부족’은 어떨까? 우리가 찾는 행복이 아닐까? ‘더’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부족’하기에 살아가지 않을까? ‘더’에 대한 욕구와 욕망이란, 실제로 살아가는 힘인 ‘부족’을 의미하지 않을까? ‘더’에 대한 의미가 호도되지 않았을까?

‘더’에는 던다(감:減)는 것보다 더(가:加)한다는 의미가 크다. 재력과 권력, 명예는 減보다는 加되기를 원한다. 훨씬 좋아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더하기 위해 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교육과 수양을 통해 그 정도를 줄일 뿐이지 않을까? 인간에게 더하기는 끝이 없지 않을까? 그것을 인간의 본능이고 본성이라 할까? 그렇다면 너무 부끄럽고 추하다. 왜‘더’가 인간의 본능이 되었을까? 대부분의 생명들은 필요하면 먹고 배부르면 떠나지 않는가? 그렇지 못하는 인간은 본능 때문이란 말인가? 아프고 더럽다. 혹자들은 그것이 발전의 근본이라고 강변한다. 더욱 아프게 한다. 하지만 그 반대는 아닐까? ‘더’는 다만 ‘부족’을 채우는 것일까? ‘부족’을 채우기만 하면 족하고 행복할까? 오히려 ‘부족’이 족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부족’은 육신을 가볍게 하고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삶이 더욱 건강하지 않을까?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더’없는 ‘부족’이 아닐까? ‘더’보다는 ‘덜’이 진실하고 진리에 가깝지 않을까? ‘더’와 ‘덜’이 만났다.

더: 야! ‘덜’이 뭐냐? 나사 한둘 빠진 것처럼 덜덜덜.

덜: 허허~ 그렇기도 하겠네? 난 조금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 덜덜덜 거리기도 하겠지.

더: ‘부족’정도가 아니라 모자란 게지.

덜: 맞아. ‘부족’한 게 모자란 거지 뭐~

더: 나처럼 소리도 없이 ‘슬슬슬’ 더 모으고 더 채워봐라. ‘덜덜덜’거리지만 말고. 당최 시끄러워 죽겠다.

덜: 좀 시끄럽기는 하지?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은 조금 시끄럽지 않나? 흐르는 물을 봐. 바위틈을 이리저리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물은, 그 하류가 맑고 깨끗해. 하지만 소리 없이 흐르는 물은 흐릿하고 아래는 썩잖아? 어느 종(種)을 불문하고 조용하면 죽은 거지. 채우면 너무 답답하지 않나? 소리는 안 나겠지만 운신의 폭도 좁아지고 여유가 없어... 덜면 얼마나 가볍고 가뿐한데?

더: 넌, 더하고 채웠을 때 오는 포만감과 성취감을 몰라서 그래? 정말 웃겨!

덜: 그럴까? 그리고 그 다음은 어찌 되지? 거기에서 멈출 수 있나? 다시 더 채워야지. 그러다 보면 너의 심신의 평안은 언제 오지? 난 모자라지만 멈출 수 있어. 덜수도 있고. 그래서 몸과 맘이 평안해.

더: 거참! 덜덜덜 거리기만 한 줄 알았는데, 덜된 것이 덜덜덜 잘도 둘러대네.

덜: 네가 뭐라 해도 좋아. 난 덜되고 모자라니까. 하지만 난 덜덜덜 거리면서 그렇게 사는 게 좋아.

더: 으잉? 네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할 말이 없어지잖아? 너보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닌가 혼란스러워져.

덜: 뭘~? 그럴 필요까진 없어. 음~ ‘더’에서 조금 느슨해지면 ‘덜’이 되지. 너도 더하지만 말고 덜기도 한 번 해봐. ‘더’와 ‘덜’은 다른 게 아니야. 애초 한 곳에 있었어. 사람들이 나눴을 뿐이지. 우린 하나야. 앞으로 함께 어울려 사이좋게 지내자!

더: 그래~ ...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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